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상대를 빌려드립니다"…다양한 직업군과 소통하는 휴먼라이브러리
책엔 담기지 않는 이야기, '사람' 대출하는 도서관
전통 의상 입은 외국인부터 경력 단절 롤모델까지
전문가 "AI 시대에 사람이 직접 지식 공유 주체로"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김성민 노원휴먼라이브러리 관장이 지난 28일 서울 노원구 노원중앙도서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1.31. kch0523@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1/30/NISI20260130_0021145544_web.jpg?rnd=20260130233040)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김성민 노원휴먼라이브러리 관장이 지난 28일 서울 노원구 노원중앙도서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1.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권민지 수습 기자 = 휴먼라이브러리는 말 그대로 책이 아닌 '사람'을 빌리는 도서관이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는 대신 대화하고 싶은 한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이 독특한 발상은 2000년 덴마크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에 의해 시작됐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소통함으로써, 서로를 잘 알지 못해 생기는 오해와 편견을 허물자는 취지에서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국내에서는 2012년, 전국 최초의 상설 휴먼라이브러리가 문을 열었다. 바로 서울 노원구의 '노원휴먼라이브러리'다. 김성민 노원휴먼라이브러리 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840명의 '사람책'…"책에 담기지 않는 이야기"
![[서울=뉴시스] 노원휴먼라이브러리에 비치된 '휴먼북 서가'. 한 사람의 삶과 경험을 한 권의 책처럼 정리한 휴먼북들이 정리돼 있다. (사진=노원휴먼라이브러리 제공) 2026.02.03.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2/03/NISI20260203_0002055065_web.jpg?rnd=20260203151137)
[서울=뉴시스] 노원휴먼라이브러리에 비치된 '휴먼북 서가'. 한 사람의 삶과 경험을 한 권의 책처럼 정리한 휴먼북들이 정리돼 있다. (사진=노원휴먼라이브러리 제공) 2026.02.03. [email protected]
노원휴먼라이브러리의 대출 방식은 여느 도서관과 다르다. 독자는 책을 고르듯, 840명에 달하는 사람책(휴먼북) 가운데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인물을 선택한다.
도서 대신 휴먼북 대출을 신청하면, 도서관이 일정을 조율해 독자와 휴먼북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열람'이 이뤄진다.
올해 1월 기준 노원휴먼라이브러리에 등록된 휴먼북은 837명. 개관 첫해였던 2012년 265명에서 10여 년 만에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휴먼북은 크게 직업군과 스토리로 나뉜다. 직업군 휴먼북에는 의료·교육·금융·법조 등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이 등록돼 있다. 스토리 휴먼북은 독특한 이력이나 삶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다.
김 관장은 "직업은 세무사지만 싱어송 라이터 경험으로 휴먼북이 되신 분도 있고,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도서관과 민주주의' 주제로 등록된 분도 있다"며 휴먼북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누구나 휴먼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휴먼라이브러리의 취지와 가치를 이해해야 하고,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와 경험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대가 없는 자원봉사에 동의해야 한다. 이후 약 1시간의 사전 인터뷰를 거쳐야 정식 휴먼북으로 등록된다.
김 관장은 "이야기가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공감과 공유가 가능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전통 의상입은 외국인부터 경력단절 극복 롤모델까지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김성민 노원휴먼라이브러리 관장이 지난 28일 서울 노원구 노원중앙도서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1.31. kch0523@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1/30/NISI20260130_0021145541_web.jpg?rnd=20260130233040)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김성민 노원휴먼라이브러리 관장이 지난 28일 서울 노원구 노원중앙도서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6.01.31. [email protected]
휴먼라이브러리의 핵심 목적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는 데 있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역시 이 방향성을 지키기 위해 휴먼북의 다양성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김 관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로 꼽은 휴먼북은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다문화 휴먼북이다. 김 관장은 "열람 때면 전통 의상을 직접 입고악기까지 준비해 온다"며 그를 소개했다.
외국인 휴먼북과의 열람에서 독자는 질문을 던지고, 휴먼북은 자신의 삶으로 답한다. 이 과정에서 '열람'은 단순한 문화 소개를 넘어선다. 막연한 이미지의 '외국인'은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이웃으로 이어진다.
경력단절을 극복한 휴먼북의 사례도 또 다른 연결을 만든다. 김 관장은 "같은 '경력단절'이라는 경험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이 신청한다"고 전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만나 질문하고 답을 나누는 과정에서 독자는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된다. 휴먼북은 누군가에게 한 권의 책이자 현실의 롤모델이 된다.
김 관장은 "휴먼북들은 대출이 되면 연차를 내고 오실 정도로 나눔에 대한 성취감을 크게 느낀다"며 독자뿐 아니라 열람 대상인 휴먼북도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주체 중 하나로 역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얘기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기쁨,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해소가 이곳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덧붙였다.
"책에는 다 담지 못하는 이야기"…4D·5D급 열람
![[서울=뉴시스] 서울특별시 노원구 소재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전경. (사진=노원휴먼라이브러리 제공) 2026.02.03.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2/03/NISI20260203_0002055061_web.jpg?rnd=20260203150924)
[서울=뉴시스] 서울특별시 노원구 소재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전경. (사진=노원휴먼라이브러리 제공) 2026.02.03. [email protected]
휴먼북 한 권의 열람 시간은 약 50분. 일반적인 도서 대출에 비하면 짧다.
그러나 김 관장은 "오히려 책에는 다 담지 못하는 내용을 축약해서 마치 4D, 5D처럼 입체적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화자의 표정과 목소리, 즉각적인 질문과 답변이 더해지면서 열람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깊은 공감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최근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도서관을 넘어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등으로 찾아가는 휴먼북 활동도 확대하고 있다. 진로와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10대, 20대 청년층의 수요가 특히 높다.
전문가들도 이러한 시도에 주목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AI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식을 제공하는 시대에, 사람이 직접 지식 공유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개체화되는 사회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유대와 네트워킹을 만들어가는 행위"라고 평가했다.
김재우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지역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를 강화하는 강력한 사회적 자본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고립된 사회 속 '제3의 장소'…"연결의 핵심은 결국 사람"
특히 휴먼북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라키비움(Library+Archive+Museum) 형태의 운영도 구상 중이다.
김 관장은 도서관이 단순한 자료 보관소를 넘어 '제3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정(제1장소)과 직장·학교(제2장소)를 벗어나, 비교적 안전하고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커뮤니티와 토론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서관 운영이 기존의 도서·비도서 중심에서 '사람 콘텐츠'가 함께 가는 형태로 가야 미래성이 보장된다"며 "사회 모든 문제의 해결 키워드는 결국 사람과 잘 지내는 '연결'에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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