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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할머니 살인·성폭행범, 가면쓴 '그림자'였다]

등록 2016.05.29 11:46:28수정 2016.12.28 17: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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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뉴시스】인진연 기자 =충북 증평군에서 발생한 '80대 할머니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29일 오전 살해 장소인 증평읍 한 마을에서 피의자 신모(58)씨를 상대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피의자 신씨는 같은 마을에 혼자 살고 있던 80대 할머니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2016.05.29  inphoto@newsis.com

【증평=뉴시스】인진연 기자 =충북 증평군에서 발생한 '80대 할머니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29일 오전 살해 장소인 증평읍 한 마을에서 피의자 신모(58)씨를 상대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피의자 신씨는 같은 마을에 혼자 살고 있던 80대 할머니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2016.05.29  [email protected]

【증평=뉴시스】박재원 기자 = 충북 증평에서 '80대 할머니 살인사건' 현장검증이 29일 진행됐다.

 사건 현장에서 피의자는 유족들의 빗발치는 욕설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범행당시 상황을 태연히 재연했다.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난 후 평온한 얼굴로 동네를 활보했던 것처럼.

 이 사건의 피의자 신모(58)씨는 6년 전 같은 마을에서 일어난 '성폭행 방화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다. 시차를 두고 두가지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다.

 경찰은 지난 15일(추정) 증평군 증평읍의 한 마을에서 80대 할머니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신씨의 유전자 분석 결과 6년 전 유사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일부 일치한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한 마을에서 비슷한 수법의 강력범죄가 일어났는데도, 신씨는 경찰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다. 왜일까.

 우선 부실한 경찰 초동수사였다. 경찰은 사건현장에서 수집한 CCTV 영상물을 확인하지 않고 사망원인을 단순 병사로 처리했었다. 피의자 신씨가 '그림자'로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진 '약점'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마을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신씨는 청각장애 2급의 등록장애인이다. 어릴적부터 듣지 못해 학교 문턱에 가본 일이 없다.

 그런 탓에 한글을 읽거나 쓸 줄도 모르고, 수화도 못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여러 명의 수화통역사가 동원됐지만,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림을 그려가며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하지만, 쉽지않은 일이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거나 하는 식의 의사표현이 전부이다보니 구체적인 문답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병적 이력에 그가 가진 치명적인 '무기'가 있다. 성실성이다.

 이웃집 논·밭일은 물론 동네에서 벌어지는 대소사를 군말없이 도와준다. 착실한 사람의 대명사로 인식될 정도다.

 15일 이웃집 할머니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직후 신씨는 태연하게 동네 주민 모내기를 도와줬다.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마을 주민은 "말은 못하지만 아주 착실한 사람인데"라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점, 어눌하지만 성실성으로 포장한 그를 경찰이 용의선상에 올려놓지 않은 이유였다.

 그를 '손버릇이 나쁜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이 마을에선 귀중품이나 농산물이 없어지는 일이 빈발했다.

【증평=뉴시스】인진연 기자 = 충북 증평군에서 발생한 '80대 할머니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29일 오전 살해 장소인 증평읍 한 마을에서 피의자 신모(58)씨를 상대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피의자 신씨는 같은 마을에 혼자 살고 있던 80대 할머니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2016.05.29  inphoto@newsis.com

【증평=뉴시스】인진연 기자 = 충북 증평군에서 발생한 '80대 할머니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29일 오전 살해 장소인 증평읍 한 마을에서 피의자 신모(58)씨를 상대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피의자 신씨는 같은 마을에 혼자 살고 있던 80대 할머니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2016.05.29  [email protected]

 집에 보관하던 금반지·목걸이가 없어졌다거나 창고해 있던 농산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거나, 밭에서 키우는 작물이 통째로 사라졌다거나 하는 식의 말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그럴 때마다 신씨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란 더 큰 목소리에 묻혔다.

 사건 당일에도 피해자 할머니 집 밖에서 밭작물을 훔쳐가는 장면이 폐쇄회로TV에 잡혔다. 범행 후에는 쌀자루 3개를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피해자 할머니의 유족이 집안에 CCTV를 설치한 이유도 계속되는 절도사건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면 신씨는 어눌했지만, 사실 주도면밀했다. 신씨는 범행을 은폐하려고 할머니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벗겨져 집 마당에 나뒹구는 할머니의 신발을 마루 밑에 가지런히 정돈했다. 주변을 계속 살피면서 할머니를 욕보이기도 했다.

 한껏 욕심을 채운 신씨는 잠을 자다 자연사한 것처럼 꾸미려고 시신을 방으로 옮겨 이불까지 덮어줬다. 전기장판까지 켜놓았다. 시신을 얼른 부패시켜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되는 행동이다.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바람에 흙이 떨어진 마루를 빗자루로 쓸어 범행흔적을 지우기도 했다.

 이 마을에선 6년 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있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신씨다.

 범행 대상도 똑같이 혼자 사는 할머니였다. 2010년 10월 한 괴한이 집에 혼자 있는 할머니를 성폭행했다. 그러고는 피해자에게 이불을 뒤집어씌운 뒤 집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다행히 피해자는 불타고 있는 집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하고 있다.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와 편견은 신씨를 용의선상에서 떨어뜨리는 우를 범했다.

 애초 경찰은 최근 발생한 살인사건을 증평의 한 병원에서 발급한 부실한 검안서를 근거로 단순 병사로 마무리했다. 유족들은 단순 자연사라는 경찰 말만 믿고 고인의 장례까지 치렀다.

 장례를 마친 유족들이 사건 현장 집 마루에 설치된 폐쇄회로 TV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단순 병사가 아닌 살인사건임을 밝혀냈다.

 경찰은 시신 발견 당시 메모리카드를 유족에게서 받았지만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부실한 초동수사가 그에게 면죄부를 줄 뻔한 사건이다.

 현장검증을 마친 경찰은 현재 6년전 발생한 사건의 범인인지를 밝히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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