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감도 닦지 않았다…화가의 품위 ‘윤형근의 집’[박현주 아트클럽]
등록 2026.08.25 16:08:24수정 2026.08.25 17:32:24
9월1일 서교동 자택·작업실 첫 공개
유족이 생전 모습 그대로 보존·복원
“작품은 그 사람의 흔적…가장 좋은 작품은 품격”
PKM·뉴욕 저드재단서 개인전 이어져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윤형근 에스테이트는 25일 한국 단색화의 거목 고 윤형근 화백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 겸 작업실을 '윤형근의 집'으로 복원하여 언론공개회를 갖고 있다. 작업실 바닥은 화백의 작업시 사용한 물감이 배어 있다. 2026.08.2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21410371_web.jpg?rnd=2026082515302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윤형근 에스테이트는 25일 한국 단색화의 거목 고 윤형근 화백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 겸 작업실을 '윤형근의 집'으로 복원하여 언론공개회를 갖고 있다. 작업실 바닥은 화백의 작업시 사용한 물감이 배어 있다. 2026.08.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윤형근은 떠났지만, 그의 바닥은 아직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닥에 검은 물감이 그대로다. 닦아내지 않았다. 윤형근(1928~2007)이 작업하며 흘리고 밟고 지나간 흔적이다. 검푸른 물감은 4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작업실 바닥에 얼룩처럼 남아 있다.
검은 물감이 흩뿌려지고 문질러지고 겹쳐졌다. 새집처럼 복원하지 않았다. 윤형근이 평생 그림을 밀어붙인 시간이 그대로 눌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 위에 그가 쓰던 작업 도구와 시대별 대표작을 놓았다.
그 앞에 서니 윤형근의 그림이 어디에서 나왔는지가 보였다. 캔버스에 내려앉은 검푸른 기둥만큼이나 말이 없고 거칠다. 그림을 그렸던 방과 밥을 먹고 잠들었던 집이 한 건물 안에 있다. 삶과 작업 사이에 문턱이 없었던 화가의 집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윤형근 에스테이트는 25일 한국 단색화의 거목 고 윤형근 화백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 겸 작업실을 '윤형근의 집'으로 복원하여 언론공개회를 갖고 있다. 작업실 바닥은 화백의 작업시 사용한 물감이 배어 있다. 2026.08.2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21410364_web.jpg?rnd=2026082515302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윤형근 에스테이트는 25일 한국 단색화의 거목 고 윤형근 화백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 겸 작업실을 '윤형근의 집'으로 복원하여 언론공개회를 갖고 있다. 작업실 바닥은 화백의 작업시 사용한 물감이 배어 있다. 2026.08.25. [email protected]
윤형근이 살고 작업했던 서교동 주택이 ‘윤형근의 집(Yun Hyong-keun House)’으로 문을 연다. 윤형근 에스테이트가 보존·복원해 오는 9월1일부터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1층 작업실과 2층 주거 공간을 생전 모습에 가깝게 되살렸다. 가구와 기물의 위치까지 가능한 한 그대로 보존했다.
미술관을 새로 지은 게 아니다. 살던 집을 남겼다. 관의 지원 없이 오롯이 유족이 보존해 문을 여는 ‘윤형근의 집’은 작가 이름을 내건 기존 기념미술관과도 결이 다르다. 화가가 살고 작업한 집 자체를 남겨 그의 시간을 함께 들여다보게 했다.
빨간 벽돌, 나무 바닥, 소목장을 통해 제작한 갈색 집기들. 집 자체가 윤형근의 미감이다.
이 집의 시간은 김환기에서 시작한다. 터는 윤형근의 장인이었던 수화 김환기가 1963년 국민주택으로 분양받았다. 윤형근은 1967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1983년 기존 주택을 헐고 동생 윤도근 당시 홍익대 건축과 교수에게 설계를 맡겨 지금의 집을 지었다. 이후 20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족과 살며 그림을 그렸다.
설계를 동생에게 맡겼지만 집에는 윤형근의 미감이 깊숙이 들어갔다. 공간의 기능과 형태부터 재료 선택까지 직접 관여했다. 높은 층고와 노출 배관, 전면 유리에는 서구 모더니즘 건축의 간결함이 있다. 목재 천장과 문창살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 있다. 자연광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1층 작업실 한쪽 벽 전체를 유리창으로 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윤형근 에스테이트는 25일 한국 단색화의 거목 고 윤형근 화백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 겸 작업실을 '윤형근의 집'으로 복원하여 언론공개회를 갖고 있다. 2026.08.2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21410367_web.jpg?rnd=2026082515302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윤형근 에스테이트는 25일 한국 단색화의 거목 고 윤형근 화백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 겸 작업실을 '윤형근의 집'으로 복원하여 언론공개회를 갖고 있다. 2026.08.25. [email protected]
윤형근은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다. 청색과 엄버(Umber)를 섞은 검푸른 안료를 마포나 린넨에 스며들게 하며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화면을 수직으로 가르는 짙은 색면과 안료가 천에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번짐은 그의 작품을 상징하는 조형 언어가 됐다.
윤형근에게 그림은 삶과 분리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었다.
“작품이란 그 사람의 흔적이니까.”
작업실 옆 영상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관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한두 장은 거짓말해서 이렇게 만들 수도 있어도 가장 높은 품격을 가진 것이 가장 좋은 작품이 아닌가.”
그가 끝내 붙잡은 단어는 ‘품위’였다.
“모든 욕심 다 버려야 천진무구한 세계로 들어가야지.”
그러면서도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거야. 근데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은 해야지.”
그리고 말했다.
“그게 인간의 목적인 것 같아.”
완성에 도달했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그곳을 향해 가겠다는 고백이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윤형근의 집. 영상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02220940_web.jpg?rnd=2026082516034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윤형근의 집. 영상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윤형근의 화면이 갈수록 단순해진 것도 이 삶의 태도와 겹친다. 색은 줄고 형상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검푸른 안료가 화면을 타고 번지고 스며든 흔적이다. 그가 말한 ‘천진무구한 세계’는 무엇을 더 그리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더 버릴 것인가에 가까웠다.
“진리에 사는 거. 진리에 생명을 거는 거. 그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잘 그린 그림보다 먼저 바로 서야 하는 것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업실 바닥이 압권으로 다가온다.
그곳에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며 살아낸 시간이 남아 있다. 윤형근의 말처럼 작품이 한 사람의 흔적이라면 검은 물감으로 뒤덮인 이 바닥 역시 거대한 ‘윤형근의 흔적’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작가 윤형근’은 ‘생활인 윤형근’으로 이어진다. 가족이 사용했던 거실과 부엌, 안방이 남아 있다. 가구와 도자기, 오디오부터 추사 김정희의 현판, 도널드 저드의 조각까지 그의 취향과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물건들이 원래 자리를 지킨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윤형근의 집 2층 거실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02220901_web.jpg?rnd=20260825154609)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윤형근의 집 2층 거실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윤형근의 집. 부인 김영숙의 방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02220895_web.jpg?rnd=20260825154209)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윤형근의 집. 부인 김영숙의 방 *재판매 및 DB 금지
아내 김영숙을 기리는 방에는 그의 그림과 수집품, 김환기·김향안과 주고받은 삶의 흔적도 남았다. 장인이었던 김환기는 윤형근의 정신적 지주였다.
1974년 촬영된 사진 한 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형근이 김환기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 사이에 서 있다. 장인이자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와 윤형근, 그리고 다시 후손으로 이어지는 기억은 이 집에서 한 가족의 역사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장면이 된다.
윤형근의 아들 윤성열은 부모의 삶을 이렇게 기억했다.
“두 분은 그렇게 다르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겉모습과 생활이 따로 가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셨던 것 같아요. 생활과 작업을 따로 떼기 힘들었고 그 믿음이 작품에서도 같았습니다.”
‘윤형근의 집’이 흥미로운 이유다. 그림을 걸어놓은 또 하나의 전시장이 아니다. 윤형근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기에 그런 그림이 나왔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윤형근의 아들 윤성열과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실장이 대담을 나누고 있는 영상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02220899_web.gif?rnd=2026082515450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윤형근의 아들 윤성열과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실장이 대담을 나누고 있는 영상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PKM갤러리는 25일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서교동 '윤형근의 집' 개관 기념전 '윤형근을 다시 상상하다'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8.2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21409894_web.jpg?rnd=20260825112402)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PKM갤러리는 25일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서교동 '윤형근의 집' 개관 기념전 '윤형근을 다시 상상하다'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8.25. [email protected]
윤형근의 집 개관과 맞물려 PKM갤러리에서는 26일부터 10월3일까지 ‘윤형근을 다시 상상하다(reimagine Yun Hyong-keun)’가 열린다. 초기부터 말년까지 주요 작품을 한 흐름으로 펼친다.
뉴욕 저드 파운데이션에서도 10월8일부터 내년 1월9일까지 윤형근 개인전이 이어진다. 과거 도널드 저드의 초대로 열린 윤형근 개인전 출품작 가운데 6점을 다시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가 윤형근의 집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25/NISI20260825_0002220908_web.gif?rnd=20260825154737)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가 윤형근의 집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에 따르면 윤형근과 저드는 1991년 만나 깊은 교류를 시작했다. 저드가 윤형근의 작업실을 방문한 뒤 미국 텍사스 말파 전시를 제안했다. 말파 전시 직전 저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전시는 예정대로 열렸다.
두 작가가 떠난 뒤에도 인연은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윤형근의 집’ 개관 행사에는 저드의 아들 플래빈 저드가 참석한다.
‘윤형근의 집’은 9월1일부터 10월17일까지 예약제로 운영한다. 한 회당 8명만 들어갈 수 있으며 전 회차 도슨트 투어로 진행한다. 관람료는 2만원.

마포 홍대 인근 빨간벽돌집 윤형근의 집. Yun Hyong-keun House, 2026. PKM 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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