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탐사⓷]산 자와 망자가 함께 머무는 오름, 입산봉
야트막한 오름 70%가 공동묘지
분화구에는 감귤과 밭작물 농사
봉수와 신앙의 흔적을 품은 공간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지난 13일 상공에서 본 입산봉. 2026.06.22. ijy788@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6/21/NISI20260621_0002166171_web.jpg?rnd=20260621191554)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지난 13일 상공에서 본 입산봉. 2026.06.22. [email protected]
제주의 오름은 단순한 산이나 관광지가 아니다. 오름은 화산섬 제주의 지질을 보여주는 지형이자 초지와 숲, 곶자왈과 습지, 마을과 목장이 이어지는 생태의 거점이다. 또한 산담과 잣성, 신앙과 설화, 4·3의 기억, 군사유적 등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기도 하다.
오름연구소 올(兀)과 함께 오름을 걷고 의미를 밝히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탐사는 단순한 탐방을 넘어 오름의 지형·식생·기후·경관·역사·문화유산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익숙한 풍경 너머에 있는 변화와 훼손, 보전의 과제도 함께 살핀다.<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입산봉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덤이다. 오름 능선과 완만한 경사면 대부분이 묘역으로 채워져 있다. 반면 가운데 분화구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고, 비닐하우스 시설도 들어서 있다. 한눈에 삶과 죽음의 풍경이 겹쳐 보인다.
입산봉은 높이로만 보면 낮은 오름이지만 한두 가지 특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정상부에는 조선시대 봉수대의 기억이 전해지고, 오름 아래에는 선사시대 생활과 마을신앙을 보여주는 궤네기굴이 있다. 죽은 이를 품은 사자의 땅이면서, 농사가 이어지는 산자의 땅이다. 물을 신성하게 여긴 오름이자 바다를 감시하며 마을을 지킨 수호의 오름이기도 하다.
김녕 사람들이 오랜 세월 자연을 이용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삶과 죽음을 배치해 온 문화경관이 이 낮은 오름 안에 켜켜이 쌓여 있다.
망자의 공간, 공동묘지
입산봉의 묘역은 산담을 두른 무덤이 띄엄띄엄 놓인 여느 오름과는 다르다. 이곳은 해방 이후 입산금지가 풀리면서 정상 부근에 처음 묘가 들어선 뒤 김녕마을 공동묘지로 지정되며 묘역이 빠르게 확대됐다. 1960년대 후반에는 이미 여유 공간이 거의 사라질 정도로 무덤이 들어찼고, 현재 오름에 조성된 묘는 2000여기로 추정된다.
공동묘지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묘지·화장·화장장에 관한 취체규칙’이 제정되면서 제도화됐다. 제주에서는 1930년대 서귀포시 예래동 군산공동묘지가 처음 지정됐지만 당시에는 공동묘지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이후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공동묘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입산봉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공동묘지화된 오름으로 볼 수 있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3일 입산봉 답사에서 장묘 문화의 변화를 확인했다. 2026.06.22. ijy788@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6/21/NISI20260621_0002166172_web.jpg?rnd=20260621191806)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3일 입산봉 답사에서 장묘 문화의 변화를 확인했다. 2026.06.22. [email protected]
지질이 만든 물의 그릇
금훼수라는 이름에는 물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생활 규범과 오름의 기운을 지키려는 공동체의 금기가 담겨 있다. 제주 동부의 건조한 해안 환경에서 분화구에 고인 물은 귀한 자원이었다. 주민들은 이 물을 마을의 기운, 인물 배출, 풍수적 길지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오름 능선 바위에 새겨진 '금경산(禁耕山)' 글자도 함부로 경작하거나 물을 훼손하지 말라는 금기의 표현으로 읽힌다.
입산봉이 물을 품은 오름이었다는 사실은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조선시대 제주목사를 지낸 이익태(1633~1704)의 '지영록'에는 연꽃과 수련이 자랐다는 내용이 전한다. 이는 이곳의 물이 일시적으로 고인 빗물이 아니라 일정하게 유지되는 연지의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이후 연지는 논으로 바뀌었고, 논은 다시 밭과 농장시설로 전환됐다. 신성하게 여겨졌던 물의 자리가 생산의 터전으로 변한 것이다.
입산봉이 물을 품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원형 분화구를 가진 수성화산체, 곧 응회환이라는 지질학적 조건이 있다. 사면을 따라 흘러든 빗물이 분화구 안으로 모이고 바닥의 세립질 퇴적층은 물 빠짐을 늦췄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정확한 수문 구조는 별도 조사가 필요하지만 지형과 지질이 물을 담은 핵심요소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3일 입산봉을 하늘에서 본 모습. 2026.06.21. ijy788@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6/21/NISI20260621_0002166181_web.gif?rnd=20260621194309)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지난 13일 입산봉을 하늘에서 본 모습. 2026.06.21. [email protected]
봉수, 마을을 지키는 눈
봉수의 설치는 입산봉의 성격을 한층 넓혔다. 안쪽으로는 금훼수의 신성성이 있었고, 바깥으로는 해안을 지키는 군사적 기능이 더해졌다. 입산봉은 물을 지키는 산이면서 동시에 마을을 지키는 산이 됐다.
현재 오름 북쪽 능선에는 봉수대 터를 가리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실제 위치는 이와 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종찬 오름연구소 올 연구위원은 "1967년 위성영상에서 오름 북쪽 능선이 아닌 동쪽 정상에 봉수대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며 "주변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인위적인 지형 차이를 현장에서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분화구 땅을 매입해 1970년대부터 농사를 지어온 A씨의 딸은 "봉수대가 오름 정상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서 들었다"며 "봉수대를 복원한다면 오름 정상에 있는 묘를 이장할 뜻이 있다는 의견을 수년 전 마을회에 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입산봉 분화구에는 이동통신 3사의 통신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불과 연기를 피우던 봉수는 사라졌지만 '연락'의 기능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제주=뉴시스] 1967년 입산봉의 항공사진 모습으로 봉수대 터로 추정되는 곳을 빨간선으로 표시했다. (사진=제주도 공간포털에서 캡처)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6/21/NISI20260621_0002166173_web.jpg?rnd=20260621192005)
[제주=뉴시스] 1967년 입산봉의 항공사진 모습으로 봉수대 터로 추정되는 곳을 빨간선으로 표시했다. (사진=제주도 공간포털에서 캡처) [email protected]
궤네기굴과 고대 생활의 흔적
김녕은 바다와 오름, 동굴과 용암지형이 함께 놓인 지역이다. 바다는 먹을거리를 제공했고, 동굴은 거처와 은신처가 됐으며, 입산봉은 물과 조망을 제공했다. 고대 사람들에게 이 조합은 중요한 생존 조건이었다. 궤네기굴과 입산봉은 별개의 유적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함께 기능한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궤네기굴은 훗날 마을신앙의 장소로 이어졌다. 선사시대의 거주 공간이 시간이 흐르며 신당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지난 13일 오름연구소 올 연구위원들이 입산봉 아랫 자락에 있는 궤네기굴을 확인하고 있다. 2026.06.22.ijy788@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6/21/NISI20260621_0002166175_web.jpg?rnd=20260621192145)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지난 13일 오름연구소 올 연구위원들이 입산봉 아랫 자락에 있는 궤네기굴을 확인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입산봉은
최근 전문업체 조사 결과 입산봉은 해발 86.5m, 비고 65.0m, 면적 23만2735.2㎡로 나타났다. 전체 면적 가운데 묘지가 16만2151.5㎡로 69.7%를 차지하고, 밭은 6만7002.6㎡로 28.8%에 이른다. 기존에 알려진 해발 84.5m, 면적 22만9521㎡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제주도의 공식적인 재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분화구 안쪽 밭에서는 감귤 재배가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나머지 구역에는 콩, 유채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작물이 심어진다. 사면에 내린 빗물은 분화구 안 연못으로 모인 뒤 수로를 따라 오름 밖으로 빠져나간다. 현재 농사에 쓰이는 물은 외부에서 공급되는 농업용수에 의존하고 있다.
이날 답사에서는 예덕나무, 개망초, 개엉겅퀴, 참빗살나무, 인동덩굴, 멍석딸기, 고삼, 쥐똥나무, 양장구채, 벌노랑이 등 개화식물이 확인됐다. 조류는 방울새, 직박구리, 두견, 뻐꾸기, 섬휘파람새, 중대백로, 큰부리까마귀 등이 관찰됐고, 나비류는 청띠제비나비, 푸른부전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배추흰나비, 물결나비 등이 보였다.
입산봉은 낮지만 단순하지 않은 오름이다. 사면에는 망자의 묘역이 펼쳐지고, 분화구 안에는 산자의 농경이 이어진다. 물은 신성한 이름으로 기억됐고, 봉수는 마을을 지키는 눈이 됐다. 오름 아래 궤네기굴은 고대 생활과 신앙의 흔적을 전한다. 오름이 지질·신앙·방어·농경·장묘의 문화경관으로 읽혀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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