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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호텔보다 호스텔이 좋은 이유

등록 2012.11.22 07:41:00수정 2016.12.28 01: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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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36>  6~8월 여름에만 문을 연다는 헬레쉴트는 단조로운 건물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전에는 학교와 유치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메인빌딩 아래쪽으로 난 나무계단 길을 따라가 보니 방갈로 식으로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언덕 위에 위치한지라 닥터 H가 추천한대로 전망은 탁 트였다. 예이랑에르 피오르드 끝자락과 여객선이 지나다니는 풍경을 방안에서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36>

 6~8월 여름에만 문을 연다는 헬레쉴트는 단조로운 건물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전에는 학교와 유치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메인빌딩 아래쪽으로 난 나무계단 길을 따라가 보니 방갈로 식으로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언덕 위에 위치한지라 닥터 H가 추천한대로 전망은 탁 트였다. 예이랑에르 피오르드 끝자락과 여객선이 지나다니는 풍경을 방안에서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골든루트 지대까지 내려오니 이젠 자정무렵이 되면 해가 잠깐이라도 지는 듯하다.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완벽한 백야지대는 어느새 벗어난 것이다. 밤에 나갈 데가 없고 다음날(7월11일) 아침에도 일어났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룸메이트 캐서린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보내는 수밖에. 파리에서 지낸 적이 있어 외국어를 말하는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캐서린은 상당히 지적인 여성이다. 나를 위해 또박또박 분명하게 영어를 발음해줬다.

 내가 “또 비가 내리네” 하고 푸념하자 “여긴 노르웨이니 그러려니 해야 해” 한다. 자신의 남편이 현재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데 노르웨이인들이 그곳으로 이민을 많이 가는 이유가 해가 많이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젯밤 자기 집게 머리핀을 집는데 스프링이 튀어오르며 사라졌다고 만약 발견하면 알려달라고 하길래 ‘바로워스’(사람의 물건을 빌려다쓰는 동화속 소인)가 가져갔나보다고 하니 노르웨이에서는 이럴 때 트롤(노르웨이 전설 속 못생긴 요정)이 가져갔다고 한다고들 한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그러면서 헬레쉴트 하이킹 지도를 주며 설명을 해준다. 이 호스텔 리셉션에서 무료로도 구할 수 있는 것인데, 마을 내 관광안내소에서 10크로네(약 2000원)를 주고 샀다며 속상해한다. 나도 리셉션에서 가져온 같은 지도가 있었지만 성의를 봐서 그냥 고맙다며 받았다.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덜 속상하라고.

 어느새 비가 그쳤기에 슬슬 호스텔을 나서 엄청난 크기로 요란한 물소리를 내는 폭포 헬레쉴트포센 옆 경사로를 걸어내려가 마을로 들어섰다. 이곳도 역시나 여름을 맞아 들꽃과 풀이 만발했는데, 토끼풀조차 어찌나 진하고 향긋한 냄새를 내는지 깜짝 놀랄 정도다. 한창 꿀을 품을 시기인지 달콤한 향기에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다. 노르웨이는 이렇게 오래된 동네마저 깨끗하다.

 고인 물 냄새 같은 역겨운 냄새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고 상쾌한 공기만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두 시간이면 속속들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하지만 그저 스쳐지나갔다면 아쉬웠을만큼 아름다운 동네다. 인적이 드물어 영화 세트처럼 깔끔하게 가꿔진 아늑한 동네를 마음껏 휘저으며 걸어다녔다.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36>  6~8월 여름에만 문을 연다는 헬레쉴트는 단조로운 건물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전에는 학교와 유치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메인빌딩 아래쪽으로 난 나무계단 길을 따라가 보니 방갈로 식으로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언덕 위에 위치한지라 닥터 H가 추천한대로 전망은 탁 트였다. 예이랑에르 피오르드 끝자락과 여객선이 지나다니는 풍경을 방안에서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이제는 노인들만이 머무르는 ‘은퇴촌’으로 전날(7월10일) 나를 태워다줬던 이처럼 젊은 사람이라고는 여름 한철 놀러오는 이들 뿐이다. 마을 초입의 학교건물같은 아파트가 뭔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양로원이다. 굉장히 늙은 부부 한쌍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길래 말을 거니 할아버지는 거의 지각이 없는 듯하고 슬픈 눈을 하고 있는 할머니만이 손을 가로젓는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뜻인지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마을 안쪽 주택가로 들어서니 집 앞에 나앉은 노인 옆에 젊은 여성이 반가운 기색을 드러낸다. 목조 집이 예쁘다고 하니 “1893년도에 지어진 집”이라고 대답한다. 노인은 그녀의 아버지일까, 그를 돌보기 위해 왠지 그녀의 젊음을 이 시골에서 저당 잡히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이들을 보는 건 왠지 마음이 아프다. 그들도 그들만의 역동적인 젊은 날이 있었을 테지만, 누구나 늙는 것은 같다. 한번 뿐인 생, 더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우며 후회 없이 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페르귄트를 목재부조로 형상화한 갤러리

 흰 비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뒷산을 배경으로 흰색으로 깨끗하게 칠해진 집들은 대개 1800년대 하반기에 지어진 집이다. 지어진 연도의 숫자를 외벽에 표기해놓은 집들이 많다. 2층 베란다나 지붕있는 현관입구 혹은 작은 정원에 안락의자나 정원용 의자세트를 늘어놓은 집이 많아 살고싶을 정도로 부럽다. 뒷산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면 예배당이 있다. 흰 외벽의 목조건물 지붕에 뾰족탑을 올려놓고 역시나 ‘1859’라는 숫자를 적어놨다. 오솔길 초입에 낮시간 동안 개방하니 방문하라는 안내판만 붙어있다. 목사는 이곳에 머무르지 않고 예배가 있을 때만 들르는 듯싶다.

 울타리 안 잔디밭에는 크고 작은 묘비들이 늘어서있고 안쪽도 흰색으로 칠해진 예쁜 교회다. 아이들이 그린 알록달록한 예수 그림으로 벽을 장식해놓은 것도 예쁘다. 이곳 시골 교회의 소박한 성화와 부조들을 보는 것도 언제나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마침 뱃속에서 화장실을 가고프다는 신호가 온다. 한국식과 달리 워낙 기름진 음식들을 먹다보니 변의를 느낄 때가 자주 있는데 이곳에서는 공용 화장실 찾기가 참으로 힘들다. 화장실을 찾아 허겁지겁 나오다가 조그마한 비석을 보지 못하고 정강이뼈에 세게 부딪히며 걸려넘어져 말그대로 나뒹굴었다. 피가 배어나오고 살이 패는 흉터가 졌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너무너무 아프다. 보는 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랄까. 주섬주섬 추스르고 일어나 페르귄트 갤러리까지 내려가 용변을 해결했다.

 2002년 개관한 이 목조건물 갤러리는 관광안내소를 겸하고 있는데 여기서 일하는 아가씨는 인도계로 보이는 진한 갈색 피부의 미인이다. 어제 현지인 남자와 함께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보고 관광객인줄 알았더니 퇴근길이었던 것이다. 헬레쉴트라는 마을 이름이 참 예쁘다고 유래를 물어봤더니 여기 온지 얼마 안돼서 잘모른다는 답변이다. 갤러리 안에서 사진촬영이 안된다고 하길래 취재를 위해 허락해달라고 했더니, 그새 살며시 헬레쉴트 하이킹지도 위에 올려져있던 ‘10NOK’ 가격표를 보이지 않게 치운다. 필름종이에 사진까지 인쇄된 질좋은 지도지만 대체 다른데서 무료로 구할 수 있는 것에 왜 돈을 받는지 모르겠다.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36>  6~8월 여름에만 문을 연다는 헬레쉴트는 단조로운 건물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전에는 학교와 유치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메인빌딩 아래쪽으로 난 나무계단 길을 따라가 보니 방갈로 식으로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언덕 위에 위치한지라 닥터 H가 추천한대로 전망은 탁 트였다. 예이랑에르 피오르드 끝자락과 여객선이 지나다니는 풍경을 방안에서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작은 갤러리만은 진짜 멋졌다. ‘페르귄트’는 노르웨이 국민 극작가 입센이 1867년 발표한 극시다. 몰락한 지주의 아들 페르 귄트가 애인 솔베이지를 버리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났다가 무일푼이 돼 귀국, 솔베이지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다.

 오드빈 파르(Oddvin Parr)라는 헬레쉴트 출신의 조각가가 ‘페르귄트’의 주요장면을 목재부조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북유럽의 유명 목각사들 중에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농부 출신들도 꽤 되는데 그도 그런 예술가중의 한사람이다. 사람 키만한 높이의 대형부조 여남은개가 벽을 그득 채웠다. 나무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토속적인 맛을 잘살렸고 나무색과 어우러지게 채색도 했다.

 스코틀랜드 조상을 가진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가 작곡한 ‘페르귄트 모음곡’이 연이어 흐르는 가운데 높은 삼각천장은 나무 서까래가 드러나 있고 나무 블라인드를 쳐놓아 은은한 햇빛이 비쳐든다. 사실 나는 이 방탕한 망나니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모로코 추장의 딸 아나트라 조각의 육감적 양감만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목조각의 장면 장면을 설명해놓은 낡은 종이를 일일이 붙여놨는데 자세히 읽어보느라 금세 피로가 몰려왔다. 재밌는 ‘보너스’ 설명지를 발견했는데 헨리크 입센이 헬레쉴트에서 영감받았다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1862년 입센은 연구여행을 위한 장학금을 받아 이 일대 산과 피오르드를 여행했고 헬레쉴트 사람들과 많이 얘기를 나눴으며, 그때 작품의 캐릭터와 배경이 배태됐다는 것이다. 이곳에 페르귄트 갤러리를 세우기 위한 당위가 필요한 듯 느껴졌다.

 점심을 때우기 위해 갤러리를 나와 슈퍼마켓에 들렀다. 이 고을에도 역시 한국동포가 만든 미스터리 라면은 빠지지 않고 있다. 농심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 라면 포장지에는 쇠고기맛, 닭고기맛이라는 표기는 한글로 돼있는데 이런 곳에서 한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갑다. 아마 현지인들이나 타국 관광객들은 이것이 어느나라 글자인지 별 관심이 없을 터이지만.

 다시 부둣가로 걸어갔더니 어제 나를 숙소에 태워다줬던 현지인의 집이다. 창문가에 그가 어린 늦둥이를 돌보는 모습이 비쳐보인다. 물가에는 남녀 한 쌍이 작은 배를 탈 준비를 하더니 배를 띄워 나갔다.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서 이 훌륭한 공간을 나 혼자 향유한다는 것이 더 기꺼운 것만 같다. 나무로 만든 테이블과 벤치가 어디나 흔하다. 따로 가공을 하지 않아 자연친화적인 것이 맘에 든다. 한군데 앉아 요구르트 두 통을 먹고 다시 언덕을 올라 숙소로 돌아와 다음 기착지로 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36>  6~8월 여름에만 문을 연다는 헬레쉴트는 단조로운 건물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전에는 학교와 유치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메인빌딩 아래쪽으로 난 나무계단 길을 따라가 보니 방갈로 식으로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언덕 위에 위치한지라 닥터 H가 추천한대로 전망은 탁 트였다. 예이랑에르 피오르드 끝자락과 여객선이 지나다니는 풍경을 방안에서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스트륀의 아름다운 산장에서 만난 한국인

 스트륀 호스텔은 그야말로 요스테달스브렌 빙하계곡으로 가기 위한 중간 정류장이다. 헬레쉴트에서 스트륀으로 가는 버스는 성수기에는 밤늦게까지 하루 4번 있는데 더 이상 할일도 없고 해서 오후 1시50분에 마을 가운데 있는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 전후해서 호스텔 근처에도 버스가 선다는 정보를 듣고 조바심치는, 좋게 말하면 준비성 있는 꼼꼼한 성격대로 30여분 전부터 나가서 도로가에서 죽치고 앉아 기다렸다.

 스트륀에서 오는 쪽에 작은 부스가 하나 있지만 거기 앉아있다가는 버스기사가 나를 못 볼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아예 아스팔트 도로 가에 대형 캐리어를 눕혀놓고 그 위에 앉아서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시간이 지나도 타야할 버스는 오지 않고,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내 앞에서 급정거를 한다. 뭔가 하고 보니, 함께 여행중인 커플이 운전대를 바꿔 쥐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다음 버스는 오후 5시30분에 있던데 그걸 타야하나, 하고 있는데 1시57분쯤 마을에서 언덕으로 난 길을 올라 바로 코너를 돌아가던 버스가 나를 발견했다. 귀퉁이에 버스를 세워주기에 짐을 끌고 허둥지둥 뛰어가서 버스 옆구리에 짐을 싣고 버스에 올랐다. 하여간 이동할 때마다 파란만장하다.

 한시간여 만에 스트륀 도착. 스트륀 호스텔도 한참을 올라야하는 언덕 위에 위치해있다. 출발 전 매일같이 옮겨야하는 숙소를 일일이 찾는 것이 너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성수기에 숙소를 잡지 못할까봐 하이호스텔닷컴 사이트에서 각 지역 공식 유스호스텔을 한꺼번에 예약해버렸는데 위치를 좀 더 살펴봤어야만 했다. 택시비와 고생하는 것을 고려해 좀 비싸더라도 정거장 가까운 호텔을 찾아봤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살인적인 물가라는데 호텔 가격을 알아보지 않아 얼마나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호스텔에 미리 도착시간을 알려주면 무료 픽업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는건 뒤늦게 알았다.  

 다행히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사람들이 더욱 친절해진다. 버스기사에게 가는 길을 묻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택시를 불러준다. 살집이 실해 덩치가 큰 여자 택시기사도 어찌나 친절한지, 짐까지 손수 내려주고는 호스텔 리셉션 사무실이 열렸나 확인까지 해주고 간다. 호스텔 중에는 체크인 시간을 정해놓고 한두시간만 문을 여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성의들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곳 호스텔은 단조로운 디자인이지만 깔끔한 산장같은 느낌에 마음이 벅차오르도록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자랑한다. 붉은 색 외벽에는 장미덩굴이 자라고 진분홍, 보라색 들꽃들이 무성하다. 그 선명한 색채에도 마음이 일렁인다. 그냥 아름답다는 것 이상의 꾸밈이 없는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풍경이다. 나무결과 옹이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목재로 된 방안 벽도 마음에 쏙 든다. 7인용 방은 천장이 몹시 높아 탁 트인 느낌이 들고 2층 침대도 사람 키높이다. 외부로 뚫린 전면창 밖으로는 비에 촉촉이 젖은 푸르른 전원풍경과 고즈넉한 마을이 내다보인다. 창 바로 앞에는 투박한 작은 탁자가 하나 놓여있는데, 그 위에 노트북을 꺼내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데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이 밀려든다. 이런 나날만 계속됐으면 할 정도로 이 순간이 흘러가는 것이 마냥 아쉽다.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36>  6~8월 여름에만 문을 연다는 헬레쉴트는 단조로운 건물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전에는 학교와 유치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메인빌딩 아래쪽으로 난 나무계단 길을 따라가 보니 방갈로 식으로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언덕 위에 위치한지라 닥터 H가 추천한대로 전망은 탁 트였다. 예이랑에르 피오르드 끝자락과 여객선이 지나다니는 풍경을 방안에서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짐을 푸는 동안 비가 또 내렸나본데,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비를 피해다니는 행운이 나를 따라다니는 듯해 괜히 기분이 좋다. 호스텔이 위치한 언덕은 주택가라 주변에 정원을 깔끔하게 가꿔놓은 집들이 예쁘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글쓰기에 아주 적격이다.

 7인용 방을 혼자 쓰나했더니, 30대 중반의 한국인 여성 S가 왔다. 하룻밤이지만 동숙할 수 있는 동포를 만나게 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S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현재 영국에서 어학연수 중이다. 연수 도중 짧게 짧게 유럽여행을 다니는데 캐리어의 크기는 내 것 못지않다. 이걸 끌고 세상에나 그 먼 언덕을 버스에서 만난 일본인 남자애와 걸어올라 오려했단다. 다행히 이 동네에 사는 부부가 차를 몰고 올라오다가 중간에 태워줬기에 망정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여행에서 짐이 많으면 전생의 업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겹지만 뭔가 부족하면 안심이 안 되는 이 이심전심이여. S는 영국남자들의 신사도에 대해 얘기해준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으면 재빨리 들어다주고는 고맙다는 말을 할 새도 없이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린다는.

 어떤 이는 공동숙소가 영 편치 않아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호텔로 옮겼다지만 오랜 여행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호스텔이 좋다. 이렇게 너른 방을 단 둘이 쓸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오는 것도 좁은 독방을 쓰는 것보다 훨씬 좋다. 빈 침대가 많은데도 S와 같이 오던 또 다른 한국인 처녀 D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시도했는데 이 호스텔에 방이 없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헬레쉴트로 갔다고 한다. 요즘 같이 공중전화도 찾기 힘든 시절에 로밍폰으로까지 직접 전화해보기는 전화비를 고려해서라도 좀 힘들지만 전화를 해보면 의외로 빈 숙소를 찾을 수가 있다. 인터넷 시대의 맹점이다. 아니면 호스텔 경영을 헐렁하게 하는 것인지.

 이곳에도 역시 20대 동유럽 출신 남녀 3명이 운영을 맡고 있다. 노르웨이 호스텔 직원은 거의 동유럽계가 점령하고 있는 듯하다. 비싼 임금을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막을 순 없지만 노르웨이까지 와서 현지인들을 직접 접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7월11일 헬레쉴트→스트륀>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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