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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극우정당 국민전선 창당의 장마리 르펜 타계…96세

등록 2025.01.07 22:26:19수정 2025.01.07 22: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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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당을 이어받아 국민집결로 개명하며 세 확장…이미지 탈색

[AP/뉴시스] 2009년 장마리 르펜이 같은 유럽의회 의원인 딸 마린 르펜과 함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소재 의회 의사당에 나란히 앉아 있다

[AP/뉴시스] 2009년 장마리 르펜이 같은 유럽의회 의원인 딸 마린 르펜과 함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소재 의회 의사당에 나란히 앉아 있다

[서울=뉴시스] 김재영 기자 = 프랑스의 반 이민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현 국민집결 RN) 창시자인 장-마리 르펜이 7일 96세로 타계했다고 가디언 지 등이 보도했다.

1972년부터 2011년까지 국민전선을 이끌던 르펜은 최근 수 주일 동안 돌봄 시설에 있었으며 이날 낮 사망했다고 유족들이 밝혔다.

르펜은 지난해 국민집결 RN 실질적 지도자인 딸 마린 르펜 및 당 요원들과 함께 딸이 프랑스 국회의원이 되기 전 유럽의회 의원 시절 보좌진 허위 업무 기록으로 의회 공금을 타낸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 120여 명의 RN 의원을 거느리고 있는 마린 르펜은 세 번째 대권 도전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관련 재판을 지난해 말부터 받고 있다.

아버지 장마리는 건강을 이유로 법정 출두가 면제되었다.

낙하산병 출신의 장마리 르펜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대놓고 사소한 일로 폄하해 논란을 일으키며 여러 차례 법원에 소환되었다. 2차 대전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의 부역 괴뢰 정부인 비시 정권을 찬양했다.

2014년에는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열병이 창궐하자 지구의 인구폭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파리의 집시(로마)를 가리켜 발진을 유발하며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공개 모임에서 말해 얼마후 기소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1년 딸 마린 르펜이 국민전선 FN 당수직을 맡으면서 장마리는 종신 명예당수로 물러났다. 마린은 국민전선의 극우 색채를 희석시키는 작업을 펼쳤고 아버지가 이런 노력에 맞지 않게 선동적 언사를 계속 구사하자 2015년 아버지를 쫓아냈다. 여러 법적 다툼을 거쳐 장마리 르펜은 2018년 FN에서 축출 제명되었다. 

장마리 르펜은 5차례 프랑스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특히 2002년 대선 1차투표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펭 후보를 앞지르며 2위 득표로 결선에 진출해 공화당의 자크 시라크 후보와 겨눠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 충격파를 일으켰다. 결선서 시라크가 82%가 넘는 득표로 압승해 엘리제궁 주인이 되었다.

딸 마린 르펜(56)은 프랑스 의회 선거에서 번번이 낙선한 뒤 2017년 대선에 출마해 2위로 결선에 진출할 수 있었고 결선서 34% 대 66%로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졌다. 대망의 프랑스 국회의원이 된 르펜은 2022년 대선에 다시 나와 역시 2위로 결선에 진출했고 득표율을 42%로 늘렸다.

당명을 RN으로 바꾼 마린은 2017년 총선서 9명에 불과하던 자당 의원 수를 2022년 총선서 89명으로 늘렸고 2024년 조기총선서는 124명까지 키웠다.

이날 타계한 장마리 르펜은 북서부 브르타뉴 어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장이 14살 때 그물에 기뢰가 폭발하면서 아버지가 사망했다. 16살에 군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어려서 퇴짜 당했고 이후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해 낙하산 부대로 들어가 식민지 인도차이나 및 알제리의 독립전쟁에 휘말렸다. 이때 식민지의 독립군들을 붙잡아 고문을 많이 했다고 뒤에 자랑하듯 실토한 바 있다.

1956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72년에 철저한 반이민 기조의 국민전선을 창당했다. 1988년까지 의원으로 있었으며 2004년에 유럽의회 의원이 되어 2019년까지 있었다.

첫번 째 부인과 사이에 세 딸을 두었고 그 중 막내가 마린이다. 1991년 두 번째 부인과 결혼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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