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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준비"… 예비부부들의 '예식장 예약' 전쟁

등록 2025.04.19 08:00:00수정 2025.04.19 0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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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예식장 예약은 1년반 전에도 늦어…상담 전화도 경쟁

가격은 방문 상담 후 공개… 온라인 후기조차 ‘비밀댓글’ 의존

전문가 "가격 표시제·공공 예식장 확대 시급"

[서울=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강류나 인턴기자 = "결혼 준비는 식장부터라더니, 진짜 수강신청보다 더 치열했어요."

"상담을 받으러 가야만 가격을 알려주는 식장이 대부분이네요."

최근 예비부부들 사이에선 결혼 준비의 출발점이 '프로포즈'가 아닌 '예식장 예약'이 되고 있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약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식장부터 잡자"는 말은 결혼 준비의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수도권 예식장 예약은 보통 결혼식 1년 전부터 시작되며, 인기 예식장의 경우 1년 6개월 전부터 준비해야 원하는 날짜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예식장 견적은 상담을 받아야만 알 수 있고, 상담 예약조차 경쟁인 ‘깜깜이’식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예비부부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티켓팅 수준의 예약 경쟁…가격은 상담 받아야 공개

서울 서초구에 사는 이모(26)씨는 내년 3월 결혼을 목표로 지난 3월 1일 오전 10시, 한 서울 소재 대학교 교수회관 예식장 웹사이트가 예약을 개시하자마자 남자친구와 지인 2명까지 동원해 접속했지만 실패했다. 이씨는 "결국 취소된 날짜를 잡아 겨우 예약했다"며 "예식장 예약이 수강신청보다 더 치열했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정모(27)씨는 지난 2월 셋째 주 토요일에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상담한 예식장 4곳 모두 해당 날짜 예약이 마감된 상태였다. 결국 원하는 날짜를 포기하고 일정을 1주일 앞당겨 잡을 수밖에 없었다. 정씨는 "1년 전 상담조차 늦은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소재 A예식장과 구로구 소재 B예식장은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예약이 어렵기로 유명한 곳'으로 꼽힌다. 기자가 A예식장에 내년 상반기 토요일 예식을 원한다고 유선으로 문의하자, 먼저 방문 상담을 받아야 계약 오픈일에 유선으로 예약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또 상담은 방문만 가능하며, 예약은 보통 3주 전부터 선착순으로 잡아야 했다.

B예식장 역시 내년 상반기 토요일 점심 예식을 원할 경우 보증인원 300명 이상이 조건이었고, 전화 상담만으로는 견적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또 내년 1~2월 예식 예약은 지난해 11월에 이미 오픈됐으며, 현재는 주말 점심 시간대는 대부분 마감된 상태였다.

예식장 정보 접근부터 어려운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부분 예식장이 가격을 공개하지 않아 직접 상담을 받아야만 견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상담조차 대기자가 많아 예약부터 치열한 경우가 많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권모(31)씨는 "인기 있는 예식장은 상담 예약조차 어려워 아예 문의를 포기한 곳도 있다"며 "오픈 날짜를 SNS에만 띄우고 경쟁을 유도하는 식이라 피로감이 크다"고 했다.

20대 후반 여성 김모씨는 "유명 예식장은 평일 시간을 내야만 상담이 가능했다"며 "예약금은 현금으로만 돌려주거나 추가금 항목이 복잡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온라인 후기에서도 가격 정보 접근은 쉽지 않다. 블로그에 올라온 예식장 상담 및 계약 후기 중 상당수는 “비밀 댓글 남기시면 쪽지 드릴게요”라는 문구와 함께 견적서 공유를 제한한다. 예비부부들은 댓글을 남기거나 이메일을 보내야 가격 정보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분당에 거주하는 김모(31)씨는 "정찰제로 가격을 공개하는 예식장이 거의 없어, 예산에 맞는 곳을 걸러내는 데도 시간이 많이 들었다"라며 "실시간 견적 확인이 가능한 예식장을 선택했지만, 이런 방식이 업계 표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정보 비공개, 전형적 소비자 기만 구조…가격표시제 도입해야"

이처럼 예식장 예약이 어려워진 배경으로는 코로나19 이후 폐업 등으로 전체 예식장 수가 줄어든 데다, 주말과 특정 시간대에 수요가 몰리는 구조적인 쏠림 현상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예식장 예약 시스템의 구조적 불투명성을 해소하려면 가격 정보를 사전에 공개하고, 상담 및 예약 절차를 온라인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예식장 대부분이 대관료나 식대 같은 기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소비자 기만 구조다.  기본 가격 정도는 반드시 공개돼야 소비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라며 "결혼시장은 재구매가 전제되지 않다 보니 업계가 소비자 눈치를 보지 않는 구조가 굳어져 있다. 후기나 입소문에만 의존하게 만드는 현 구조는 소비자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국회에서 결혼서비스업에 대한 가격표시제 법안 발의도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공정거래위원회와 여성가족부가 협력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보유한 회관·강당을 예식장으로 활용해 수요 쏠림을 완화하고, 온라인 예약 시스템도 전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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