[리뷰]미드 수사물에 익숙해졌다면, 글쎄…영화 ‘프리즈너스’

‘CSI’, ‘NCSI’, ‘특수수사대’(Law & Order), ‘본즈’, ‘크리미널 마인드’ 등을 통해 온갖 과학수사, 프로파일링 기법에 익숙해진 데다가 ‘멘탈리스트’, ‘라이 투 미’, ‘미디엄’, ‘한니발’ 등 심리·심령 수사물까지 섭렵한 터라 어지간한 범죄수사 드라마로는 감동과 감탄을 이끌어내기는 어렵게 됐다. 범인 체포에 초점을 맞춰 한 회 분량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하기에 비약이 심하기는 하나 스피디한 전개로 인한 속 시원한 재미와 그럴듯한 핍진성을 획득한 시리즈물의 영향 탓일까, 10월2일 개봉을 앞둔 할리우드 영화 ‘프리즈너스’는 범죄 스릴러 영화로는 너무 느린 진행과 그 중간중간 뜬금없이 툭툭 떨어지는 단서들이 긴밀하게 설명되지 못하면서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어느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교외마을, 추수감사절을 맞아 켈러(휴 잭맨) 가족은 한 동네 사는 프랭클린(테런스 하워드)의 집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인종은 흑백으로 다르지만 두 가족 모두 10대와 예닐곱 살 된 두 아이를 둔 비슷한 또래 부부로 구성돼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해졌을 것이다. 켈러의 둘째 애나(에린 제라시모비치)가 프랭클린의 둘째 조이(키일라 드루 시몬스)와 집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빨간 호루라기를 함께 찾겠다며 나선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두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사건현장 근처에 있던 캠핑카 운전자 알렉스(폴 다노)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그는 10세 정도의 지능을 지닌 정신지체자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러나 그는 켈러가 들을 때만 실종된 아이들과 관련된 문장을 한 번씩 던진다. 그를 거두고 있는 숙모 홀리(멜리사 레오)의 말로는 정신장애인인데도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도 수상하다. 키우는 개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도 목격된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켈러는 결국 알렉스를 납치해 범죄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가둬놓고 고문한다.

두 아이의 실종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중산층이 모여 있는 주택가를 온통 헤집어 놓게 되고, 그 와중에 그 집들이 숨겨놓은 비밀들이 하나씩 들춰진다. 평범해보이던 이웃들이 알고보니 연쇄납치살해범부터 시작해 경악할만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다. 그런데 연출은 이러한 공포감과 긴장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 게다가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뜻하지 않게 맞이한 충격으로 정신병자가 돼버린 인간들의 언행을 일일이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이유가 하나같이 불분명하다. 감독이 파놓은 함정을 피해가며 어림짐작으로 알아서들 해석해야 한다. 왜 미로에 집착해 미로 모양의 목걸이가 등장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관객들을 갑갑한 미로에 빠뜨렸다는 상징으로만 여겨진다.
믿음을 무너뜨리고 악마를 만들기 위한 ‘신에게의 전쟁선포’는 범죄동기로는 그럴 듯하나 계기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다만 영화 속 마을처럼 숲으로 둘러싸인 이런 식의 조용한 근교 주택지가 많은 북미지역에서라면 영화가 그려내는 공포의 의미를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경찰이 추정하는 납치아동의 생존가능 시간은 168시간. 1주 내에 찾지 못하면 시체로 돌아올 확률이 절대적이다. 아무리 연방수사를 맡은 FBI나 NYPD, LAPD처럼 강력범죄가 흔한 대도시 경찰이 아니더라도 미국전역에 실종 경보시스템이 작동했다는데, 파트너도 없이 형사 한 명이 혼자 동분서주하는 것도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어려운 사건을 척척 해결해내는 비현실적인 미드 속 수사관들보다는 대형사건에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서툰 대응을 하는 시골경찰이 더 사실적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듬성듬성 성근 구성 사이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는 하다. 만약 내 아이가 사라졌는데 유력한 용의자가 그냥 풀려난다면 과연 부모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아버지의 도덕적 딜레마가 그것이다. 켈러는 이성을 잃고 무지막지한 폭력성을 드러낸다. 말을 잃은 지적장애인을 무조건 패고 극단적으로 고문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자백을 받아내려 든다. 잠시 주기도문을 외우며 고뇌하긴 하지만 극단적 상황에서는 평범한 사람도 잔혹한 광기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주된 목적인 것 같다. 휴 잭맨의 분노가 괴물 ‘울버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입체적 고뇌를 보여주기 보다는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모습은 야수가 날뛰는 것 같이 평면적이다.

각본은 애런 구지코우스키라는 ‘초짜’ 작가의 작품으로 2005년 한 시나리오 선발대회에서 수상한 후 오랫동안 할리우드를 떠돌아다니며 영화화되지 못했다. 브라이언 싱어, 앤턴 후쿠아 감독과 크리스천 베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마크 월버그 같은 배우들이 꾸준히 관심을 보였으나 마침내 할리우드에 막 발을 들인 드니 빌뇌브에 의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작가는 ‘양들의 침묵’(1991), ‘세븐’(1995) 같은 스릴러를 시금석으로 삼았다고 했으나, 이러한 소재와 주제는 더 이상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폭주하는 범죄수사물의 급변하는 트렌드에 부합하기에는 이제는 너무 낡아버렸다는 느낌이다.
또 하나 남는 의문은 왜 홀리 역에 배역보다 젊은 배우를 기용해 지나치게 티나는 노역분장을 시켰느냐는 것이다. 홀리 역을 맡은 멜리사 리오는 53세로 실제로는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주름 분장과 회색머리 가발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내내 거슬린다.
드니 빌뇌브 역시 ‘그을린 사랑’에서 무엇보다 충격적 결말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된지라 ‘프리즈너스’에서도 반전 결말에 상당히 치중한 듯하다. 그러나 ‘그을린 사랑’은 이미 연극으로 올려져 화제가 된 작품이고, ‘프리즈너스’도 시나리오 작가의 오랜 아이디어가 빛을 본 결과다. 작가적 반열에 오르고 싶다면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발전적 모습을 보여야할 것이다. M 나이트 샤말란(43)이 반전 결말의 여파가 엄청났던 ‘식스센스’(1999)라는 초기 화제작 이후로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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