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거꾸로 매달린 ‘황금의 영웅들’…바젤리츠, 베니스에 남긴 마지막 회화 울림

등록 2026.05.08 08:11:51수정 2026.05.08 08:43:24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금빛 화면 위 뒤집힌 노년의 육체, 존재의 흔적

“금은 하나의 색일 뿐”…별세 직후 더 깊어진 베니스 개인전

휠체어 인터뷰 영상만 남긴 채 떠난 ‘거꾸로 회화’ 거장

오는 8월 서울 세화미술관서 대규모 회고전 예정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 전경. 거꾸로 뒤집힌 인물 형상의 대형 회화들이 검은 벽면 위에 설치돼 강렬한 긴장감과 압도감을 전한다.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 전경. 거꾸로 뒤집힌 인물 형상의 대형 회화들이 검은 벽면 위에 설치돼 강렬한 긴장감과 압도감을 전한다.2026.05.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황금빛 화면 위에 거꾸로 매달린 늙은 육체가 떠 있었다.

발끝은 하늘을 향했고, 주름진 얼굴은 바닥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하이힐을 신은 여체도, 뒤엉킨 노년의 누드도 모두 중력에서 이탈한 채 금빛 평면 위를 부유했다.

금빛 화면 속 여성은 성화 같았지만 동시에 무너진 욕망의 초상에 가깝다.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선들은 뼈와 기억의 잔향처럼 떨린다. 발끝에 남겨진 하이힐은 더 이상 유혹의 기호가 아니다. 쇠락해가는 육체 끝에 가까스로 매달린 욕망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것은 결국 인간의 육체였다. 찬란함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존재의 흔적이었다.
독일 화가 바젤리츠가 자신의 부인의 누드를 금빛 화면에 그린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독일 화가 바젤리츠가 자신의 부인의 누드를 금빛 화면에 그린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조르조 마조레 섬의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Eroi d’Oro(황금의 영웅들)’는 아름답고도 쓸쓸하다. 전시 개막 직후 바젤리츠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화가로서의 활동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일종의 결론, 혹은 지난 세월 작업의 종합(synthesis)을 만들고 싶었다”는 바젤리츠의 문장이 적혀 있다. 전시 설명이라기보다 거의 유언에 가깝다.

이번 전시는 바젤리츠가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도달한 회화의 언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금빛 캔버스들이 먼저 관람객을 압도한다. 검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황금빛 회화들은 제단처럼 떠 있다. 그러나 그 안의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 채 뒤집혀 있다.

삐걱거리는 선으로 남은 노년의 육체 위로 원색의 붓질이 상처처럼 얹혔다. 숭고와 쇠락, 성화와 해체가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한다. 공간을 지워버린 황금빛 화면은 쇠약해진 육체와 끝내 사라지지 않는 회화의 에너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베니스=뉴시스]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바젤리츠 금빛 회화 전시가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에서 열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바젤리츠 금빛 회화 전시가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에서 열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평생 이미지를 거꾸로 그려온 화가다. 1969년부터 인물을 뒤집어 그리기 시작한 그는 회화를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어떻게 그리는가’의 문제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이번 연작에서 뒤집힌 육체는 더 이상 형식 실험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삶 전체를 거꾸로 응시하는 노년의 자화상에 가깝다.

특히 이번 전시를 지배하는 것은 ‘금빛’이다. 그러나 바젤리츠는 이를 숭고의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전시장에 설치된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금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빨강이나 파랑 같은 하나의 색일 뿐”이라며 “금빛 배경은 공간성을 지우고 천상의 구체(celestial sphere), 혹은 무(無)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베니스 전시장에 작가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베니스 전시장에 작가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2026.05.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로 금빛 배경은 원근과 장소를 제거한다. 화면 속 인간은 현실 공간 위에 서 있지 않다. 마치 나무판에서 도려낸 성상(icon)처럼 허공 위에 떠오른다. 바젤리츠는 비잔틴 이콘과 고대 미라 초상화를 언급하며 “금빛 배경은 인물의 공간성을 흐리게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연작은 단순한 회화라기보다 성화의 구조 안에 현대 인간의 불안한 육체를 밀어 넣는다. 검은 벽 안에서 황금빛 대작들은 제단처럼 떠 있고, 뒤집힌 인간들은 천국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매달린 존재처럼 흔들린다.

전시 제목 ‘황금의 영웅들(Eroi d’Oro)’ 역시 역설적이다. 화면 속 인물들은 승리한 영웅이라기보다 추락 직전의 인간 군상이다.

앙상한 드로잉 선은 늙은 육체의 흔적처럼 떨리고, 폭발하듯 남겨진 붓질은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은 생의 에너지처럼 남아 있다.

독일 화가 바젤리츠가 부인의 누드를 거꾸로 그린 금빛 회화. *재판매 및 DB 금지

독일 화가 바젤리츠가 부인의 누드를 거꾸로 그린 금빛 회화.  *재판매 및 DB 금지



독일 화가 바젤리츠가 부인의 누드를 거꾸로 그린 금빛 회화. *재판매 및 DB 금지

독일 화가 바젤리츠가 부인의 누드를 거꾸로 그린 금빛 회화.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내 엘케와 자신의 누드를 그린 연작이다. 젊음의 육체가 아니다. 주름지고 처진 몸이다. 그러나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그 육체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거대한 금빛 화면 위에 늙고 쇠락하는 육체를 걸어두었다.

바젤리츠는 영상 인터뷰에서 이번 연작을 “지난 60년간 이어온 수많은 실험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진짜 금빛 바탕 위에 가능한 한 섬세하고 완전한 드로잉을 그리고 싶었다”며 “아내와 나 자신의 누드, 혹은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인간은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져가는 순간조차 이미지가 될 수 있다.” 그의 말년 회화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휠체어에 앉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영상에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그는 건강 문제와 고령 때문에 베니스 전시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베니스에 직접 가지 못해 미안하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폰다치오네 치니에서 열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끝까지 자기 존재보다 회화를 먼저 둔 그의 말은 유언처럼 남았다.

바젤리츠는 황금빛 화면 위에 가장 유한한 인간을 남기고 떠났다. 어쩌면 황금빛은 영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인간에게 잠깐 허락된 마지막 빛이었는지 모른다.

검은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장을 감싸는 공기는 묘하게 장례 의식처럼 느껴진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열린다.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조르조 마조레 섬의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에서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개인전 ‘Eroi d’Oro(황금의 영웅들)’이 열리고 있다.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조르조 마조레 섬의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에서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개인전 ‘Eroi d’Oro(황금의 영웅들)’이 열리고 있다.  2026.05.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조르조 마조레 섬의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에서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개인전 ‘Eroi d’Oro(황금의 영웅들)’이 열리고 있다. 2026.05.0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조르조 마조레 섬의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에서 독일 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개인전 ‘Eroi d’Oro(황금의 영웅들)’이 열리고 있다. 2026.05.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바젤리츠의 생전 마지막 대규모 전시 중 하나로 주목받는 회고전은 오는 8월 서울에서도 이어진다. 흥국생명 빌딩 내 세화미술관은 바젤리츠의 주요 회화와 조각 작업을 아우르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