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과 어제훈민정음…세종의 원제는?

【서울=뉴시스】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1998년 한글학회 영인본
1997년 최세화 동국대 교수의 복원안에 이어 1998년 한글학회는 복원 영인본을 도서출판 해성사에서 출간했다. 1946년도 조선어학회 영인본의 오자 ‘의(矣)’를 ‘이(耳)’로 수정했다. ‘한간문자류편(漢簡文字類編)’과 ‘한예자원(漢隸字源)’에 수록된 ‘易(쉬울 이)’의 이체자(異體字) 또한 ‘昜(볕 양)’자와 혼동되므로, 최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여 복원의 관점에서 해례본 정인지 후서(後序)에 있는 ‘이(易)’자를 취해 바로잡았다. 그 나머지 글씨들은 ‘흠(欠)’ 부위가 잘 보이지 않는 첫 번째 ‘욕(欲)’자를 다시 써넣은 것 외에, 1940년 이용준이 쓴 글씨를 그대로 사용하되 굵고 진하게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언해본과 세종실록에 나타나는 ‘어제(御製)’를 제목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해본에 나타나는 해당 문장의 끊어 읽는 부분을 무시하고 국지어음(國之語音)처럼 모든 주어(愚民, 予, 者) 뒤에 쉼표 권점을 찍었다. 이것이 오류임은 해례본의 정인지 후서에 “智者不終朝而會∘愚者可浹旬而學。(지자는 아침이 끝나기 전에 깨우칠 것이며, 우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주어라 할지라도 1~2자로 이뤄진 경우 ‘智者’와 ‘愚者’ 뒤에서처럼 당시에는 결코 구두점을 찍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한글학회도 영인본을 내면서 포함시킨 ‘훈민정음 옮김과 해설’ 책 말미 [붙임]간송 미술관 ‘훈민정음’ 바로잡기 부분에서 “※서문의 구두점은 원본 그대로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 외에 4성 표시를 해야 할 총 3개 글자들(爲, 易, 便) 중 ‘편(便)’자는 빠뜨렸으며, ‘위(爲)’자는 권점의 위치가 옛 방식에 어긋나고, ‘易’자 또한 권점의 위치가 정밀하지 않다. 권점의 크기도 보존돼 있는 다른 세종 서문 2장(총 3쪽 분량)의 그것에 비해 지나치게 작다. 또 마지막 줄 ‘초발성(初發聲)’ 뒤에 ‘병서(並書)’자를 연결하지 않은 것도 큰 잘못이다.

【서울=뉴시스】정우영 교수의 훈민정음 해례본 낙장 부분 복원본(2001)
그러나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문장을 잘 살피면, ‘使~日用’은 ‘欲(want to)’의 목적어구로 ‘欲’과 모두 1차로 동시 연결돼 있다. 또 목적어구에서는 목적보어로 쓰인 ‘이습(易習)’과 ‘편어일용(便於日用)’ 모두 다시 앞의 사역동사 ‘使(~하게 하다)’와 2차로 동시 연결돼 있다. 따라서 어법상 ‘習’자 뒤에 구두점을 찍어 분리시킬 수 없다. 이는 훈민정음 언해본에서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를 끊지 않고 한 단락으로 묶어 처리한 것을 봐도 증명이 된다.
한편, 정 교수의 위 논문 중에서 ①세종 서문의 제목 ②한글학회 영인본(1998)의 맨 마지막 ‘聲’자 뒤에 ‘並書’라는 글자의 연결 여부에 관한 논증 부분은 서문의 전체 모습을 변형시킬 수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중요 사안이다.

【서울=뉴시스】문화재청의 훈민정음 언해본 복원본(2007)
서강대 소장 ‘월인석보’ 언해본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총 4행이 세종 사후 묘호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1459년(세조 5)에 세종 당시의 원본을 다른 글씨체로 변개한 부분이다.
문화재청의 언해본은 문화재청이 정 교수의 2001년도 재구성안과 결론을 그대로 수용, 언해본을 반포 당시의 원본에 가깝게 제작하려고 경상대(책임연구원 조규태)에 의뢰, 2007년 12월 완성한 것이다. 컴퓨터그래픽 기술에 의한 ‘문화재청 언해본’이다.

【서울=뉴시스】서강대 소장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 언해본(1459)
문화부국장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