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재의 크로스로드]빅토리아 시대로의 회귀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지식정보부장 = 노출에 대한 인식은 동양과 서양이 큰 차이를 보인다. 수영복이 단적인 예다. 우선 출발점부터 다르다. 서양인들의 수영복은 "옷을 입기는 입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드러낸다. 동양인들의 수영복은 "옷을 벗기는 벗어야 할 텐데…"라는 인식을 담아낸다. 서양인의 눈에는 동양인의 수영복이 상당히 보수적으로 비치는 반면 동양인의 시각으로는 서양인의 수영복이 아주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양의 관점으로는 서양은 아주 개방적이다. 서양인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서양도 아주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빅토리아(Victoria) 시대는 전세계적으로 금욕을 강조했던 시기다.
빅토리아 여왕은 재위(1837~1901)중 영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영국은 19세기 내내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의 관행, 법률, 사조(思潮)는 곧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았다. 영국이 금욕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유럽국가들은 물론 신대륙도 이를 그대로 따라갔다.
이처럼 보수적인 분위기가 고조된 것은 역사적 반동으로 봐야 한다. 200년 전의 청교도 혁명 직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올리버 크롬웰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집권하자마자 육체적 쾌락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크리스마스조차 축일(祝日)에서 빼버렸다. 하지만 크롬웰이 죽은 후 왕정복고가 이뤄지자 사회 분위기는 달라졌다. 방탕한 생활이 유행처럼 번졌다. 빅토리아 여왕의 삼촌 조지 4세는 유명한 바람둥이로 스캔들을 달고 살았다.
빅토리아여왕이 즉위한 후에는 다시 금욕주의가 대세로 굳어졌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남녀가 함께 있을 때는 성(性)을 연상케 하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여성의 다리를 떠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다리(legs)'라는 말 대신 '사지(limbs)'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말이나 글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공개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사랑을 고백할 때는 꽃을 사용했다.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다.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주면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받아들였다.
테이블 또는 책상 다리가 아예 보이지 않도록 천으로 가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속설이 널리 퍼진 건 영국의 여성작가 프랜시스 트롤롭(Frances Trollope) 때문이다. 그녀는 미국 여행 중 경험한 미국인들의 무지와 무례에 질려버리고 만다. 그래서 풍자소설 '미국인의 가정 예의(Domestic Manners of the Americans)'를 통해 미국인들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영국이나 미국 가정에서 테이블 다리를 천으로 가렸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우스운 것은 이동식 탈의시설(bathing machine)의 대중화였다. 이 시설은 옷장에 바퀴를 달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자마자 유럽은 물론 미국과 멕시코로까지 퍼져나갔다. 그야말로 19세기의 '글로벌 히트상품'이었다.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바닷속으로 탈의시설을 끌고 들어간 후 그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수영을 즐겼다. 당시만 해도 수영복이 일반화되기 전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동식 탈의시설에 옷을 벗어둔 뒤 벌거벗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물 속에 들어가면 멀리서는 얼굴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탈의시설에 꽂힌 깃발을 빼 흔들었다. 그러면 '디퍼(dipper)'라는 도우미가 탈의시설을 해변으로 끌어냈다.
노출을 꺼리다 보니 이런 물건까지 등장했다. 20세기로 들어서자 이동식 탈의시설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동식 탈의 시설이 한국에서 모습을 드러낼까 걱정이다. 정부가 과다노출을 범칙금으로 다스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과다노출의 기준은 무엇일까? 치마 끝자락이 무릎 위 10㎝는 과소노출, 무릎 위 20㎝는 과다노출인가? 얼마든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여름철에는 마음만 먹으면 거의 모든 여성에게 범칙금 통지서를 안길 수 있다. 그래서 "과다노출 범칙금 부과 결정은 '증세 없는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탁월한 아이디어"라는 비아냥도 흘러나온다.
법이 적은 것은 문제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이 많은 것은 더욱 위험하다.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범법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공동체의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다면 최대한 자유를 허용하는 게 맞다. 법을 내세워 국민의 소소한 일상에 개입하는 것은 폭정(暴政)이다. 선진사회라면 법보다는 국가의 강제가 따르지 않는 연성규범(soft law)이나 관습, 상식에 보다 많이 의존해야 한다.
참고문헌 1) Victorian Morality, WIKIPEDIA(The Free Encyclopedia) 2) Domestic Manner of the Americans, WIKIPEDIA(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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