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호퍼와 난민 타협, 메르켈의 약점될까…'전화위복' 분석도
'유럽의 여왕' 메르켈 권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지적
제3국과의 협상에 따라 유동적…'사실상 승리' 분석도

【브뤼셀=AP/뉴시스】 EU 정상들이 28일 원탁회의에 착석하기 앞서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느새 얼굴에 웃음기가 걷혀졌다. 가운데 있는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틀 회의에서 이주자 관련 협력을 구체화하지 못하면 앞날이 어둡다. 2018. 6. 28.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및 유럽 내부에서 이번 협상에서 제호퍼 장관의 사퇴 카드 및 연합당 붕괴 압박에 너무 쉽게 타협하면서 메르켈 총리의 권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은 약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고, 메르켈 총리는 남은 4년의 임기를 순탄하게 이어가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헤르티 거버넌스 스쿨의 안드레아 룀멜 정치학 교수는 "메르켈이 몇 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방법으로 제호퍼가 그녀를 경기장으로 끌고 가는 것을 허락했다"고 분석했다.
홈볼트대학교의 콘스탄틴 보싱 교수는 "메르켈이 정치적 한계를 드러냈다"며 "메르켈은 냉정하고 온건한 태도로 갈등을 조용히 해결하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가 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만 효과가 있다. 제호퍼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총리는 전날 제호퍼 장관과의 장시간 회의 끝에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다른 유럽연합(EU) 국가에 망명을 신청한 난민을 돌려 보내야 한다는 제호퍼 장관의 주장에 합의했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CDU)과 70년 전통의 연합당을 꾸리고 있는 기독사회당(CSU)을 이끄는 제호퍼 장관이 사퇴 카드까지 내놓으며 메르켈 총리를 압박한 결과다.
메르켈 총리와 제호퍼 장관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통과 센터(transit center)를 세워 처음 망명을 신청한 국가로 난민을 돌려 보내기로 했다. 다만 해당 국가가 이에 동의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오스트리아로 보내기로 했다.
이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유럽 전역에 유사한 대책이 도미노처럼 퍼질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오스트리아에 유입되는 난민을 막기 위해 독일 정부와 유사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응수했다.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과 맞닿아 있는 남부 국경을 강화, 지중해를 통해 들어오는 난민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2015년 독일에 100만명의 난민을 포용하며 '난민의 엄마'로 불렸던 메르켈 총리의 입장에 완전히 역행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정책이다. FT는 "이번 타협으로 메르켈 총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약자를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EU 내에서도 앞으로 유럽 지역 연합의 큰 축인 독일을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 독일 언론 디 차이트는 "독일은 더 이상 유럽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게 됐다"며 "EU 회원국 사이에서 갑작스러운 '포퓰리즘 발열’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를린=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일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과 추모식장에 나란히 앉아 있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주자의 망명지위 신청 문제로 보수파 동맹인 기사련 대표인 제호퍼 장관과 갈등을 빚고 있다. 2018. 6. 20.
하지만 일각에선 이번 타협안이 제3국과의 합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메르켈 총리의 승리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메르켈 총리와 제호퍼 장관은 당초 제호퍼 장관이 요구한 '일단 추방’이 아닌 제3국과의 합의에 따른 추방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싱크탱크 유럽안정성기구의 제럴드 크네우스는 "메르켈 총리는 늘 (난민 문제에 있어서)독일의 일방적인 행동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녀는 이번 협상에서 유럽 내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난민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탈리아의 새 극우 포퓰리즘 정부나 이미 반대 의사를 밝힌 오스트리아 정부 등과 이같은 협상을 타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EU 대외관계협의회의 요제프 야닝 상임정책위원은 "메르켈이 CSU에 양보한 것은 유럽 난민 정책의 장기적인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해주는 단기적인 대책일 뿐"이라며 "유럽 난민 정책의 광범위한 개혁을 달성하게 되면 통과 센터 같은 시설은 불필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의 오랜 정적 독일 자유민주당(FDP)의 크리스티안 린드너 대표 역시 "결구 메르켈 총리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제호퍼 장관에 대해 "맹수로 싸움을 시작했지만 피그미로 몰락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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