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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찻퐁 "익숙치 않은 무대, 관객과 공유하고파"

등록 2015.09.05 17:30:35수정 2016.12.28 15: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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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열벙의 방'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열벙의 방'

첫 공연 '열병의 방' 한국서 처음 선보여

【광주=뉴시스】이재훈 기자 = 태국 출신의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45)은 2010년 '엉클 분미'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등을 수상한 거장이다.

 '열대병'(2004) 등 이미지와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실험적인 영화로 주목 받았다. 특히 역사의 자장 아래 다큐멘터리와 판타지,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몽환적인 구성이 일품이다.

 이런 성향은 공연장으로 옮겨와도 마찬가지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예술감독 김성희)이 의뢰하고 제작해 전날 이 공간의 공연장인 극장2에서 세계 초연한 '열병의 방'이 이를 증명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첫 공연작품으로 현실적인 이미지와 환상적인 이미지가 씨줄과 날줄로 엮인다. 아직 연극이라는 장르가 낯설다는 그는 총 70분의 러닝타임 절반 이상을 영상 상영에 할애했다. 가로 약 3.5·세로 2m의 스크린 2대가 현실의 기억, 이후에는 프로젝터 빔과 연기의 몽환적인 향연이 펼쳐졌다.  

 공연 전체의 콘셉트는 동굴. 입구부터 본 공연장까지 가는 길목도 마치 어두컴컴한 동굴처럼 돼 있었다. 그는 5일 오후 국내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관은 현대의 동굴"이라고 말했다.  

 -극장 안의 무대와 객석이 바뀌었습니다. 객석은 프로젝터 빔과 연기 등을 활용하는 공간이고, 무대가 관객들의 객석입니다. 뒤바꾼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관객들은 무대로 입장에 자유롭게 착석한다. 영상 상영 뒤 막이 걷히면 객석이 보인다. 이 때 관객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빔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연극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공연장의 백스테이지 공간이 메커니즘적으로 흥미로웠어요. 무대에서 보이는 객석이 가장 좋았어요. 퍼포머나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무대에서 객석을 봤을 때 불편한 느낌이 있죠. 작품 역시 혼란에 관한 내용이라서 무대에 섰을 때의 그 느낌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로 공연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여전히 제게 익숙한 매체입니다. 저로서는 예상 가능한 시작이죠. 연극에 아직 깊이 진입한 상황이 아닙니다. 김성희 예술감독님께서 처음 프로젝트 제안을 하셨을 때 연극을 못할 것 같아서 거절했어요. 근데 계속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해주셨고, 차이밍량 같은 거장 영화감독님도 함께 하신다고 해서 든든했죠. 이번에 아시아 곳곳에서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공연합니다. 그간 연극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깨기고 있죠. 공연에 눈을 뜬다고 할까요."

 -녹색 프로젝터 빔이 인상적이었습니다(빔은 연기와 만나 다양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영화에 기본이 되는 빛에 집중했어요. 공간은 칠흑 같이 어두운 동굴이 콘셉트인데요, 동굴은 최초의 서사와 최초의 영화가 시작된 곳입니다. 빛이 들면서요. 그렇게 빛이 있으면 내러티브가 있죠. 프로젝터 로 그런 걸 생각하면서 실험했습니다. 영화관은 현대의 동굴이라고 할 수 있죠."  

 -프로젝터 빔과 연기 사이에서 사람의 그림자 또는 형상이 나온던데요.  

 "연기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는 기억처럼 보여지고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영상에서 2차원을 느끼고 빛과 연기에서 3차원으로 넘어가고, 다시 관객이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넘어가길 바랐습니다.

 -영화 만들 때 쌓인 부분들이 이번 공연에서도 많이 활용이 됐나요?

공연 '열병의 방' 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가운데)이 5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연 '열병의 방' 감독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가운데)이 5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영화 촬영할 때 기술적인 것을 이번에도 활용했죠. 결국 영화는 환상인데 빛과 연기를 사용하죠. 이번에도 환상적인 부분에 빛과 연기를 사용했죠.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영화적인 콘셉트가 들어갔어요. 스피커 두 세트를 활용해서 소리에 원근법을 줬죠. 빛과 소리를 관객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지가 궁금해서 생각한 부분들이죠."

 -영화감독으로서와 공연 연출가로서 사람 몸에 대한 인식이 다른가요?

 "제가 연극에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사람이 무대 위에 있다는 거예요. 영화는 클로즈업 등을 통해 사람을 어떻게 촬영할 지 고민할 수 있는데 연극에서는 사람 몸의 전체가 그냥 보이죠. 그게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이 등장하는 부분의 비율을 줄여가면서 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공연을 시작했어요. 빛 기계 등의 요소를 더 늘려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거죠. 사람에 대한 관심은 배우보다 관객에게 더 있어요. 즉 신체보다 정신이죠. 공연을 보면서 최면에 걸린듯 느꼈으면 합니다. 항상 어떤 장면을 뒤에서 바라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영화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공연은 영화보다 적은 관객수를 만나게 되죠?

 "매체는 어떤 종류든 표현의 수단입니다. 근데 아무래도 제가 만든 공연의 규모가 작다 보니 만나는 관객수도 적죠. 물론 영화 연출 수보다는 적지만 '열병의 방'을 시작으로 공연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앞으로 영화 뿐 아니라 콘서트, 미술 등 다양한 형태를 한 곳에 담아 더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열병의 방'은 당신의 신작 영상작품인 '찬란함의 밤'(수면병에 빠진 병사와 그를 간호하는 주부의 이야기로 꿈 속에서 새로운 현실을 직조한다)과 페어를 이루죠. 근데 병원이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하는 '찬란함의 밤'과 '열병의 방'은 질병이 실제 질병과 은유로서의 질병으로서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이번 부분은 당신의 기존 작품 특징인 다큐멘터리 또는 판타지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데요, 이런 부분을 만들 때 염두하시나요?

 "'찬란함의 무덤'은 태국의 점점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출발한 작품이에요. 표현의 자유가 없어지고 있고 2년 간 군부독재 때문에 이런 점이 심화됐죠. 거리시위도 못하고 아직 감옥에 수감돼 있는 사람들도 많고요. 이런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을 탈피하거나 도피하는 거예요. 이 작품에서 다룬 도피의 방법은 몸을 통로로 다른 현실로 넘어가는 겁니다. '찬란함의 무덤'의 인물들은 자는 상태에서 깨어 있는 듯한 혼란을 느껴요. 깨어 있을 때 들은 뉴스는 진짜인인가 싶은 의문이 들죠. 꿈과 현실의 요소가 혼합됩니다. 그래서 '열병의 방'에서는 점점 어두워지는 상황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광주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소감은 어떻습니까?

 "부럽고 질투 나요. 태국에서는 마땅한 연습 공간도 없는데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최첨단 장비들을 사용해서 공연하는 건 태국에서 누리지 못한 혜택이죠."

  -작품을 의뢰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의 프로그램 특징은 유럽에 치우치지 않는 것인데요. 당신은 태국인 또는 아시아인으로서 정체성은 어떤가요? 한국과의 관계는 또 어떻습니까?  

 "일단은 저는 태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만의 작업을 해요. 아시아영화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태국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을 작업하죠. 특히 태국의 정체성은 여러가지 메타포가 뒤섞였어요. 역사가 길지 않고 여러 부족이 합쳐졌죠. 제가 태어난 곳도 본래 중국의 일부였습니다. 한국과의 관계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이곳 광주에서 학살은 들어알고 있죠. 1970년대 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최근에야 이런 역사가 재평가되고 정확히 어떤 일들이었는지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됐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었다는 공통점이에요."  

 '열병의 방'(6일까지)과 '찬란함의 무덤'(7~9일 광주극장)은 준비 10년 만에 올해 말 정식 오픈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페스티벌'을 앞두고 아시아예술극장이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5만원·8000원. 1899-556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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