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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지키던 이언적 일가 묘, 유교적 재사로…'포항 달전재사' 국가유산 됐다

등록 2026.08.26 09:49:53수정 2026.08.26 09:58:26

승려들 암자→유교적 재사 변화 과정 간직

조선 후기 문중 문화·'튼ㅁ자형' 양식 보존

[서울=뉴시스]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7.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7.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국가유산청이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한 '여강이씨 달전재사'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달전재사는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과 일가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된 건축물이다.

특히 승려가 묘역을 관리하던 불교적 성격의 작은 암자인 '분암'에서 출발해 문중이 중심이 된 유교적 재사로 변화한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처음 조성된 분암에는 승려가 거처하면서 불상을 함께 모시는 '인법당' 구조가 갖춰졌다. 이후 17세기 중엽 이후 종법 질서가 확대되고 문중의 결속력이 강화되면서 묘역 관리와 제사를 위한 문중 중심의 재사로 변화했다.

[서울=뉴시스]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7.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7.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754년에는 옥성루와 양익실, 고사 등을 증축하면서 현재와 같은 재사의 모습을 갖췄다. 양익실은 'ㅁ자형' 건물 배치의 양쪽 공간으로 제사 준비나 문중 구성원의 숙소로 사용됐고, 고사는 제사용 곡식 등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했다.

달전재사의 창건과 변화 과정은 '달전암기', '달전재사 상량문' 등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묘소와 1586년 건립된 신도비, 재사,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인 묘위토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조선 후기 재사 공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건축적으로는 경북 북부 지역의 대표적 양식인 '튼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처음 분암이 조성될 당시 승려가 살던 방에 불상을 모신 인법당 구조를 비롯해 이익공 공포 형식, 판재로 마감한 정침 천장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1754년 증축한 옥성루에도 같은 이익공 양식이 적용돼 처음 건립 당시의 건축 양식이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 내부 양익실과 고사(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7.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 내부 양익실과 고사(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6.07.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국가유산청은 달전재사가 17세기 중엽 이후 종법 질서의 확대와 문중 결속력 강화를 배경으로 불교적 색채의 분암에서 문중 중심의 유교적 재사로 전환·정착되는 과도기적 운영 실태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문헌을 통해 건립과 변화 과정, 운영 실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고 관련 건축물과 묘역도 함께 보존돼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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