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폭염, 모두에게 오지만 공평하지는 않다
등록 2026.08.14 14:44:46수정 2026.08.14 14:58:24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 "물을 충분히 마시고, 무리하지 말고, 틈틈이 쉬세요."
폭염 때마다 반복되는 당부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무심코 흘려듣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당연한 수칙조차 지키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지난 7일 경기지역 한 자원순환센터에서 만난 선별원들이 그랬다. 이들은 음식물 찌꺼기와 쓰레기가 뒤섞인 시큼한 냄새와 파리가 들끓는 작업장에서 하루 꼬박 8시간을 보낸다. 야외 작업장 온도계가 무려 43도를 가리키는 날에도 일을 멈출 수 없다.
실내라고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선별원들이 일하는 선별실의 작업계 온도는 37도. 에어컨과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이들은 마스크와 장갑, 팔토시를 착용한 채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쓰레기 속에서 병과 페트병을 골라내야 한다.
10분만 일해도 속옷까지 땀으로 젖는다고 했다. 모두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포도당까지 챙겨 먹는다.
더위를 피해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하루 처리해야 할 쓰레기 양이 정해져 있어서다. 쉬엄쉬엄 일하면 그만큼 퇴근만 늦어지고,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그의 몫은 고스란히 동료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선뜻 쉬기 어려운 이유다.
일부 선별원은 주변 시선 때문에 어디서 일하는지 말하기 꺼린다는 속내도 털어놨다. 우리가 매일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폭염과 악취뿐 아니라 자신의 일터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견디고 있었다.
그보다 이틀 전에 만난 생활지원사의 사정도 비슷했다. 지난 7일 낮 기온이 37도까지 오른 경기 구리시에서 검은 양산 하나를 들고 취약노인 가정을 오갔다. 20분 넘게 걸어야 하지만 도중에 더위를 피할 곳은 마땅치 않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워 물이나 커피도 마음껏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충분한 수분 섭취'라는 가장 기본적인 수칙조차 이들에게는 사치다.
이들이 안전하게 일할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폭염 속 선별 작업량을 조절하거나 생활지원사의 방문 부담을 덜고, 최소한의 더위 피난처를 마련할 수는 없는지 관계기관에 물었다.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쓰레기는 매일 쏟아지고 폭염 속 취약계층의 안부는 확인해야 하니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은 존재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놓는 것과 위험을 줄일 대책을 짜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으로 시원한 물, 냉방장치, 휴식, 보냉장구, 응급조치를 내세우고 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폭염 작업에는 2시간 이내 20분 이상의 휴식을 부여하고 휴게시설을 가까이 두도록 권고한다.
그러나 제도가 있느냐보다 중요한 건 현장에서의 작동 여부다. 처리 물량과 인력은 그대로 둔 채 "쉬어라"라고 하고, 화장실도 휴게공간도 부족한 판에 "물을 마시라"고 하니 지침은 현장에서 겉돌 수밖에 없다.
그 사이 폭염은 일터에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온열질환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사망자만 24명에 달한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모두에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다. 대책 또한 그래야 한다. "물 마시고 쉬라"는 판에 박힌 당부를 반복하기보다, 누가 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대책을 대신할 수도 없다. 멈출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길을 찾는 것, '살인 폭염'이 일상이 된 요즈음 대책은 적어도 거기까지 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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