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선언 비준 공방…역대 남북합의서 비준 여부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국회동의 없이 대통령 결재로 발효
2005년 남북관계발전법 제정 후 행정부發 합의서 비준 이어져

【평양=뉴시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email protected]
자유한국당은 평양선언 비준에 반발하며 가능한 법적 수단을 모두 동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청와대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 간 주요 합의서가 국회 동의 없이 발효·비준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2년 약 3년 7개월의 지난한 협상 끝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헌법에 따른 조약체결 절차를 따르지 않고 대통령의 재가만으로 발효됐다.
남북기본합의서 25조는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서로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태우 정부는 당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 비준 없이 대통령의 결재만으로 합의서를 발효시키고, 대통령령으로 관보에 게재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는 체결 이후 한미연합훈련 재개와 이에 따른 1994년 1차 북핵위기 등을 겪으며 적극적인 이행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지난 9월1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차려진 남북정상회담 서울 프레스센터 대형 화면에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군사 분야 합의문 서명식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2018.09.19. [email protected]
1999년 대법원(선고 98두14525판결)도 "남북한 당국이 각기 정치적 책임을 지고 상호 간에 그 성의 있는 이행을 약속한 것이기는 하나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를 국가 간의 조약 또는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합의서의 법적 기반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적인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6·15공동선언을 채택하면서부터다.
6·15공동선언의 경우 1972년 7·4공동성명과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발전시킨 형태로, 내용 자체에 발효 등의 개념을 담고 있지 않아 지금과 같은 법리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체결한 4대 경제협력합의서에 대해 국회 동의를 받았다. 당시 4대 경협합의서와 관련, 2004년 본회의에 상정된 체결 동의안 심사보고를 보면 "헌법 제60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받기 위해 정부로부터 제출"됐음을 명시했다. 국회가 헌법상 조약에 관한 규정에 따라 동의한 것이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현안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무회의에서 비준한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분야합의서'의 효력정지가처분신청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곽상도 의원, 김성태 원내대표, 최교일 의원. [email protected]
통일부에 따르면 2006년 6월30일 남북관계발전법 시행 이후 정부는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합의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등 10건의 합의서를 국회동의 없이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비준했다. 이번에 비준된 평양선언과 9·19 군사합의서를 포함하면 12건이다.
특히 2007년 11월16일 체결된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합의서는 "쌍방 국방부 장관이 서명해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방장관회담 합의서는 체결 일주일 뒤인 2007년 11월23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과하고 같은 해 12월6일 발효된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서명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도 "쌍방이 서명하고 각기 발표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할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돼 있다. 정부는 지난 2007년 2차 국방장관회담 합의서 비준 절차를 따라 진행하는 것이 법적하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10·4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고 해주경제특구와 남포·안변 조선협력단지 조성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채택한다.
특히 합의서에 나온 이행사항이 대규모 재정투입이 필요한 사항들로, 당시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이를 심의 의결하고 법제처의 판단을 받아 국회 동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당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대북기조 변화 등을 이유로 17대 국회에서 끝내 비준되지 못하고 2008년 자동 폐기되는 수순을 밟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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