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9000피 환호 뒤에 숨은 38조 '빚투'의 그늘

[서울=뉴시스] 강수윤 기자 =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건 못 참는다.'
한국인 특유의 고질적인 비교 문화와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저울질하는 이들의 심리를 꼬집은 오랜 격언이다.
최근 온라인 소셜미디어에는 주식으로 벌어 큰 수익을 자랑하는 이른바 '대박 인증글'이 쏟아지고 있다. 자산의 95%를 SK하이닉스에 집중 투자해 10억엔(약 95억원)을 벌어 인증한 일본인 개미의 투자 계좌는 국경을 넘어 국내 투자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신용융자를 끌어모아 매달 수백 만원의 고공 이자를 감당한 결과 수억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공무원의 사연, 주식 대박으로 '조기 은퇴'를 선언한 젊은 파이어족들의 글이 피드를 도배한다.
'수천만 원을 번 것은 명함조차 못 내민다'는 수억, 수십억 원대의 대박 신화는 젊은 청년층에게 나만 빼고 모두 부자가 된 것 같은 착시와 상대적 박탈감을 심어준다. 타인의 성공에 자극받은 투자자들은 '나만 벼락거지가 될 수 없다'는 극심한 포모(FOMO) 심리에 내몰리면서 결국 빚을 내 한방을 노리는 위험한 한탕주의에 빠지고 있다.
투자자들의 광풍에 불을 지핀 것은 사상 전례 없는 증시 폭등세다. 코스피 지수가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9000선 고지를 밟으며 또 한번 한국 증시의 새 역사를 썼다. 불과 반년 사이에 지수가 2배나 폭등하는 역대급 랠리가 펼쳐진 것이다. 연일 사상 최고가 경신으로 화려한 축제 분위기이지만 시장의 이면에는 유례없는 규모로 불어난 '빚투(빚을 내 투자)'가 시한폭탄처럼 도사리고 있다.
국내 증시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8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학개미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 7월(25조원)과 비교해도 13조원 이상 폭증한 수치다. 특히 지난달 27일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출시된 이후 개인투자자의 투기적 매매 성향이 짙어지면서 시장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승률을 2배로 추종하는 고위험 구조에 단기 차익을 노린 자금이 대거 몰리며 상장 후 거래대금이 무려 125조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처럼 쏟아지는 반대매매 물량과 레버리지 투자 열풍이 증시의 변동성을 극대화하는 주범으로 지목된다는 점이다. 최근 한 달 간 코스피가 연일 널뛰기 장세를 연출하자 버티지 못한 계좌들이 무더기로 강제 청산당하며 시장에 쏟아진 반대매매 규모만 1조원을 넘어섰다.
코스피가 8000에서 9000선으로 치솟은 한 달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 호가 효력정지)가 11번, 지난 8일에는 지수가 8% 넘게 폭락하며 매매가 일시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시장의 공포지수(VKOSPI)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치솟은 이유다.
최근 변동성 장세에서 이들 상품은 혹독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급락으로 레버리지 상품의 평균 최대 낙폭이 36.8%에 달하자 금융당국도 자금 쏠림과 손실 우려에 대해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하고 정밀 모니터링에 착수했다.
전례 없는 불장이라지만 정작 개인투자자들의 계좌는 10개 종목 중 8개가 파란불일 정도로 중소형주 소외와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일부 반도체와 대형주를 제외하곤 대다수 중소형주 주주들은 지수 상승의 온기를 전혀 누리지 못한 채 평가손실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반대매매는 개인의 자산 손실과 증시 변동성 확대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결국 빚으로 쌓아 올린 지수는 모래성에 불과하며, 그 성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것은 정보와 자금력이 부족한 개미들이다.
화려한 수익 인증에 가려졌을 뿐 최근 유튜브 등에는 주식으로 거액을 벌었다가 순식간에 마이너스 계좌로 전락한 투자자들의 고백도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익을 낸 뒤 찾아온 탐욕에 눈이 어두워져 무리하게 베팅을 키우다가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변동성이 극에 달한 장세일수록 화려한 '대박 신화'라는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한다. 감당할 수 없는 레버리지와 빚투로 올인한 대가는 참혹하다. 결국 변동성 장세 끝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은 대박을 노린 무리한 레버리지 투자자가 아닌 철저하게 분산된 포트폴리오와 감당 가능한 자산으로 버텨낸 투자자들이기 때문이다. 벼락거지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투자가 아닌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계좌를 냉정히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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