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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어쩔수가없다'는 오스카를 받을 수 있을까

등록 2026.01.14 0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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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어쩔수가없다'는 오스카를 받을 수 있을까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판타스틱 우먼'은 2018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당시 외국어영화상(현재 국제장편영화상) 유력 후보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였다. 만약에 '더 스퀘어'가 받지 못한다면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가 받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오스카는 엉뚱한 영화가 가져갔다. '판타스틱 우먼'. 미국 언론은 이 결과를 두고 이변이라고 했다.

2018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 명단엔 다소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 해 크리틱스초이스와 골든글로브를 모두 가져간 파티 아킨 감독의 '심판'(In the Fade)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 한 것. 그간 골든글로브나 영국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영화가 대체로 미국 아카데미에서도 유사한 성과를 냈던 걸 떠올려 보면 후보 지명도 안 된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판타스틱 우먼'이 빼어난 영화라는 덴 이견이 없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미국 인디펜던트스피릿어워즈에서도 최우수 국제영화상을 차지했다. 트랜스젠더 이야기는 당시 소수자를 향한 관심을 끌어올리고 있던 할리우드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했다. 다만 영화 자체 완성도를 떠나 오스카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레이스를 펼쳤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였다.
[클로즈업 필름]'어쩔수가없다'는 오스카를 받을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2026년의 '판타스틱 우먼'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이끌어내며 오스카에서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이끌어냈던 이 영화는 지난해 11월께 시작한 오스카 레이스에서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열린 거의 모든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품에 안은 트로피는 없다. 수상 기록만 본다면 '어쩔수가없다' 오스카 수상 가능성은 '판타스틱 우먼'만큼 낮다.

현재 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에서 가장 앞서 달리는 건 클레베르 멘돈샤 필류 감독의 '시크릿 에이전트'다. 이 영화는 지난 11일 열린 골든글로브와 지난 4일 크리틱스초이스에서 모두 이 부문 상을 받았다.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이다. 오스카 레이스 초반까진 '그저 사고였을 뿐'이 프런트러너라는 평가가 다수였으나 '시크릿 에이전트'가 판을 뒤집은 상태다.

지난 10년 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 미국 아카데미에서 같은 성과를 낸 건 총 5번이었다. 지난해 '아임 스틸 히어', 2022년 '드라이브 마이 카', 2020년 '기생충', 2019년 '로마', 2016년 '사울의 아들'이다. 나머지 5번 행사에선 골든글로브와 미국 아카데미 수상작이 달랐다. 다만 이 경우 5편 중 3편이 영국 아카데미에서 승리했다. 2024년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년 '서부 전선 이상 없다', 2021년 '어나더 라운드'는 모두 영국에서 승자가 된 뒤 미국으로 건너왔다. 2017년 '세일즈맨'은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칸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어쩔수가없다'가 다시 오스카 레이스에 변화를 줄 만한 주요 영화 중 하나로 거론되려면 다음 달 22일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결과가 중요하다. 여전히 '시크릿 에이전트'와 '그저 사고였을 뿐'이 가장 강력한 후보이긴 하나 미국보다 영국에서 박 감독 영화에 더 큰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은 기대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어쩔수가없다'는 소재와 주제 측면에서 '시크릿 에이전트'나 '그저 사고였을 뿐'과 비교할 때 어쩔 수 없이 아카데미 회원의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대 가장 정치적인 행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일 미국 미네소타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단속 중 평범한 여성 시민인 르네 굿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이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거센 반발을 불러오는 중이고, 할리우드 스타들도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을 전에 없을 정도로 높은 강도로 비판하고 있다.
[클로즈업 필름]'어쩔수가없다'는 오스카를 받을 수 있을까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많은 배우들이 르네 굿과 연대를 선언하며 '비 굿'(BE GOOD) 배지를 달았다. 일부 배우는 '아이스 아웃'(ICE OUT) 배지를 달기도 했다. 마크 러팔로는 트럼프 대통령을 "최악의 인간"이라며 "그는 유죄를 받은 강간범"이라고 했다. 진 스마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며 "나는 지금 배우가 아니라 시민이자 엄마로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정치적 움직임은 미국 최대 시상식인 아카데미에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은 1977년 브라질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시크릿 에이전트'나 이란 정권 탄압을 받아온 파나히 감독이 자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 경험을 영화로 만든 '그저 사고였을 뿐'에 다소 기울 수밖에 없다. '어쩔수가없다'가 보여준 너절한 남성성에 대한 탐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시의성 면에선 아카데미의 관심을 받기엔 다소 어려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시크릿 에이전트'와 '그저 사고였을 뿐'은 완성도 면에서도 '어쩔수가없다'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완성도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면 정치적인 판단이 더 중요해진다. 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3월15일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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