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 30주기 앞둔 망월묘역 "내 가슴에 최루탄이 박힌 것 같았다"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고 이한열 열사의 30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옛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 앞에 '희망'이라는 글씨가 든 액자, 꽃 목걸이 등이 놓여 있다. 2017.06.08. [email protected]
고(故) 이한열 열사의 30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옛묘역). 이 곳에 안장된 이한열 열사의 묘소 앞에서 만난 백신종(65)씨는 1987년 6월9일을 떠올리며 가슴 아픈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연세대 정문 앞에서 직선제 개헌과 군부독제 타도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던 이한열 열사는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뇌손상으로 27일 동안 세브란스 병원에서 투병하던 이한열 열사는 그해 7월5일 운명했고 나흘 뒤 9일 지금의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됐다.
경남 거창 농협에 근무했던 백씨는 당시 화순 농협에 근무했던 열사의 아버지와 정부를 비판하는 '문인 잡지'를 만들며 친분을 쌓았다.
광주에 아무런 연고조차 없이, 그렇게 알고 지내던 이한열 열사의 사망 소식에 백씨는 '직장에 간다'는 말만 남기고 광주로 향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고무신만 신은 채 광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백씨는 "연락할 경황도 없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내가)어디를 갔는지 몰라 3일 동안 가출 신고를 했더라"며 "광주에서 삼우제까지 지내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 날 이후 백씨는 거의 매년 망월동 묘역을 찾고 있다.
그는 "그때 당시 푸르게 뻗어자랐던 5월의 잔디가, 그 잔디가 힘이 빠져버렸다"며 "국립5·18민주묘지가 만들어진 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끊겨서 그런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한열 열사 가족의 아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해 쓰러졌던 수 많은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의 희생은 끝내 군사독재 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고 이한열 열사의 30주기를 하루 앞둔 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옛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 앞에서 백신종(65)씨가 추모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한열 열사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백씨는 1987년부터 매년 묘소를 찾고 있다. 2017.06.08. [email protected]
그는 이어 "청년과 대학생들이 불의에 교문을 박차고 나온 지가 오래됐다"며 "(1980년)당시 시대 상황이 군부독재로,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시기였다. 지금도 엉뚱한 곳에서 숨도 못 쉬고 웅크리고 시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젊은이들이 앞장서고 그들의 판단이 옳은 곳에 서 있지 않으면 역사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지긋이 바라본 이한열 열사의 묘소에는 꽃을 이어 '희망'이라는 글씨를 적은 액자, 문재인 대통령 당선 사진과 '촛불혁명의 승리'가 적힌 신문, 누군가 놓고간 꽃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이한열 열사가 잠든 망월동 옛 묘역에는 고(故) 이재호·이철규·김남주·강경대·표정두·박승희·박종대 열사 등 수 많은 민주인사들과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 1980년 5월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고 위르겐 힌츠페터씨의 유품 등이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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