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얼굴 지우고 기억 쌓고…유키마사 이다의 ‘이치고이치에’ 미학

등록 2026.08.20 16:17:09수정 2026.08.20 17:00:04

서울 대구 우손갤러리서 한국 첫 개인전

기억·시간·존재의 순간, 두꺼운 물감으로 포착

묘비 제작소서 일한 10대 경험…'이치고이치에' 철학

나라·쿠사마 존경…“죽기 전까지 계속 미완의 상태일 것”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일본 스타작가 유키마사 이다가 20일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자신의 대형 회화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30점, 서울 우손갤러리에서 20점 등 총 50점을 동시에 선보인다. 2026.08.20. hyun@newsis.com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일본 스타작가 유키마사 이다가 20일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자신의 대형 회화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30점, 서울 우손갤러리에서 20점 등 총 50점을 동시에 선보인다. 2026.08.20. [email protected]


[대구=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뼈로 돌아가겠구나.”
일본 스타작가 유키마사 이다(36)가 10대 때 묘비를 만드는 곳에서 일하며 품었던 생각이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경험은 훗날 그의 회화를 관통하는 ‘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로 이어졌다.

우손갤러리(대표 김은아)는 오는 27일부터 10월31일까지 이다의 한국 첫 개인전 'See You Tomorrow'와 'Inner Garden'을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 개최한다. 23일부터는 경주 오아르미술관에서도 대규모 개인전을 펼친다.

1990년 일본 돗토리에서 태어난 이다는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반복할 수 없는 시간과 존재의 순간을 두꺼운 물감과 격렬한 붓질로 붙잡아온 작가다.

작업의 근간에는 일본 전통 사유인 ‘이치고이치에’가 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이라는 뜻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유다.

Van Gogh No.3, oil on canvas, 145.5 x 112 cm *재판매 및 DB 금지

Van Gogh No.3, oil on canvas, 145.5 x 112 cm *재판매 및 DB 금지




20일 기자들과 만난 이다는 이 개념이 자신의 삶에 자리 잡게 된 배경으로 18~19세 때의 경험을 꺼냈다.

“묘비를 만드는 곳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화장한 고인의 뼈를 유골함에 담기 위해 깨끗하게 닦는 작업도 직접 했습니다. 그때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가까이서 본 경험은 역설적으로 하루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인생을 좀 더 소중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인도 여행에서 그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길거리에서 사람이 죽고 시신이 바로 화장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 인도에서 만났던 사람과 풍경을 두 번 다시 똑같이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제 마음속에 갑자기 떠오른 것이 이치고이치에였습니다.”

삶에서 시작된 이 사유는 회화의 방법론으로 이어졌다.

이다의 인물화는 얼굴을 선명하게 재현하지 않는다. 화면 아래에는 사실적인 인물이 있지만 그 위로 물감을 거듭 쌓아 올린다. 강렬한 붓질과 중첩된 물감 사이에서 얼굴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오간다.

이다는 이를 ‘기억의 레이어’라고 했다.
“기억은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흔들리는 것이고 항상 변화합니다. 기억을 붙잡고 싶을 때 결국 그것은 녹아내리고 사라집니다.”

그에게 초상은 한 사람의 외형을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을 그리더라도 화면으로 옮기는 순간 대상은 이미 과거에 속한다. ‘존재하는 사람’보다 ‘존재했던 사람’에 가까워진다.

Self Portrait, 2026, oil on canvas, 194 x 162 cm *재판매 및 DB 금지

Self Portrait, 2026, oil on canvas, 194 x 162 c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는 서울과 대구에서 서로 다른 작업 세계를 펼쳐 보인다.

대구 우손갤러리에서는 인물화(Portrait), 반 고흐(Van Gogh), 풍경화(Landscape)를 아우르는 대형 회화를 중심으로 이다 특유의 회화적 다이내미즘을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10년 이상 지속해온 장기 프로젝트 ‘End of today(오늘의 끝)’를 중심으로 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작업을 선보인다.

‘End of today’는 하루의 끝에서 그날 보고 느낀 것과 축적된 기억을 화면에 기록하는 연작이다. 이다는 이를 ‘삶의 기록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대구 우손갤러리 유키마사 이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대구 우손갤러리 유키마사 이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풍경화 역시 같은 시간관에서 출발한다. 이다는 실제 장소를 찾아 야외에서 작업하며 가능한 한 하루 안에 그림을 완성한다. 그리는 동안에도 바람이 불고 빛이 바뀌면서 눈앞의 풍경이 끊임없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초마다 세계가 바뀝니다. 바람은 불고 빛은 변하고 모든 것이 한순간도 똑같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지를 남기고 싶지만 자연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판타 레이(Panta Rhei·만물은 흐른다)’도 꺼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손갤러리 이다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우손갤러리 이다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대구에서 선보이는 반 고흐 연작은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과 정면으로 마주한 작업이다.

이다는 “고흐는 미술사에서 영웅과도 같은 존재이고 제게도 영웅”이라며 “고흐를 작업하면서 정말 엄청난 인물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장의 화풍을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두지는 않았다.

“단순히 고흐를 흉내 내려고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말 프레시한 상태로 작품과 마주해야 합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일본 작가 유키마사 이다가 20일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을 따라 프랑스를 찾아 그린 풍경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6.08.20. hyun@newsis.com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일본 작가 유키마사 이다가 20일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을 따라 프랑스를 찾아 그린 풍경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6.08.20. [email protected]



화가가 된 계기 역시 한 작품과의 강렬한 만남이었다. 석조 조각가인 아버지 이다 카츠미가 10대 아들에게 유화 물감을 사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미술관에서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그림을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림 앞에서 2~3시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림인데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살아서 호흡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런 것을 할 수 있다면 나도 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를 묻자 나라 요시토모와 구사마 야요이를 꼽았다. 특히 구사마에 대해서는 “그 연세가 될 때까지 굉장히 열정적으로 작업하고 있다”며 “저도 그렇게 작업을 끝까지 관철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빠르게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현재를 ‘성공’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성공을 이루어나가야 하는 단계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Yukimasa IDA, End of today - 6_10_2026 Homage to Picasso - , 2026, oil on canvas, 24.2 x 33.3 cm *재판매 및 DB 금지

Yukimasa IDA, End of today - 6_10_2026 Homage to Picasso - , 2026, oil on canvas, 24.2 x 33.3 cm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인상도 밝혔다. 특히 젊은 컬렉터들의 열기를 일본과 비교했다.
“일본도 한때 젊은 컬렉터들이 많이 늘었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아트 신을 많이 떠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트에 대한 열정도 한국 분들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30대 작가에게 ‘빠른 성공’에 대한 부담을 묻자 돌아온 답은 뜻밖에 담담했다.

“아마 죽기 전까지 계속 미완의 상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10대에 죽은 이의 뼈를 닦으며 삶의 유한함을 마주했던 작가는 이제 사라지는 얼굴과 다시 오지 않을 풍경을 그린다. 그에게 ‘이치고이치에’는 빌려온 미학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에서 나온 회화다. AI가 이미지를 쏟아내는 시대, 그의 화면에 남은 거친 붓질과 물감의 흔적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전시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