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최초 여성 총리 칼레드 지아, 80세로 타계
지난해 축출된 하시나 전 총리와의 정치적 경쟁, 방글라 정치 대표
![[다카(방글라데시)=AP/뉴시스]2012년 3월12일 방글라데시 주요 야당인 방글라데시 국민당 대표이자 전 총리인 칼레다 지아가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국민당(BNP)은 30일 또다른 전직 총리와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한 세대 동안 방글라데시 정치를 대표했던 칼레다 지아 전 총리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향년 80세. 2025.12.30.](https://img1.newsis.com/2025/12/30/NISI20251230_0000888057_web.jpg?rnd=20251230172704)
[다카(방글라데시)=AP/뉴시스]2012년 3월12일 방글라데시 주요 야당인 방글라데시 국민당 대표이자 전 총리인 칼레다 지아가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국민당(BNP)은 30일 또다른 전직 총리와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한 세대 동안 방글라데시 정치를 대표했던 칼레다 지아 전 총리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향년 80세. 2025.12.30.
[다카(방글라데시)=AP/뉴시스] 유세진 기자 = 방글라데시 국민당(BNP)은 30일 또다른 전직 총리와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한 세대 동안 방글라데시 정치를 대표했던 칼레다 지아 전 총리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향년 80세.
지아 전 총리는 방글라데시 최초의 여성 총리였다.
방글라데시 임시 정부는 3일 간의 애도 기간을 발표했다. 31일에는 다카에 있는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지아의 장례 기도가 열릴 예정이며 임시 공휴일로 발표됐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30일 성명에서 "방글라데시의 첫 여성 총리로서 방글라데시의 발전과 인도-방글라데시 관계에 대한 그녀의 중요한 공헌은 항상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셰이크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의 아들 사지브 와제드는 이날 성명에서 지아의 사망이 "방글라데시의 (민주적)전환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와제드는 "그녀는 국가 건설에 기여한 공로로 기억될 것이지만, 그녀의 죽음은 방글라데시를 안정시키는 데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시나 전 총리는 지아 전 총리의 최대 라이벌이었다.
지아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부패 사건으로 기소됐었지만, 2025년 1월 대법원은 지아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그녀는 2월 총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지아는 군사 독재와 싸웠습니다. 1971년 파키스탄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얻은 방글라데시의 초기 독립 시기는 암살, 쿠데타, 반 쿠데타로 특징지어졌으며, 군사 인물들과 세속 및 이슬람 지도자들이 권력을 놓고 경쟁했다.
지아의 남편 지아우르 라흐만 대통령은 1977년 군 총사령관으로 권력을 잡았고, 1년 후 방글라데시 국민당을 창당했다. 그는 방글라데시에 민주주의를 개방한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1981년 군사 쿠데타로 사망했다. 군사 독재에 반대하는 지아의 타협하지 않는 입장은 1990년 독재자이자 전 육군 원수인 H.M. 에르샤드를 축출하면서 대중 운동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1991년 첫 임기에서 승리했을 때와 그 후 여러 선거에서 지아의 상대는 1975년 쿠데타로 암살당한 독립 지도자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 하시나였다.
지아는 1996년 초 선거에서 300석의 국회의원 의석 중 278석을 차지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하시나의 아와미 연맹을 포함한 다른 주요 정당들은 선거 기간 동안 임시 정부를 요구하며 대대적인 보이콧을 벌였다. 당시 하시나의 아와미 연맹을 비롯한 주요 정당들은 선거 기간 중 임시정부 구성을 요구하며 총선을 보이콧했다. 지아 정부는 12일 만에 무너졌고, 무소속 임시정부가 구성된 후 그해 6월 총선이 실시됐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