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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 '방백', 아이돌팝 고전"…따스한 발라드 음악비평 김영대 '더 송라이터스'

등록 2025.11.18 11:36:00수정 2025.11.18 11: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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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부터 아이유까지, 노래로 기록된 사랑의 언어들'

[서울=뉴시스] 샤이니.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1.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샤이니.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11.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발라드 어원은 라틴어 '발라레(ballare)'다. 그 뜻은 '춤춘다'다. 본래 춤곡의 리듬으로 부르던 노래였다. 현재 그 의미는 퇴색됐다. 주로 느린 템포의 사랑 노래를 발라드라 부른다. 하지만 발라드로 인한 '감정의 춤'은 여전하다.

스타 음악평론가인 김영대의 말하기와 글쓰기 역시 춤추기에 가깝다. 능수능란하며 약간은 저돌적인 그의 말하기 화법은 탱고 같고, 유려하게 잘 읽히는 부드러운 그의 글쓰기 작법은 왈츠다.

김 평론가가 최근 쓴 저서 '더 송라이터스'(문학동내 펴냄)는 왈츠처럼 경쾌하고 우아하면서 감성적이다. '유재하부터 아이유까지, 노래로 기록된 사랑의 언어들'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이 발라드를 주로 톺아봐서다.

발라드의 불가피한 문법은 사랑으로 수렴된다. 사랑은 그 흔한 말들이지만 각자의 추억은 클리셰를 몰아낸다. 특히 김 평론가의 디테일한 기억과 장면 묘사 그리고 정교한 음악 지식은 발라드 곡들을 저마다 다른 이유로 특별하게 빛낸다.

김 평론가에 따르면, 발라드라는 말이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통용된 때는 1980년대 중반부터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인 1985년이 결정적인 해였다. 작곡과 편곡의 스타일 면에서 한국형 팝발라드의 걸작이라고 부를 만한 곡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쏟아져나왔다. 조용필 명반 7집에 실린 곡으로 유재하가 만든 '사랑하기 때문에', 나미 4집 앨범에 실린 '슬픈 인연', 이광조 6집에 실린 '당신을 알고부터', 팝발라드보다는 록이나 포크 성향에 가깝지만 들국화의 전설적인 데뷔 앨범에 수록된 '사랑일 뿐이야'나 '매일 그대와' 등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나 대중이 공유하는 보편적 정서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 김 평론가는 "동시대 뮤지션들, 그중에서도 화성과 코드 진행에 가장 민감한 악기인 건반을 연주하는 송라이터들이 가졌던 비슷한 문제의식과 지향점의 결과이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그렇게 1985년은 한국형 팝발라드의 원년이 됐다.
[서울=뉴시스] 김영대 '더 송라이터스' 커버. (사진 = 문학동네 제공) 2025.11.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영대 '더 송라이터스' 커버. (사진 = 문학동네 제공) 2025.11.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 평론가가 발라드를 얘기하면서 또 중요하게 여기는 측면은 '송라이터'다. 김 평론가가 책의 서두에 쓴 것처럼 팝음악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사가(lyricist)와 작곡가(composer)를 구분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 작사가와 작곡가의 경계를 반드시 나누는 전통을 지닌 가요의 경우, 이 같은 '송라이터' 관점의 접근은 썩 용이하지 않다. 하지만 김 평론가는 미국의 유명 작곡가 데이비드 포스터가 자신이 만든 시카고의 히트곡들을 설명할 때마다 꼭 '피터 세트라와 함께 쓴(co-wrote)'이라는 수식을 잊지 않은 걸 짚으며 "작사가를 송라이터가 아니라 작곡가의 곡에 가사를 붙인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가요적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줬다"고 설명했다. "좋은 노래란 세련되고 정교한 문학적·음악적 표현이 조화돼 만들어진다. 물론 그 배합의 비율과 중요도는 곡에 따라, 그리고 받아들이는 대중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송라이팅이라는 행위의 본질에서 작사와 작곡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김 평론가는 무엇보다 "음악에서 글과 멜로디는 단절적으로 구분된 것이 아니다. 선율에 녹아 있는 문학적 감수성과, 글에 실린 음악적 리듬감이 결국 같은 것"이라고 특기했다. 그의 생각 기저에 송라이터로서 작사가의 역할에 대한 재발견과 정당한 가치 부여라는 욕심도 더해진 이유다.

김 평론가는 모두가 사랑하는 '달리기'라는 명곡은 늘 작곡가 윤상의 작품으로 기억되는데, 세대를 초월한 힐링의 메시지를 만든 사람은 작사가 박창학이라는 걸 강조한다. 김형석과 하광훈이 만든 명곡들을 박주연의 아름다운 문장을 빼놓고 평가 하는 게 정말 가능할까라고도 반문한다. 이소라의 음악에 절대적인 아우라를 부여하는 가사를 빼놓고 작곡가의 멜로디만 떼어내어 그 곡이 주는 감동이나 숭고함을 논하는 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라고도 강조한다.

김 평론가는 "음악 만들기의 핵심적 앵커로서 작곡가의 역할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곡쓰기라는 개념을 보다 확장해본다면 우리가 과연 그 음악들을 왜 좋아하는지, 그 음악의 위대함과 생명력, 불멸의 매력이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에 대해 훨씬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한다.

김 평론가는 이번 책에서 발라드를 이 송라이팅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본다. 예컨대, 1985년대 쏟아져 나온 팝발라드 상당수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단조풍의 구슬픈 멜로디가 아닌 메이저 스케일의 밝은 멜로디를 선호했다는 점을 짚는다. 그는 "이는 1970~1980년대 서구권 팝·록음악과 일본의 제이팝에서 비롯된 경향과 함께, 민주주의의 성취와 경제성장, 그리고 올림픽 등을 지나며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 깃들기 시작한 낙관주의의 반영"이라고 해석한다.

책엔 발라드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117곡을 담았다. 가사를 하나씩 짚어보며, 발라드의 장르적 분석을 넘어 감정의 언어로 한국 가요사를 읽어낸다. 또한 이문세, 유재하, 김광석, 변진섭, 윤상, 윤종신, 신승훈, 김동률, 김광진, 이승환, 유희열, 이소라, 성시경, 잔나비, 아이유 등 한국 가요사에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 아티스트들을 송라이터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음악을 곡의 형식이 아닌 작사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셈이다.
[서울=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서울 서초구 아리랑국제방송에서 녹화방송 형태로 진행된 케이팝 더 넥스트 챕터(K-Pop:The Next Chapter)에서 출연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메기 강 감독, 영화 삽입곡을 부른 트와이스(TWICE)의 지효와 정연, 프로듀서 알티(R.Tee), 음악 평론가 김영대가 출연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5.08.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서울 서초구 아리랑국제방송에서 녹화방송 형태로 진행된 케이팝 더 넥스트 챕터(K-Pop:The Next Chapter)에서 출연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메기 강 감독, 영화 삽입곡을 부른 트와이스(TWICE)의 지효와 정연, 프로듀서 알티(R.Tee), 음악 평론가 김영대가 출연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5.08.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분석은 샤이니, 방탄소년단 같은 K팝 대표 그룹에게도 물론 적용된다. 김 평론가는 샤이니 '방백'에 대해 "그야말로 제목부터 가사, 멜로디, 정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너무도 섬세하게 엮이고 조율된 작품이다. 케이팝 안에서도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아이콘이던 샤이니에게 이토록 감미로운 청춘의 멜로디를 안겨주며, 아이돌 음악 안에서 '청량'과 '아련'이라는 감각을 새롭게 정의하고 완성한, 이제는 아이돌팝의 고전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명곡으로 남아 있다"고 듣는다.

방탄소년단 '봄날'에 대해선 단순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아니라며 "무언가를, 누군가를, 애써 잊고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조용한 경고이자,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라고 평했다. "방탄소년단은 이 곡과 영상에서, 동시대의 많은 아티스트가 감히 건드리지 못한 주제를 은근하면서도 아름답게 빚어냈다. 이는 케이팝이라는 보수적인 테두리 안에서 사회적 윤리와 예술적 은유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성취"라고 받아들인다.

김 평론가는 작가의 말에서 "가장 감성적인 순간을 담아낸 글이니만큼, 그 섬세하고 시적인 문장들은 때론 눈이 부실 정도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너와 나의 추억을 공유하는 것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송라이터들의 비범한 관찰과 통찰, 그리고 아름답고 심오한 표현을 폭넓게 음미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썼다. "그들의 절절하고 사무치는 가사 속에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선 시대를 만난다. 음악뿐 아니라 '사랑' 또한 시대의 거울"이라고 덧붙였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박천휴 작가·작사가는 '더 송라이터스'에 대해 "작가주의 뮤지션이 아이돌이었던 그 시대의 발라드를 되새기며, 한국 대중음악에 비친 우리 시대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책. 내가 지금껏 읽은 가장 따스한 음악비평"이라고 읽었다.

그룹사운드 '잔나비' 리더·보컬 최정훈은 "김영대 평론가님은 음악 하나로 현대사의 맥락까지 짚어내시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그런 작가님이 작정하고 펴낸 책 같다. 우리의 사소한 추억들이 곡마다 녹아 있다"고 봤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평론가는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케이팝 연구로 음악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마마(MAMA) 어워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그래미 어워즈 등 주요 시상식의 중계 해설을 맡고 있다. 지난 8월엔 이재명 대통령과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메기 강 감독이 출연한 아리랑 국제방송 프로그램 '케이팝 더 넥스트 챕터(K-Pop:The Next Chapter)'에 함께 했다. 유튜브 채널 '김영대의 스쿨 오브 뮤직(School of Music)'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지금 여기의 아이돌ー아티스트' 'BTS: 더 리뷰(The Review)' 등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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