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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모태' 광주천 이야기] ②멱내…깨 벗고 물장구쳤는데

등록 2021.07.19 0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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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 감는 개천' …오염된 천, 100년 전 모습 회복 절실

비단결 같이 부드럽게 흐른 `금계', 현 동구 금동 어원

[광주=뉴시스] 배상현기자=일제강점기 광주천 금교 일대. 광주천은 1900년대 초엽만해도 아이들이 깨 벗고 물장구 치고 놀 정도로 천이 맑고 깨끗했다. 그래서 `멱내'라했다. 2021.07.18 (사진=광주역사민속박물관 제공)praxis@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배상현기자=일제강점기 광주천 금교 일대. 광주천은 1900년대 초엽만해도  아이들이 깨 벗고 물장구 치고 놀 정도로 천이 맑고 깨끗했다. 그래서 `멱내'라했다.  2021.07.18 (사진=광주역사민속박물관 제공)[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배상현 기자 = 광주천의 여러 이름 중 `멱내'가 있다. `멱을 감는 개천'.  1900년대 초엽만해도  아이들이 깨 벗고 물장구 치고 놀 정도로 천이 맑고 깨끗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까지는 빨래하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느때부터 천변에는 `수영금지' 푯말이 붙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금지'가 아니라 `오염된 하천에 들어가지 말라' 알림이다. 도시가 커지고 공업화, 인구 증가로  광주천도 오염이 심해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낫지만, 100년 전 광주천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광주천은 원도심인 옛 광주읍성 일대를 지날 때쯤인 중류에서는 한때 금계(錦溪)라고 불렀다. 비단결 같이 부드럽게 흐른다고 해 붙여진 이름인듯하다. 지금의 광주 동구 금동 (錦洞)도 금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때 금동은 금정(錦町)이었는데, 해방 직후 일본식 이름을 바꿔 금정 1구를 금류동, 2구는 금계동이라고 했다가 다시 금동으로 합쳤다고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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