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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DNA 묻힌 거 아닙니까" 인면수심 성폭행범의 생떼

등록 2020.12.30 05:00:00수정 2020.12.30 10: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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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지난 3월 마을 독거노인 상대 범죄…현장 증거물과 DNA 일치

2016년 마을 유사 범죄 DNA형 일부 일치했으나 '동일범 단정 불가'

재판부 "죄질 불량, 피해자 고통 가중 등 두루 고려" 징역 12년 선고



"제 DNA 묻힌 거 아닙니까" 인면수심 성폭행범의 생떼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제 유전자 정보가 왜 거기서 나와요? 피해자 옷에 제 DNA를 묻혀 범인으로 몰아간 것 아닙니까?"

성폭행범 A(51)씨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DNA는 그를 법정에 세워 죄를 물었다.

2015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한 지역 마을에서는 주거 침입 성폭행과 미수 범행 8건이 연이어 났다. 피해자만 7명에 달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은 뒤늦은 신고(범죄 발생 보름에서 한 달 사이)로 이어졌다. 사건 대부분은 미제(未濟)가 됐다.

올해 3월 어느 날 새벽 이 마을에서 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홀로 살던 고령 여성 B씨가 흉기를 든 채 집에 침입한 괴한에게 성범죄 피해를 봤다. B씨는 당시 장식장에 머리를 부딪혀 크게 다쳤다.

B씨는 자식에게 '집 잠금장치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가족은 사건 발생 12시간 만에 신고했다.

경찰은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이후 범행 장소 주변을 오간 차량 1858대를 분석했다. 범행 시간에 가장 근접해 통행한 차량 주인 A씨를 용의 선상에 올렸다.

경찰은 잠복근무 중 우연히 A씨가 쓰레기 봉부를 아파트 단지 수거함에 두고 간 것을 봤다.

봉투에서 머리카락, 장갑, 아이스크림 막대를 찾아 국과수에 보냈다. 사건 당시 검출된 DNA와 일치했다. 실마리가 잡혔다.

체포영장 발부 뒤 A씨를 붙잡았다. A씨의 구강상피세포를 감정 의뢰, 또 한 번 사건 증거물과 유전자 정보가 같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특히 A씨의 Y-STR 유전자 정보가 2016년 5월 이 마을에서 발생한 유사 사건 현장에서 검출된 DNA형과 일치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A씨가 2016년 성범죄를 저지른 범인과 같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A씨가 2016년 범인과 '동일한 부계 혈통'에 속한다는 뜻이다.

A씨는 지난 3월 치밀하게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전에 인터넷 로드뷰 등을 통해 범행 장소 주변 폐쇄회로(CC)TV 위치를 확인했다. 위성 사진 831개를 휴대전화에 저장해뒀다.

A씨는 범행 2시간 전 휴대전화의 전원을 껐다. 전조등을 끄고 햇빛 가리개를 내린 채 차를 몰았다. 마을과 2㎞가량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해놓고 모자·마스크를 쓴 채 범행한 뒤 달아났다.

마을 외곽에 혼자 거주하는 노인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고, 평소에 노인 여성 상대 성행위 영상을 다수 찾아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과 검찰은 이러한 조사 내용을 토대로 A씨를 두 사건(올해 3월, 2016년 5월)의 범인으로 판단했다. 주거침입 강간과 특수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제 DNA 묻힌 거 아닙니까" 인면수심 성폭행범의 생떼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노재호 부장판사)는 최근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보호관찰 5년, 해당 지자체 출입 금지, 매일 오후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외출 금지 등의 준수 명령도 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2016년 범행의 범인과 동일한 사람이라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난 3월 발생한 사건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DNA형의 개인 식별지수를 비롯, 3월 발생 범행 현장에서 확보된 DNA형과 A씨의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형과 같은 유전자형을 가진 다른 사람이 있을 확률은 170자(경의 억배로 10의 24승)에 불과하다. 범인으로 확신할 수 있다"고 봤다.

A씨가 죄질이 불량하고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점, 법정에서 증언한 피해자가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보내게 만든 점, 엄벌 탄원 등을 두루 고려해 실형을 선고했다고도 밝혔다.

재판부는 2016년 범행에 대해서는 "DNA 검사 결과는 A씨가 동일한 부계혈통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 그 이상의 개인 식별력이 없다. A씨를 범인이라고 확실히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16년 범죄 현장의 혼합 DNA형(피해자 유전자 정보 포함) 분석 위치 13곳 중 3곳을 제외한 위치에서 A씨의 DNA 정보와 다를 가능성이 있는 점, A씨가 2016년 당시 범행 장소 일대에 있었다거나 사전에 범행을 준비했다고 볼만한 정황 증거가 없는 점, 모방 범죄가 섞여있을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범죄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Y-STR DNA 분석법은 성(性) 염색체 중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Y 염색체가 부계를 통해 그대로 유전되는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범인의 DNA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거나 남성·여성 유전자형이 혼합돼 검출되는 경우 쓰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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