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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첫 방송연설서 '소년공 李의 자기소개서' 풀어내

등록 2022.02.22 20:30:00수정 2022.02.22 20: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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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2일 오후 인천 부평구 부평역 앞 광장에서 '인천 재도약 앞으로, 인천 경제 제대로!' 유세에 나서 연설하고 있다. 2022.02.22. photo@newsis.com

[부평=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2일 오후 인천 부평구 부평역 앞 광장에서 '인천 재도약 앞으로, 인천 경제 제대로!' 유세에 나서 연설하고 있다. 2022.02.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2일 첫 대선 방송연설에서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역경을 딛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인생 스토리를 풀어냈다. 소년공 출신 이재명의 자기소개서인 셈이다.

세대, 지역, 성별, 진영을 가리지 않고 온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대선 방송연설 첫머리에서 어려웠던 성장 과정을 담담하게 펼쳐냄으로써 진정성을 어필하고 비호감 이미지를 씻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 여러 악조건 속에도 굴하지 않고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킴으로써 '위기에 강한 경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이 후보는 이날 저녁 KBS 1TV를 통해서 방송된 제1회 대선 방송연설에서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저 이재명을 국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한다"며 국민들이 보내온 8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우선 이 후보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저희 집은 무척 가난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쯤 돈을 버시겠다고 먼저 고향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남은 다섯 남매를 키우시느라 남의 집 일을 해주시며 정말 허리 펼 새도 없이 일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엄마' 이렇게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면 어머니는 멀리 밭에서 김을 매시다가도 호미를 쥔 채 일어나셔서 저를 기다려주셨다"며 "저는 총알처럼 달려가 어머니 품에 덥석 안기곤 했다. 어머니 품은 늘 푸근했고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났다"고 회고했다.

고향 안동을 떠나 성남의 달동네 단칸방에서 살며 겪은 소년공 시절에 대해서는 "처음엔 목걸이 공장에서 끓어오르는 납증기를 들이마시면서 매일 12시간씩 납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월급을 더 준다는 곳이 있어서 10리길을 걸어서 목걸이 공장에 다녔는데 석 달치 월급을 채불한 사장이 야반도주를 하는 바람에 석 달치 월급을 모두 떼인 적도 있었다"고 했다.

공장 프레스 기계에 팔이 물리는 사고를 당했던 당시에 대해서는 "성장판이 손상됐는데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했고 산업재해 보상조항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저는 그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은 저 자신만 탓했다"며 "어느날 저를 괴롭히는 그 대단한 공장관리자가 고졸임을, 검정고시로 고졸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됐고 저는 공부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쯤 일기에 적었던 글이 기억난다. '어렵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한번 해볼까' 1980년 8월20일 제 일기장"이라며 "희박한 가능성 하나를 붙잡고 고된 하루하루를 견딘 날들이 계속됐다"고 했다.

이 후보는 "우리 또래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갈 때 저는 작업복을 입고 그들을 거슬러서 공장에 다녔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참으로 부러웠다"며 "시장청소부 일을 하셨던 아버지를 도우러 나갔다가 교복 입고 등교하는 여학생들을 피해 골목 구석으로 숨은 적도 많았다"고도 했다.

가족사와 관련해서는 세상을 떠난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그는 "제 어머니는 시장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휴지를 팔고 사용료를 받는 일을 하셨다 여성으로서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집에서 부업을 손에서 떼지 않으셨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때도 지금도, 어머니는 제게 하늘이다. 그 고단한 삶 속에서도 어머니는 제게 넘치는 사랑을 언제나 듬뿍 주셨다"며 "제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전국을 다니면서 제 어머니처럼 평생 고단하게 사셨던 분들이 제 손을 꼭 잡고 '이 후보, 우리 좀 잘 살게 해줘'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정말로 우리 국민의 삶을 제대로 살피는 유능한 정치인이 돼야겠다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가난이 자랑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가난 때문에 저는 더 빨리 자랐고 더 빨리 더 많이 세상을 알게 됐다"며 "제가 지금 정치를 하는 이유도 제가 탈출했던 그 가난과 절망의 웅덩이 속에서 여전히 고통받는 모든 분들에게 공정한 세상,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이다"라고 강조했다.

사법고시 합격 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데 대해서는 "사법연수원 최종 성적이 판검사 임용권 안에 들다 보니까 사실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제가 판검사가 되면 가장 좋아하실 제 어머니의 그 큰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며 "그러던 중에 한 인권변호사의 강연을 듣게 됐다. 바로 노무현 변호사였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용기있게 해라, 변호사 내가 해보니까 절대로 안굶는다' 이 말씀이 제 가슴에 와 닿았다"며 "그래서 스물다섯 살 새파란 변호사가 소년공으로 자라왔던 성남에서 사무실을 열게 됐다. 원칙은 '돈이 아니라 사람을 변호한다', '이익이 아니라 정의를 변호한다' 두가지인데 지금까지 잘 지켜온 것 같다"고도 했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8년, 경기도지사 3년 동안 제 모든 정책에는 가난하고 참혹했던 저의 삶, 평범하고 어려운 우리 국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며 "아버지가 시장에서 주워온 거의 상한 과일밖에 먹었던 저의 개인적 경험이 경기도의 어린이 건강과일 지원 사업 모태가 됐다"고 말했다.

또 "검정고시 학원비 7000원이 없어서 공장에 다니며 산재장애인이 되어야 했던 제 개인적 경험이 청년기본소득의 뿌리가 됐다"며 "20만원이 없어서 일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 현실이 경기도의 소액 극저 신용대출 사업의 출발"이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는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만 성남시민과 경기도민들께서 크게 만족하셨고 그 성과 때문에 저를 지금 이 자리까지 보내주셨다"며 "저는 자신 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선택해 주시면 성남시민, 경기도민들이 그러셨듯이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때 내 삶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실적으로 체험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이번 3월9일, 저 이재명을 선택해 주신다면 위기에 강한 경제 대통령으로서 위기 극복을 넘어 기회가 넘치는 성장국가, 희망과 꿈이 가득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서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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