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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형 트레일러닝①]라바레도 힘…지역과 함께 만든 세계적인 대회

등록 2026.08.04 08:00:00

본보 임재영 기자 120㎞ 트레일러닝 도전…28시간만에 완주

돌로미티 절경·지역협력·체계적 안전관리로 유명 대회 성장

제주, 참가규모보다 자연과 주민을 잇는 운영 체계 필요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6월26일 오후 11시(현지 시간)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참가 선수들이 시민과 관광객의 환호를 받으며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시가지를 출발하고 있다. 선수들은 제한시간 30시간 안에 돌로미티산맥을 돌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2026.08.04. ijy788@newsis.com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6월26일 오후 11시(현지 시간)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참가 선수들이 시민과 관광객의 환호를 받으며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시가지를 출발하고 있다. 선수들은 제한시간 30시간 안에 돌로미티산맥을 돌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2026.08.04. [email protected]


트레일러닝은 산과 숲, 능선과 들판, 해안 등 주로 비포장 길을 걷고 달리는 스포츠다. 단순한 기록 경쟁을 넘어 고도 변화와 거친 노면을 극복하는 도전, 자연 속에서 얻는 경험, 안전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함께 요구한다. 세계 각국은 트레일러닝을 지역의 경관과 역사, 공동체를 연결하는 체류형 스포츠관광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세계 유명 대회 현장취재와 인터뷰, 전문가 진단을 통해 제주형 트레일러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2019년 6월, 이탈리아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대회 120㎞에 처음 도전했지만 결승선까지 가지 못했다. 돌로미티의 험준한 산길에서 레이스를 중단해야 했다. 완주하지 못한 기억은 오래 남았다.

7년만인 지난 6월26일 오후 11시, 다시 같은 대회에 출전해 코르티나담페초의 출발선에 섰다. 트레일러닝 120㎞ 종목의 제한시간은 30시간. 출발지이자 도착지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밤을 꼬박 새운 뒤 다시 하루를 버텨야 했다.

초반에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출발선인 안젤로 디보나 광장을 빠져나온 선수들의 헤드램프가 어두운 산길을 길게 밝혔다. 밤공기는 선선했고, 오르막에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록보다 체력 안배를 우선했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해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빠르게 올라갔다. 숲을 벗어난 구간에서는 강한 햇볕을 피할 곳이 없었다. 돌과 자갈이 깔린 오르막은 발을 무겁게 만들었고, 급경사의 내리막은 허벅지에 충격을 쌓았다.

경치는 웅장함 그 자체였다. 돌로미티를 대표하는 3개의 봉우리인 트레 치메의 거대함, 암반 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청량함, 알프스 야생화와 침엽수림이 어우러지면서 압도적인 경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체력이 고갈되면서 주변을 바라볼 여유를 점차 잃어갔다.

가장 큰 위기는 60㎞를 넘어서면서 찾아왔다. 전체 거리의 절반을 지났는데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더위와 수면 부족, 끊임없는 오르내림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간단한 식음료를 제공하는 보급소(CP)에 도착해도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잠시 앉으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6월27일(현지 시간)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참가 선수들이 이탈리아 돌로미티산맥의 암석과 자갈이 깔린 산길을 지나고 있다. 이 종목은 누적 상승고도 5800m를 극복하는 레이스다. 2026.08.04. ijy788@newsis.com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6월27일(현지 시간)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참가 선수들이 이탈리아 돌로미티산맥의 암석과 자갈이 깔린 산길을 지나고 있다. 이 종목은 누적 상승고도 5800m를 극복하는 레이스다. 2026.08.04. [email protected]


‘여기서 그만둘까.’

2019년과 비슷한 지점이었다. 다시 레이스를 중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거리는 여전히 60㎞가량이었다. 지금까지 온 거리만큼을 다시 가야 했다. 후반에는 해발 2000m 안팎의 고갯길도 기다리고 있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달릴 수 없으면 걸었고, 오르막에서는 보폭을 줄였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물이 보이자 머리와 상반신을 흠뻑 적셨다.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젖은 옷이 몸의 열을 식혀 한동안 더위를 견디게 했다. 다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90㎞를 넘긴 뒤에도 가파른 고갯길이 이어졌다. 밤이 다시 찾아왔고, 두 번째 어둠 속에서 헤드램프를 켰다. 다리는 굳어갔지만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는 조금씩 줄었다. 코르티나담페초 시가지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비로소 완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후 28시간11분25초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제한시간 30시간을 1시간48분35초 남긴 기록이었다. ‘완주했다’는 성취감보다 ‘끝까지 버텼다’는 안도감이 먼저 밀려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수차례 넘긴 끝에 얻은 결과였다.

이번 120㎞ 종목에 1491명이 참가해 68.8%인 1026명이 완주했다. 465명이 중도에 멈추거나 제한시간 이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 종목에서 독일의 하네스 남베르거가 11시간45분31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기록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28시간을 넘긴 레이스는 대회의 험난함과 매력을 온몸으로 확인한 시간이었다.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종목에 참가한 본보 임재영 기자가 28시간11분25초 만에 코르티나담페초의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대회 제공) 2026.08.04. photo@newsis.com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종목에 참가한 본보 임재영 기자가 28시간11분25초 만에 코르티나담페초의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대회 제공) 2026.08.04. [email protected]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대회는 2007년 시작됐다.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인 돌로미티와 1956년과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코르티나담페초를 무대로 성장했다. 현재 120㎞를 중심으로 80㎞·50㎞·20㎞·10㎞ 등 5개 종목을 운영한다.

올해 전체 참가자는 93개국 6000여명이다. 신청자 2만명에서 추첨 등으로 선정됐다. 일부 유명 선수만을 위한 엘리트 대회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일반 러너들이 한 번쯤 참가하고 싶은 대회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인 명성의 출발점은 돌로미티라는 빼어난 자연경관이다. 하지만 경관만으로 수천 명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어렵다. 밤 11시 코르티나 중심가에서 출발하는 장면, 라바레도 삼봉(트레치메)을 만나는 코스 구성, 다시 도심의 환호 속으로 돌아오는 결승 장면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구간의 트레 치메. 2026.08.04. ijy788@newsis.com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구간의 트레 치메. 2026.08.04. [email protected]



지역과 함께 만드는 대회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대회 운영이 선수의 이동 순서에 맞춰 세밀하게 구성됐다는 점이다.

대회 전에는 온라인 페이지와 이메일, 57쪽 분량의 러너 가이드를 통해 배번 수령 장소, 장비검사, 주차장, 셔틀버스, 보급소, 제한시간, 의료지원, 동반자 이동방법 등을 안내했다. 공식 안내서는 변경된 일정이나 코스 정보를 이메일과 홈페이지를 통해 참가자에게 알린다는 원칙도 명시했다.

각 보급소에서는 도착 거리와 고도, 누적 상승고도, 제한시간을 구체적으로 표시했다. 의료지원이 가능한 장소와 외부 지원 허용 여부도 구분했다. 단순히 물과 음식을 제공하는 데서 벗어나 선수의 상태를 확인하고, 경기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거점으로 운영했다.

환경보호는 선언적인 수사에 그치지 않았다. 이 대회는 보급소에서 일회용 컵과 접시, 식기류를 제공하지 않는다. 참가자는 개인 컵과 용기를 직접 휴대해야 한다. 참가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만큼 보급소에서 발생하는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크리스티나 무르지아 대회 디렉터는 참가자 안내문에서 "동료 선수를 존중하고, 힘들어하는 참가자를 돕고, 자원봉사자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돌로미티의 환경을 처음 상태 그대로 남겨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대회가 자연 속에서 열리는 이상 참가자는 자연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환경을 지켜야 할 책임자가 된다는 메시지였다. 환경관리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구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하고, 필수 장비와 이동수단, 보급 방식까지 환경 원칙에 맞춰 설계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관광기관, 산장 운영자, 토지 소유자, 자연공원 관리기관, 경찰, 민방위 조직, 산악구조대, 의료진, 자원봉사자가 대회 준비와 운영에 참여한다.

이 대회는 돌로미티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 스포츠 이벤트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관광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대회 기간 선수, 가족, 친구, 후원사, 미디어 관계자, 아웃도어 애호가들이 몰려온다. 방문 수요는 숙박과 외식, 교통, 관광업 등 지역경제 전반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6월27일(현지 시간)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참가 선수들이 이탈리아 돌로미티산맥의 산길을 내려가고 있다. 거대한 암봉과 고산 초원이 어우러진 경관 사이로 험준한 코스가 이어진다. 2026.08.04. ijy788@newsis.com

[코르티나담페초=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6월27일(현지 시간) 라바레도 울트라 트레일 120㎞ 참가 선수들이 이탈리아 돌로미티산맥의 산길을 내려가고 있다. 거대한 암봉과 고산 초원이 어우러진 경관 사이로 험준한 코스가 이어진다. 2026.08.04. [email protected]


제주가 배워야 할 것은 '규모'보다 '구조'

제주도에는 한라산과 오름, 곶자왈, 중산간 목장, 해안길 등 세계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트레일 자원이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길만 연결해서는 세계적인 대회를 만들 수 없다.

라바레도가 제주에 주는 시사점은 먼저 경관을 최대한 살린 코스 설계다. 라바레도는 밤의 코르티나, 산중의 새벽, 계곡과 암봉의 경관, 도심 결승이라는 장면을 코스 안에 배치했다.

안전과 편의는 대회의 핵심 요소다. 바바라 마초코 라바레도 대회 홍보담당은 "안전은 우리의 최우선 과제이자 대회 전체를 세우는 기초다"며 "참가자들이 돌로미티의 아름다움과 도전을 경험하는 동안 전문적인 안전 체계가 작동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의 주체적인 참여도 대회의 지속성을 좌우한다. 코스 통제로 불편만 겪거나 대회가 지나간 뒤 쓰레기와 훼손만 남는다면 주민의 협조는 오래가지 않는다. 마을회와 지역 상인, 관광사업자, 토지 소유자, 자원봉사단체가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대회의 경제적·사회적 효과를 공유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참가 규모를 정할 때 먼저 고려할 요소는 환경 수용력이다. 세계대회라는 이름을 내세워 참가자를 단기간에 늘리기보다 탐방로의 훼손 정도와 교통 여건, 보급소 수용력에 맞춰 규모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회가 끝난 뒤 코스 점검과 훼손 구간 복구는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라바레도 대회는 20년 가까이 경험과 신뢰를 쌓았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확인한 대회의 경쟁력은 웅장한 돌로미티에만 있지 않았다. 산과 도시, 주민과 참가자, 행정과 민간조직이 각자의 역할을 맡고 대회를 함께 운영했다. 제주가 배워야 할 핵심도 참가 규모나 국제대회라는 이름보다 지역과 자연,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는 운영 구조에 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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