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희생자 박찬길 검사 유족, 국가 상대 '손배소'
사건 발생 78년 만의 공식 희생자 결정
"국가 진정 어린 사죄, 정당한 배상 필요"
![[여수=뉴시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반대하며 촉발됐다.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1/06/29/NISI20210629_0000776608_web.jpg?rnd=20210629105420)
[여수=뉴시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반대하며 촉발됐다.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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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법률대리인인 서동용 변호사는 정부 여순사건위원회가 4월10일 여순사건 당시 숨진 박찬길 검사와 그의 부친 박인서씨를 여순사건 희생자로 최종 결정했다. 사건 발발 78년만에 이뤄진 공식 희생자 결정이다.
서 변호사에 따르면 황해도에서 월남한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의 박 검사는 1947년부터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석 검사로 재직했다. 해방 후 경찰이 친일 전력을 덮기 위해 좌익 척결을 명분으로 민간인을 과도하게 처벌하자 박 검사는 검사의 양심에 따라 증거가 불충분한 이들을 무혐의 처분하고 권한을 남용한 경찰을 처벌했다.
이 과정서 산에서 무허가로 땔감을 채취하던 남성이 단속을 피해 도망치자 경찰이 총격을 가해 다리를 맞힌 뒤 제압된 남성을 확인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 검사는 해당 총격 경찰을 살인죄로 기소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순천 경찰은 상부에 박 검사를 '붉은 개'라는 뜻의 '적구(赤狗) 검사'로 보고하는 등 깊은 적대감을 드러냈다.
1948년 여순사건이 발발하자 박 검사는 부친과 함께 봉기군을 피해 지인의 집 다락방에 피신해 있었으나 같은 해 10월23일 진압군이 순천을 탈환한 직후 경찰에 체포됐다.
부친은 순천경찰서에서 고문받다 숨졌다. 박 검사는 '인민 재판장 역할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정식 재판도 없이 순천북초등학교 교정에서 총살당했다.
이듬해인 1949년 법무부 조사와 국회 기록 등을 통해 박 검사가 인민재판에 관여한 적이 없으며 진압군에 의해 순천이 탈환된 후에야 은신처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경찰의 혐의 제기는 허위로 밝혀졌다.
합동수사본부는 박 검사의 총살을 주도한 인물로 제8관구 경찰청(현 전남경찰청) 부청장 최천을 지목했으나 경찰 측이 사기 저하 등을 이유로 집단 반발하면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주범으로 지목된 최천은 이후 3선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사건 이후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은 없었던 상태다.
박 검사의 차남 박경진 목사는 "국가가 불법 학살을 인정한 이번 결정은 다행이지만 그동안 가족들이 겪은 통한과 공황장애 등 정신적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며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고 소송 취지를 밝혔다.
서 변호사는 "현직 검사마저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사건에 대해 이제야 첫 국가 책임 인정이 이뤄졌다"며 "유족들이 겪은 공권력에 대한 공포는 세월이 흐른다고 치유될 수 없는 만큼 국가의 진정 어린 사죄와 정당한 배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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