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수업 어렵지만 특수교육대상자는 아냐"…'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생각과 행동 느리지만…'특수교육대상자'는 아닌 내 아이"
경계선에 놓인 느린 아이들…어느 학급에도 속하기 어려워
느린 아이 위해 노력하는 이들 "맞춤형 프로그램 중요"
전문가들 "세분화된 특수학습 필요" "조기 개입해야"
![[서울=뉴시스] 박정영 수습기자=인천의 한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 정종문 선생님 제공) 2025.11.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07/NISI20251107_0001987365_web.jpg?rnd=20251107165253)
[서울=뉴시스] 박정영 수습기자=인천의 한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 정종문 선생님 제공) 2025.11.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정영 수습 기자 =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두고 있는 학부모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생각과 행동이 느린' 딸이 단체 활동 때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지능지수(IQ)가 83으로 낮지만 특수교육대상자에 속하지 않는 A씨의 자녀는 현재 일반학급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학습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이야기를 할 때 알아듣는 속도가 느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게 오래 걸릴 뿐이지만, 주변 아이들 눈에는 그저 '모자란' 아이로 비춰진다. 특수학급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정작 일반학급에서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A씨는 "최근에 딸이 학교에서 피구를 하다 어떤 아이가 던진 공에 안경 낀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는데, 그 아이는 사과는커녕 짜증을 냈다"며 "1학년 때부터 찍힌 낙인이 3학년 때까지 계속돼 진지하게 전학이나 대안학교를 고려 중"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A씨는 "아이를 위한 학교의 특별한 조치는 없다"며 "선생님들이 (저희 아이처럼) 반에서 소외받는 아이들에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8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A씨의 자녀처럼 느린학습 아동(느린 아이)들은 정규 교육과정 내에서 '일반학급'과 '특수학급'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IQ가 71~84 사이에 해당하는, 소위 '느린 아이'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배우는 것이 느리고, 대화할 때 요점을 알아듣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IQ가 '경계선'에 놓여 있어, 일반학급에서는 학습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지만, 특수학급에서는 배움의 양이 적다.
때문에 이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절실함에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B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B씨 자녀의 IQ는 81로 느린 아이에 해당하지만, 현재 '일반학급'에 속해 있다. 학교위원회에서 아이를 '정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B씨는 "아이는 ADHD 약을 먹고 있고, 제대로 일반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 학교에서는 멍만 때리고 온다"며 "일반학급에 가면 선생님이 따로 느린 아이를 봐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B씨의 자녀처럼 '일반학급'에 속해 있을 경우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추가 교육이 절실하지만 장애 등급에 해당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복지 대상에도 속하지 않아 교육 부담은 온전히 학부모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B씨는 "중학생이 되면 대안학교를 가는 경우가 많다"며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의 지원을 받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느린 아이 위해 힘쓰는 사람들 '맞춤형 프로그램 필요' 한목소리
![[서울=뉴시스] 박정영 수습기자= 느린 아이들이 '함성'이 진행하는 축구 교실에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함성 제공) 2025.11.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11/07/NISI20251107_0001987370_web.jpg?rnd=20251107165434)
[서울=뉴시스] 박정영 수습기자= 느린 아이들이 '함성'이 진행하는 축구 교실에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함성 제공) 2025.11.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장에서 느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들 사이에서는 맞춤형 프로그램에 대한 목소리가 꾸준하다.
인천의 한 특수학교에서 4년째 담임을 맡고 있는 정종문 선생님은 "학생들마다 인지능력이 다 다르다"며 "느린 아이를 위한 개별화 교육을 통해 학생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후 강점 기반으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현재 각 교육청마다 경계선 지능 학생을 위한 지원 사업들이 존재하지만, 이는 대부분 지역 기관과 연계해 진행하거나 학부모 상담에 그칠 뿐, 수업 중 이뤄지는 맞춤형 프로그램은 사실상 없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은 느린아이 관련 체크리스트 전수조사와 지역 전문기관 연계 개별 맞춤 학습프로그램 지원을 주요 사업으로 하지만, 한계가 존재한다. 전수조사는 탐색군을 선별하는데 그치며, 학습프로그램은 지적장애 학생들이 함께 있는 지역 아동발달센터에서 진행하기에 느린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학교 밖에서 느린 아이들을 돕고 있는 교육 플랫폼 '함성'은 이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시작됐다.
'함께 성장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 플랫폼은 느린 아이들을 위해 축구와 독서, 스키 같은 다양한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과 전문가 매칭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박성미 함성 대표는 뉴시스와 만나 "느린 아이들은 장애인 복지에 대한 바우처를 받기 어렵고 교육 사각지대에 있다"며 "특수교사로서 느린 아이를 가르치며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들에게 다양한 교육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함성'이 진행하는 수업들은 느린 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해 나눠져 있고, 테스트나 상담과 같은 지속적인 검사를 통해 각자에 맞는 수업이 진행된다. 실제로 '함성'을 통해 축구 교실을 이수한 아이의 학부모는 "다양하게 눈높이를 맞춰 몸소 시범을 보여줘서 좋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느린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업을 시작했기에 최근에도 스키 수업을 새로 시작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느린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수업을 기획할 예정"이라고 했다.
통계조차 부재…전문가들 "특수학습 '유형화'해야" "조기 개입 통한 지원 강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 인구 중 느린 학습자 비율을 13.59%로 집계됐지만 이는 추정치에 그친다.
느린 아이들의 부모로 구성된 시민단체 느린학습자시민회의 송연숙 이사장은 "일반 학교뿐만 아니라 특수 학교나 대안 학교, 그리고 학교 밖 학습자들을 모두 포함한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느린학습자시민회는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두 차례 간담회를 통해 느린학습자 실태 조사와 관련된 의견을 전달했고, 보건복지부는 이를 반영해 실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복지부는 이르면 올해 말 통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특수학급 내에 느린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세분화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한국학습장애학회장인 나경은 중부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는 "특수교육법에도 정의가 돼 있다시피 특별한 교육적 요구를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특수교육대상자가 될 수 있다"며 "느린 아이들도 특수교육대상자에 포함해 특수학급을 유형화하는 방향으로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시행령'에는 학습장애를 지닌 특수교육대상자를 '개인의 내적 요인으로 인하여 듣기, 말하기, 주의집중, 지각, 기억, 문제해결 등의 학습기능이나 읽기, 쓰기, 수학 등 학업성취 영역에서 현저하게 어려움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 교수는 여기에 '경계선급 지적 기능성(경계선 지능 등을 포함)'이 있는 사람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 단계에서의 통합적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현주 한양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얼마만큼 (증상이) 조기에 발견돼서 개입을 하느냐에 따라 느린 아이들이 겪게 되는 정서적인 위기나 기초 역량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통합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수교육대상자는 아니지만 개별적으로 맞춤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며 "언어적인 부분이나 기초학력 분야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조기에 선별해 추가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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