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로 일어선 트럼프, 막말로 망하나… 무슬림 비하 직격탄

【시더래피즈=AP/뉴시스】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27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시더 래피즈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2016.7.29.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트럼프가 최근 며칠 새 이라크 참전 전몰용사의 무슬림 부모를 비하하는 발언을 잇달아 쏟아내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등 정치권은 물론 일반 유권자들로부터도 거센 비난을 사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팽팽한 접전을 이루던 트럼프의 지지율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본선 레이스로 막 접어든 대선 판세가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WP)는 1일(현지시간) 이라크 전쟁 전몰용사(후마윤 칸 대위)의 부모인 키즈르 칸과 가잘라 칸 부부를 모독한 트럼프의 막말이 미국민들의 표심을 크게 흔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트럼프와 칸 부부를 공격한 이후 그가 더 이상 ‘테플론 후보(Teflon candidate, 스캔들이나 실수, 오판 등으로 타격을 받아야 함에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 후보)’로서의 특징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WP는 1950년대 기승을 부리던 매카시즘이 여론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 변곡점을 상기시키면서 트럼프 역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공산주의자 사냥꾼이었던 조지프 R. 매카시 상원의원(위스콘신)이 미 의회에서 당시 국방위원이던 조지프 N. 웰치를 용공분자로 매도할 때였다. 웰치 위원은 “당신에게 품위라고는 없는 거냐”라고 반박했었다.
미국 국민들은 이제 트럼프의 막말에 염증을 느끼면서 그에게 품위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의 막말은 ‘양날의 칼’
트럼프의 막말은 그동안 ‘양날의 칼’이었다. 정치 신인이자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의 거친 입은 미국 주류 정치계를 흔들었다. 이슬람 과격단체들의 테러가 이어지자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폭탄선언을 하는가 하면, 베트남 전쟁영웅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을 향해서는 “존 매케인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이라면 포로가 되지 않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NYT) 기자와 CNN 방송의 앵커 등 유력언론을 상대로 막말을 퍼붓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러시아 정부에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사용하던 개인 이메일을 해킹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그동안에도 막말과 기행으로 인해 숱한 비난을 자초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지지자들도 그의 막말을 들으면서 열광했다. 기존 정치판에 염증을 느낀 미국민들에게 트럼프의 막말은 시원한 카타르시스였다. 그의 막말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16명의 경쟁자들을 쓰러트린 날카로운 무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스크랜튼=AP/뉴시스】27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튼의 한 대학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는 지지자들. 최근 러시아 언론들은 트럼프를 "한줄기 신선한 바람"으로 치켜 세운 반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는 중상모략이나 중립적 사실만을 보도하고 있다. 2016.07.28
그러나 이라크 참전 무슬림 전몰용사의 부모를 비하한 트럼프의 막말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심한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다.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런츠는 “트럼프가 다른 정치인을 공격하는 것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런 걸 좋아한다. 그러나 그가 일반인들을 공격하는 건 싫어하고, 중단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선거참모와 백악관 수석고문을 지냈던 데이비드 엑설로드는 “사람들은 트럼프의 하이킥을 인정하고 즐겼다. 그러나 연약한 일반인들을 상대로 거칠게 대하는 것은 반발심을 유발한다. 사람들은 또한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을 막 대하는 것을 보면 반발한다”라고 말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의 선거캠프 대변인을 맡았다가 나중에 반(反) 트럼프 슈퍼팩에 가담한 팀 밀러는 “국민들은 (트럼프가)천박하고 품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큰 질문은 칸 사태가 무슬림 사회와 재향군인 집단들에게만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아니면 비인간적이고 품위 없는 행동으로서 (유권자)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칸으로부터 사악한 공격받았다” vs “트럼프는 검은 영혼”
트럼프와 칸 부부 간 비난전은 지난달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행한 칸의 연설에서 촉발됐다. 칸은 당시 조그만 헌법 책자를 꺼내 든 뒤 "헌법을 읽어본 적이 있기는 하느냐"면서 트럼프의 인종·종교 차별을 비난했다.
트럼프가 발끈하고 나섰다. 트럼프는 30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칸의 아내는 그가 연설할 때 옆에 서 있기만 했다. 아마 어떤 발언도 허락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여성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이슬람 전통 때문에 입을 닫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분히 이슬람 비하적인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칸의 부인인 가잘라 칸은 31일 WP에 기고한 글을 통해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했다. 가잘라는 "기고문은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 트럼프에 대한 나의 답"이라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남편이 연설할 때 조용히 있었던 이유는)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세상 모두가, 모든 미국인이 나의 고통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는 이슬람교에 관해 무지하다"며 "만약 그가 진짜 이슬람교와 쿠란을 공부한다면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테러리즘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AP/뉴시스】이라크 참전 사망군인의 아버지 키즈르 칸과 어머니 가잘라가 지난 7월 28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 연사로 무대에 올라 무슬림 차별 발언을 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를 비난하고 있다. 2016.08.01
이에 대해 칸은 같은 날 CNN 방송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에 출연해 트럼프를 ‘검은 영혼(Black Soul)’이라고 부르며 “동정심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칸은 “트럼프 가족이 그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가르쳐주기를 바란다. 한 국가를 통솔하는 데 매우 부적절한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런츠는 “트럼프가 지나치게 너무 많이 나갔다. 유권자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또한 트럼프는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기존 질서를 깨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 트럼프의 잇단 무슬림 비하 발언에 비난 쏟아져
칸 부부와의 공방 이후 각계 인사들은 트럼프에게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 상이군인회'(DAV) 연례행사에서 "그 누구도 '골드 스타 패밀리'(미군 전사자 가족모임)만큼 우리의 자유와 안보를 위해 이바지 한 사람은 없다. 이들은 언제나 진정한 미국의 힘을 상기시켜 주는 사람들이다. 미군 전사자와 가족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이들을 존중하고 이들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막말을 겨냥한 것이 분명한 발언이었다.
베트남 참전용사이자 공화당원인 매케인 의원은 1일 700단어 짜리 긴 성명을 통해 "트럼프는 최근 며칠 동안 미군 전사자 부모들을 헐뜯는 언급을 했다. 무슬림계의 군 복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들의 아들과 같은 사람은 이 나라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트럼프의 발언은 공화당은 물론 공화당 지도부와 후보들의 시각과도 거리가 멀다. 우리 공화당이 트럼프 후보를 공식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에게 우리 중 가장 뛰어난 (희생을 치른)사람들을 헐뜯을 무제한적 권리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맹공했다.
◇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뚜렷한 내리막길

【콜럼버스=AP/뉴시스】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1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2016.8.2.
제3당인 자유당 게리 존슨과 녹색당 질 스타인을 포함한 여론조사에서도 클린턴과 트럼프는 각각 45%와 37%로 클린턴이 8%포인트 앞섰다. 존슨과 스타인은 각각 9%, 5%를 얻었다.
같은 날 CBS뉴스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클린턴은 우위를 점했다. 클린턴은 지지율 47%를 확보해 41%인 트럼프를 6%포인트 차이로 리드했다. 제3당 후보인 존슨을 포함할 경우 클린턴 43%, 트럼프 38%, 존슨 10%로 클린턴이 트럼프를 5%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 NYT 장애인 기자 조롱도 여론에 큰 영향
지난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운동 캠프에서 활동했던 스테파니 커터는 무슬림인 칸 부부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은 인간의 품위와 동정심에 관한 유권자들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런 인물이 과연 자녀들에게 어떤 롤 모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커터는 “국민들은 장애나 종교, 성별 등과 관련해 모욕을 주는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트럼프의 막말은 그 대상에 국한된 사람들의 표심에만 영향을 미쳤다.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에는 주로 히스패닉 계 주민들의 표만 떨어졌다.
지난해 8월 트럼프가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메긴 켈리를 “빔보(bimbo)”라고 부르며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했을 때는 주로 여성들의 등만 돌리게 만들었다. 빔보는 ‘매력적 외모를 가졌지만 지적이지 않은 여자’라는 의미를 가진 속어로, 주로 금발의 백인 여성을 지칭할 때 쓰인다.
클린턴 후보를 지원하는 슈퍼 팩(특별정치활동위원회)인 '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Priorities USA Action)'은 최근 트럼프를 공략할 수 있는 취약점을 찾던 중 트럼프가 장애인인 NYT의 세르지 코발레스키 기자를 조롱한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찾아냈다. 이 장면은 트럼프 반대 광고물을 제작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당시 코발레스키 기자의 장애를 조롱한 트럼프의 실수는 성별 및 인종의 구분을 벗어나 전체 유권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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