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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인간만의 전유물 아냐"…30년 만에 밝혀진 침팬지 '내전'의 전말[사이언스 PICK]

등록 2026.04.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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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부터 새끼까지 '피의 숙청'…인간사 갈등 판박이인 침팬지 사회

"평화는 당연한 상태 아냐"…응고고 집단 분열이 인류에 던진 경고

[AP/뉴시스]2018년 10월 우간다 부동고 숲에서 무리의 우두머리인 야생 성체 수컷 침팬지가 이른 아침 '팬트 후트(pant-hoot)' 소리를 내고 있다. 팬트 후트는 침팬지들이 멀리 떨어진 동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거나 위치를 공유하기 위해 내는 크고 복잡한 울음소리다. 우두머리 뒤편에는 아성체 수컷과 그의 어미, 남동생이 합창하듯 팬트 후트 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2025.05.10.

[AP/뉴시스]2018년 10월 우간다 부동고 숲에서 무리의 우두머리인 야생 성체 수컷 침팬지가 이른 아침 '팬트 후트(pant-hoot)' 소리를 내고 있다. 팬트 후트는 침팬지들이 멀리 떨어진 동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거나 위치를 공유하기 위해 내는 크고 복잡한 울음소리다. 우두머리 뒤편에는 아성체 수컷과 그의 어미, 남동생이 합창하듯 팬트 후트 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2025.05.10.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장기화부터 최근 미국-이란 전쟁까지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는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간 이러한 조직적 폭력, 즉 '전쟁'은 정치, 종교, 경제를 비롯한 이데올로기라는 문화적 장치를 가진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약 30년에 걸친 추적 조사 끝에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 사회에서도 인간의 전쟁, 특히 ‘내전’과 흡사한 치명적 갈등이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학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연구는 전쟁이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며, 사회를 이룬 종들에게 있어 평화를 위한 관계 유지가 얼마나 필수적인 생존 조건인지를 시사한다.

침팬지 사회 30년 추적의 기록…최대 공동체 '응고고'의 비극적 분열

미국 텍사스대학교와 미시간대학교, 독일 영장류센터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팀은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응고고(Ngogo)' 침팬지 집단을 30년간 관찰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발표했다.

응고고 집단은 200마리가 넘는 개체로 구성된 야생에서 가장 큰 침팬지 공동체로 알려져 있었다. 수십년간 강한 결속력을 유지해온 이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께부터다. 연구팀은 사회적 네트워크 분석과 GPS 추적 데이터를 통해 이 거대 집단이 '서부'와 '중부'라는 두 개의 파벌로 양극화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단순히 거리가 멀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미세한 균열은 점진적으로 심화됐고, 2018년에 이르러서는 두 집단 사이에 어떠한 우호적 관계도 남지 않는 완전하고 영구적인 분열로 치달았다.

주목할 지점은 분열 이후 발생한 두 집단 간 폭력의 수위다. 연구팀에 따르면 분열이 완전히 고착화된 2018년부터 약 7년 동안 서부 집단은 과거 동료였던 중부 집단을 대상으로 24차례에 걸친 조직적인 습격과 공격을 감행했다.

습격 과정에서는 최소 7마리의 성체 수컷이 살해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2021년부터는 폭력의 양상이 더욱 잔혹해져 17마리에 달하는 새끼 침팬지가 살해되는 사례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는 일반적인 야생 침팬지 집단 간 갈등에서 나타나는 수치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수십년간 함께 먹이를 찾고 외적에 맞서 영토를 순찰했던 동지들이 서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문화적 표식 없어도 전쟁은 일어난다"…관계 역학의 실체

이번 연구는 인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기존에는 전쟁이 종교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같은 '문화적 표식(Cultural Markers)'을 공유한 인간만이 벌이는 고도의 사회적 행위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응고고 침팬지의 사례는 이념이 없더라도 사회적 유대의 붕괴와 관계의 변화만으로 치명적인 집단 폭력이 촉발될 수 있다는 '관계 역학 가설(Relational Dynamics Hypothesis)'에 강력한 근거를 제공한다.

연구팀은 응고고 집단의 분열 원인으로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집단 규모에 따른 관계 유지 능력 초과 ▲먹이와 번식을 둘러싼 내부 경쟁 심화 ▲핵심 개체(알파 메일 등)의 사망과 리더십 변화 ▲질병으로 인한 네트워크 단절 등을 꼽았다.

특히 역설적인 분석도 제기된다. 초기 응고고 집단은 주변의 적대적 집단들을 제압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갔으나, 오히려 외부 위협이 사라지자 내부 결속력이 약화되고 파벌 간 경쟁이 극에 달했다는 설명이다.
[베이루트=AP/뉴시스] 8일(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레바논 전역에서 최소 182명이 사망하고 890명이 부상했다고 레바논 보건부가 밝혔다. 2026.04.09.

[베이루트=AP/뉴시스] 8일(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레바논 전역에서 최소 182명이 사망하고 890명이 부상했다고 레바논 보건부가 밝혔다. 2026.04.09.

국내 학계 "인간 사회 갈등과 유사"…평화, 당연한 상태 아닌 '부단한 노력'의 결과

국내 전문가들도 이번 연구가 주는 시사점에 주목하고 있다.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에서 인상적인 점은 집단 분열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집단 내부에서 꾸준히 진행되어 온 사회적 분화 과정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라며 “유연했던 네트워크가 두 개의 새로운 하위집단으로 재편되었고, 결국 완전한 분리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또 “이러한 집단의 분리 및 상호 적대적 행위는 인간 역사에서는 자주 관찰되는 현상이다.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사건”이라며 “응고고 집단의 경우 비정상적으로 큰 집단 규모가 사회적, 정치적 긴장을 증가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이어 “응고고 침팬지 무리들은 초기에는 주변 집단과의 경쟁과 충돌이 빈번했으나, 지속적인 순찰과 공격을 통해 주변 집단의 숫자를 줄여 나갔다. 결국에는 본인들의 영토를 확장하면서 외부 위협이 감소된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내부 결속을 약화시키고, 내부 경쟁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허 책임연구원은 응고고 침팬지 집단에서 관찰된 내전은 단일 원인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복잡한 대규모 정치 집단 구조, 정치·사회 네트워크의 점진적 분화, 수컷 연맹 간 과다 경쟁, 외부 위협의 감소, 번식 경쟁 증가와 같은 복합적 요인이 상호작용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응고고 침팬지 집단에서 관찰된 내전은 대규모 정치 집단 구조, 파벌 간 과다 경쟁, 번식 경쟁 증가와 같은 복합적 요인이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인간의 전쟁이 단일 요소가 아니라 다양한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엮이며 발생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중동의 갈등을 목도하고 있는 인류에게 이번 침팬지 내전 보고는 단순한 동물 행동학적 뉴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를 통해 평화라는 상태가 단순히 물리적 충돌이 없는 정적인 상태가 아님이 확인됐다고 보고 있다. 평화는 개인과 집단 간의 끊임없는 화해와 교류, 그리고 유대 관계를 유지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만 지속될 수 있는 동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전쟁이 명분과 이념의 충돌이라면, 침팬지의 내전은 관계의 상실이 부른 본능적 비극이다. 하지만 그 뿌리에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는 집단 정체성의 급격한 변화가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결국 종을 불문하고 평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화해와 만남 속에서만 담보될 수 있다는 점을 응고고 침팬지들의 비극이 증명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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