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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일 정상회담서 1차 북핵 위기 논의…'컨틴전시' 언급

등록 2025.12.24 16: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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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외무성, 당시 외교문서 공개

당시 日총리 "가능한 범위서 대응"

[뉴욕=AP/뉴시스]1994년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1차 북핵 위기(1993~1994년)가 논의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열린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2025.12.24.

[뉴욕=AP/뉴시스]1994년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1차 북핵 위기(1993~1994년)가 논의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열린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2025.12.24.


[서울=뉴시스] 김예진 기자 = 1994년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1차 북핵 위기(1993~1994년)가 논의된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이날 오전 1994년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문서에는 1994년 2월 11일 미국 백악관에서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일본 총리가 회담한 내용이 담겼다.

당시 회담에 배석했던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북한의 핵 개발 문제를 설명하고 "북한이 완고한 태도를 바꾸지 않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장 조치(시찰)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반도 유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컨틴전시(Contingency·예측하기 어려운 긴급사태)를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핵 개발에 속도를 붙이던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촉발된 위기가 1차 북핵 위기다. 북한과 미국은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로 위기를 마무리지었다.

크리스토퍼 장관의 설명에 호소카와 총리는 "일본은 국내법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가능한 한 책임 있는 대응을 취할 것"이라며 한국, 중국과도 협력할 생각을 전달했다.

그는 당시 방미 중 밥 돌 상원 원내총무 등과 면담에서 "해상 봉쇄 등에 자위대가 직접 관여하는 것은 어렵지만 미군 지원은 물론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도쿄=AP/뉴시스]2014년 2월 9일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는 모습. 2025.12.24.

[도쿄=AP/뉴시스]2014년 2월 9일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는 모습. 2025.12.24.


호소카와 전 총리는 외교문서 공개 후 요미우리에 “(당시) 미국은 위기감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잘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컨틴전시라는 단어가 나와 정부로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과 회담 후 귀국해 이시하라 노부오(石原信雄) 관방부(副)장관을 불러 "긴급하게 대응을 검토해달라"는 지시를 했다고 증언했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클린턴 대통령은 이시하라 관방부장관에 경제 제재 일환으로 미국의 북한 주변 해상 봉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기뢰를 살포할 가능성이 있다. 제거를 부탁하고 싶다"며 미군에 대한 지원도 타진했다. 이시하라 전 관방부장관은 2023년 사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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