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서스펜스가 된 생로병사…영화 '올드'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어찌 보면 영화는 결국 시간에 관한 것이다. 두 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으로 어떤 영화는 세월을 담고, 또 어떤 영화는 찰나를 포착한다. 누군가는 시간을 되돌리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세월을 거꾸로 산다. 우리는 어긋나 흐르는 시간 탓에 눈물 흘리는 남자를 본 적도 있다. 영화는 영화 바깥에서도 시간과 엮여 있다.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체감하느냐에 따라 흔히 재밌는 영화와 지루한 영화가 구분된다. 말하자면 영화가 시간과 무관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면 시간이 M 나이트 샤말란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답은 예상한 그대로다. 그에겐 시간도 서스펜스가 된다.
샤말란 감독의 새 영화 '올드'(Old)는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설정을 내세운다. 얼마나 빠르게 흐르냐면, 1초가 닷새와 같다. 30분이면 1년, 1시간이면 2년이 흐른다. 만 하루가 지나면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버린다. 이 이야기는 '샌드 캐슬'이라는 작품이 모티브가 됐다. 프랑스 작가 오스카 레비와 일러스트레이터 프레데릭 피터스가 2011년 내놓은 그래픽 노블이다. 영화에서 이 불가사의한 현상은 어느 휴양지 숨겨진 해변에서만 발생한다. 이제 세 가족이 이곳에 도착하고, 미처 자각할 새도 없이 시간은 이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마치 이 해변에 쉬지 않고 몰려드는 파도처럼 말이다.
초자연적 현상을 그리든(식스센스), 호러물을 만들든(더 비지트), 슈퍼 히어로 영화를 내놓든(글래스 3부작) 샤말란 감독의 방식은 대체로 유사했다. 관객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압박의 강도를 서서히 높여가며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게 그의 장기였다. 그는 이제 늙어가는 것을 가지고도 관객의 마음을 조여간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고통은 천천히 다가오기에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지, 그 속도가 조금만 빨라져도 경악할 만한 공포가 된다는 걸 샤말란 감독은 잘 알고 있다.
설정이 신선하고 그 바탕에서 파생하는 아이디어는 분명 인상적이다. 아이는 눈 깜짝할 새 자라고 노인은 순식간에 병들어 쓰러진다. 임신과 출산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고, 웬만한 상처는 생기자마자 아문다. 현재 건강하다고 해도 한 시간 뒤에도 건강하리란 보장은 없다. 주름은 늘어가고 행동은 둔해지며 시력은 떨어지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해변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늙을수록 탈출 확률은 떨어진다. 다시 말해 '올드'의 공포는 인상이나 느낌이 아니다. 이건 몸으로 하는 경험이다. 관객 역시 이 영화를 보는 시간에 조금씩 늙고 있다. 샤말란 감독은 "관객 역시 한 순간도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일이 없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샤말란 감독은 이 영화를 독특한 아이디어를 전시하는 것 이상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해변에 갇힌 세 가족이 겪는 갖가지 공포를 보여주는 것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샤말란 감독은 늙음을 서스펜스의 도구로만 쓴다. 그는 애초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설정에 어떤 실존적 물음도, 어떤 철학적 메시지도 담을 생각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샤말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세 가족을 해변에 데려다주고 이들이 어떤 상황을 맞이하는지 멀리서 관찰하는 남자 역할을 맡아 직접 연기했다. 이처럼 아이디어를 툭 던져놓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기만 하는 것, 그것이 샤말란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드는 태도다.
한국 관객에게 반전이라는 단어를 알려준 작품이 바로 샤말란 감독이 만든 '식스센스'다. 이번 작품에도 역시 반전이 있다. 하지만 어떤 관객의 기대도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싱거운데다가 작위적이어서 차라리 없는 게 나아 보인다. 아이디어를 쏟아낸 뒤 이것들을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할지 몰라서 만든 반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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