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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암살 시도가 선거에는…"영향 없다"-NYT

등록 2026.04.29 08:21:35수정 2026.04.29 08: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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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후 암살 시도 6차례

이미 떨어진 대통령 인기 반전

레이건 유일하나 선거에선 패배

낮은 트럼프 지지 회복 거의 불가능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WHCD) 행사장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 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암살 시도가 낮아진 트럼프의 지지율을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026.4.29.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WHCD) 행사장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 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암살 시도가 낮아진 트럼프의 지지율을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026.4.29.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24년 대선 과정에서 암살범이 쏜 총탄에 귀를 맞고 피를 흘리며 “투쟁, 투쟁, 투쟁”을 외쳤다. 이 장면이 대통령 후보로서 강인한 이미지를 확산하면서 당선에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지난 25일 있었던 트럼프 암살 시도도 오는 11월 미 중간 선거를 앞두고 고전하는 트럼프를 구해줄 수 있을까? 트럼프와 백악관은 실제로 국면 전환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미 뉴욕타임스(NYT)는 28일(현지시각) 암살 시도에 직면했던 역대 미 대통령 가운데 인기를 회복한 경우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1명뿐이라고 보도했다.

유명 미 대통령 역사가인 로버트 댈렉과 그의 아들이자 역사가인 매튜 댈렉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암살 시도로 비정한 정치계산이 시작됐다(After an Assassination Attempt, a Grim Political Math Sets In)는 기고문에서 특히 중간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암살 사건이 선거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약.

현직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는 대통령의 정치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흔들리는 대통령의 운을 되살리기는커녕 부정적인 평가가 굳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대통령의 소속 정당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이 역설적인 논리는 일단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트럼프의 지지율은 40% 아래에 머물러 있다) 잃어버린 지지를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1950년 이후 미국에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숨지게 한 사건을 포함해, 총이 발사되거나 대통령을 겨냥한 현직 대통령 암살 시도가 여섯 차례 있었다.

해리 트루먼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두 사람은 위기 앞에서 의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미 기울어진 소속 정당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했다.

1950년 11월1일 중간 선거를 며칠 앞두고 트루먼 암살시도가 발생했다.

당시 논평가들이 트루먼이 속한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지적했지만 유권자들은 한국전쟁, 노동 갈등, 인플레이션에 분노하며 투표로 민주당을 응징했다.

트루먼의 지지율은 암살 미수 직전 39%였다가 사건 직후인 12월에는 33%로 떨어졌다. 트루먼은 임기 내내 낮은 지지율에 시달렸고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1975년 9월 2차례의 포드 암살 시도도 마찬가지로 그의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잇달아 일어난 여러 사건들로 포드는 무능한 최고사령관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

암살 시도가 있기 몇 달 전 포드가 비행기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지는 장면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고 기자들은 포드를 ”얼간이 사령관“이라고 불렀다.

1975년 10월14일 19세 청년이 대통령이 탑승한 리무진을 실수로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자들이 행정부의 무능함을 문제 삼았다.

11월에는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포드를 멍청하고 사고를 달고 다니는 촌뜨기로 조롱했다.

1975년 가을 포드의 지지율은 암살 시도 직전과 마찬가지로 40% 중반대에 대체로 머물렀다. 포드는 이듬해 공화당 경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 질 뻔했고 11월 대선에서 지미 카터에게 패해 백악관을 내줬다.

1981년 3월30일 워싱턴 힐튼 호텔 밖에서 레이건이 총격을 당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은 예외였다.

살아남은 레이건은 당시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 경기침체를 동반한 인플레이션, 이란 인질 사태와 씨름하던 국민에게 희망의 불꽃을 당겼다. 부인 낸시에게 "여보, 몸을 피하는 걸 깜빡했어"라고 농담해 흔들림없는 용기를 과시한 것이다. 수천 명이 레이건의 쾌유를 비는 카드를 보냈고 많은 사람들이 레이건이 살아남은 것에 대해 신께 감사했다.

레이건은 총격을 당한 지 한 달 뒤 상하원 합동서 연설에서 20년 동안 격동하며 쇠퇴해온 미국의 운이 바뀌었다고 선언하면서 자신의 대대적 감세법안을 의회가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1년 5월 레이건의 지지율은 68%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레이건의 높은 인기에도 공화당은 1982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의석을 20석 넘게 잃었다. 레이건만 2년 뒤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트럼프도 레이건이 누린 것과 비슷한 효과를 누릴 것을 기대하고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을 다시 열겠다고 즉각 밝혔으며 대통령 경호를 강화하기 위해 법원이 중단시킨 백악관 연회장 건설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암살 시도에 직면했던 다른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동정심이 남은 임기를 구원해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트루먼과 포드는 자신들을 끌어내리던 구조적 난제들을 극복하지 못했고, 레이건의 경우에도 총격 이후 2년이 지나 경제가 반등하고 나서야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물가 상승과 주유소에서의 고통이 이어지는 시기에 인기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번 암살 시도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지지층을 일부 결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 선거든 남은 임기든 암살 시도가 대통령의 인기를 회복시켜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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