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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먼저 ‘나’를 건너는 일…이소연 자화상[박현주 아트에세이⑦]

등록 2025.12.06 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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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 Yeun, Black Dress, 2025, Oil on canvas, 220 x 400 cm. 주현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ee So Yeun, Black Dress, 2025, Oil on canvas, 220 x 400 cm. 주현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촛불이 흔들리는 방, 어지럽게 놓인 사물들, 그리고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한 소녀.
이소연의 회화 속 장면들은 마치 늦은 밤 우리의 마음을 은근히 들여다본다.
조현화랑에서 열리는 ‘Love of This Age(이 시대의 사랑)’은 거창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며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무게와 얼굴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지만,
거울 앞에 앉아 그린 전통적 자화상은 아니다.
오늘을 버티기 위해 바꿔 끼는 여러 겹의 얼굴들
어린 소녀일 때도, 낯선 존재일 때도,
혹은 감정이 잠긴 표정 없는 인물일 때도 있다.

그 변화무쌍한 얼굴들이 바로 이 시대의 사랑을 말해준다.
사랑은 누군가를 향하기 전에
늘 ‘나’라는 미로를 먼저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내 그림은 ‘진짜 나’와 ‘꾸며낸 나’가 교차하면서 만들어지는 긴장감이다.”

그 말은 회화를 넘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직장에서의 나, 관계 속의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우리는 끊임없이 얼굴을 갈아끼우지만,
그 안에서 밀려난 감정들은 어느새 사물처럼 쌓여 우리 곁에 남는다.

그래서 그림 속 정물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맥주병, 촛대, 오래된 장난감, 잎사귀…
모두 작가가 실제로 곁에 두고 살아온 기억의 잔해들이다.
말없이 놓여 있을 뿐이지만,
그 자체로 한 사람의 마음의 자리들을 대신한다.

Lee So Yeun, Sheep Mask, 2025, Oil on canvas, 160 x 140 cm.조현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ee So Yeun, Sheep Mask, 2025, Oil on canvas, 160 x 140 cm.조현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시대의 사랑이란,
어쩌면 타인을 사랑하는 일보다
자기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해 식탁 앞에 앉는 일인지도 모른다.
캔버스 속 소녀처럼,
조용히 책 한 권을 펼치고
흩어진 감정의 파편들을 하나씩 주워 담아보는 일.
그렇게 그림은
우리를 다시 세상과 연결시킨다.
마법처럼.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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