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예술, 도자기 제삿그릇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
등록 2016.08.01 16:16:50수정 2016.12.28 17: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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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자라무늬 상준(粉靑沙器귀얄鼈文象尊)·희준(白磁犧尊), 조선 15~16세기, 경상북도 달성, 높이 2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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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전이 8월2일부터 10월2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조선 도자 제기 98건 118점(외부기관 11건 11점 포함)을 한 데 모았다. 도자기로 만든 조선 제기의 특징과 의미를 파악하고, 유교문화 확산과 함께 도자 제기가 애용되는 과정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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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독창적인 백자제기(白磁祭器), 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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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도자 제기는 15~16, 16~17, 18~19세기로 구분할 수 있다. 시기별로 도자 제기의 특성이 뚜렷하다. 각각 모방과 독창적인 변모를 거쳐 완성 단계에 이른다. 유교문화의 확대에 따라 사용층이 점차 왕실에서 향교, 사대부로까지 넓어지면서 도자기 문화가 파급되는 과정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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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제’가 쓰여진 접시(白磁靑畫祭銘祭器), 18~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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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테마 전시회 1부는 15~16세기를 중심으로 조선 왕실와 관청이 제기도설(祭器圖說)의 금속 제기를 본떠 제작한 도자제기에 관한 것이다. 조선 초 상감분청사기 제기는 제기도설의 금속 제기처럼 세밀하게 장식됐다. 그러나 점차 조화, 철화, 귀얄, 덤벙분청사기 단계로 가면서 생략과 변형이 시도됐다. 이어 관요(官窯)가 설치(1466~1469)된 후에는 백자로도 제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도자 제기는 보, 궤, 작, 준, 이 등이다. 종류와 제사에서의 쓰임을 살피고, 조선시대 제기도설의 도해와 함께 전시한다. ‘황금눈구름무늬 준모양 제기’(粉靑沙器黃目尊形祭器·14세기 말~15세기 전반), ‘연꽃무늬 조’(粉靑沙器陰刻蓮花文俎·15세기)를 처음 소개한다. 준모양 제기는 황금눈과 구름무늬가 장식된 제기다. 중국 예서에 부합되는 제기가 조선에서 제작된 예다. 연꽃무늬 조는 조선의 제기도설에 나오는 목제 제기를 도자기로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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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황금눈 구름무늬 준모양 제기(粉靑沙器象嵌黃目雲文尊形祭器), 조선 14세기 후반~15세기 전반, 높이 30.9㎝. 궤(白磁簋), 조선 17세기, 높이 16.4㎝, 덕수 6100. 연꽃무늬 조(粉靑沙器陰刻蓮花文俎), 조선 15세기, 높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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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16~17세기에 제작된 독창적인 백자 제기를 살펴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전란으로 피폐해진 향촌사회의 결속과 유지를 위해 제사가 성행했다. 전란의 피해와 제사의 성행은 백자 제기의 질과 형태,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 제기가 도자기로 만들어지면서 점차 도자기에 맞는 특성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16세기 백자 제기는 장식이 과감히 생략되고 특징은 과장됐다. 17세기에는 완전히 추상적이고 독창적인 제기로 변모했다. 굽 측면을 삼각형 또는 반타원형으로 몇 군데 도려낸 분할굽과 몸체의 세로 톱니무늬(거치문 鋸齒文) 장식띠가 특징이다. 용인 양지에서 발견된 백자 제기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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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제’가 쓰여진 접시(白磁靑畫祭銘楪匙·위), 조선 18~19세기, 높이 6.9㎝, 신수 6180. 사각형 접시(白磁祭器炙器), 조선 19세기, 높이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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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는 가장 조선다운 백자 제기가 완성되는 18~19세기 제기를 선보인다. 18세기 이후 양반이 증가하면서 가문의 제사도 늘어났다. 사대부가를 비롯한 일반 집안에서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사당에서 사용된 제기는 굽이 높은 백자 제기로 상당량 생산됐다. 청화로 ‘제(祭)’자가 쓰여 있기도 하다. 사대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애용한 단정한 선과 면, 정결한 백색 제기들이 전시된다. 제사의 각 절차에 사용된 도자 제기를 알아 보는 영상과 전시코너도 마련된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올리고 복을 내려 받음으로써 시공간을 넘어 공동체를 묶어주는 그릇이 제기다. 금속, 목재, 도자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조선 초 금속 부족으로 도자 제기가 국가 제사에서 금속제를 일부 대신하게 됐다. 이후 도자 제기는 조선 예(禮)의 상징이자 예술품으로 뚜렷한 변화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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