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A 퀴어영화로 할까도…김태우·신하균 눈빛 봐라"
25주년 '공동경비구역 JSA' 주역 한 자리
박찬욱·송강호·이병헌·이영애·김태우 모여
박찬욱 "남북 군인 퀴어영화 생각도 해"
송강호 "젊은 내 모습 너무 잘생겼더라"
남북 우정 1999년엔 실현 어려운 소재
"국가보안법 걸릴 걱정하며 촬영 시작"
이병헌 "흥행 맛에 극장서 40번 보기도"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김태우씨와 신하균씨의 눈빛을 자세히 보면…자세한 설명은 생략할게요."
2000년 9월에 나온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는 많은 관객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수혁·남성식 남한 군인 2명, 오경필·정우진 북한 군인 2명이 우정을 나누면서 벌어지는 얘기를 그린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은 남북 병사의 우정이 아니라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는 얘기를 했다. 박 감독은 자못 진지하게 "21세기에 만들면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99년엔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JSA' 개봉 25주년을 맞아 박 감독을 비롯해 송강호·이병헌·이영애·김태우 등 이 작품 주역이 4일 서울 용산구에서 모였다. 이들이 모두 한자리에서 만난 건 25년만이었다.

◇퀴어영화 JSA?
이날 행사는 CJ ENM 30주년 기념 비저너리 선정작으로 'JSA'가 꼽히면서 만들어졌다. 올해 CJ ENM은 한국영화사를 바꿔놓은 영화 20편을 선정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으로 'JSA'를 택했다. 이 작품이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연 작품인 것은 물론이고, 작품성과 흥행 모두에서 인정 받은 최초의 작품이나 다름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작품을 두고 모인 자리인데다가 박 감독을 비롯해 출연 배우 모두가 한국 최고배우로 인정 받을 정도로 여유가 생긴 만큼 더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말들이 쏟아졌다. 박 감독이 'JSA'를 퀴어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말이었다.
분위기를 이끈 건 송강호였다. 송강호는 박 감독의 연출력을 극찬하면서도 데뷔작과 두 번째 영화의 처참한 흥행 실패를 언급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자기 연기에 대해서는 "완벽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제게도 이병헌 못지 않은 시절이…"
송강호는 사흘 전에 TV를 보다가 우연히 'JSA'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아마 20년만에 다시 본 것 같아요. 개봉하고 나서 5년 간은 TV에서 자주 했으니까, 한 20년만에 본 거죠. 영화를 보는데, 나도 이병헌 부럽지 않은 시절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웃음) 너무 잘생기고, 너무 멋있고, 너무 젊고."
그러면서도 송강호는 박 감독 연출력을 추어올리는 걸 잊지 않았다. "감독님 영화엔 깊이와 기품이 있어요. 25년 전 영화 역시 그랬습니다. 지울래야 지울 수 없달까. 정말 어쩔 수가 없달까. 으하하. 그래서 감독님 신작도 '어쩔수가없다' 잖아요." 송강호는 박 감독이 소피(이영애)가 나오는 엔딩도 고려했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JSA' 마지막 장면이 여전히 한국영화 최고 엔딩으로 손꼽히는 걸 두고 한 농담이었다.

◇국가보안법에 걸릴지도 모른다
'JSA'는 남북 관계를 이념적·군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담아낸 최초의 한국영화로도 꼽힌다. 2025년에 보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소재이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1999년엔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소재였다. 박 감독은 이 작품이 공개되면 국가보안법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다고 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1990년대 후반엔 국가보안법이 좀 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해석이 가능한 법에 구속을 받던 시대였죠. 우리가 북한군을 주적이라고 하는데, 북한 민간인도 아니고 북한 군인과 교류와 우정을 다루니까 뭐라도 걸면 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단단히 마음 먹고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싱겁게도 개봉했던 해에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게 됐고,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게 된 거죠."

◇흥행 배우가 된 이병헌의 반항
이병헌은 'JSA'를 두고 "자본주의의 맛을 보게 해준 작품"이라고 했다. 당시 이병헌은 '내 마음의 풍금'(1999)을 제외하면 수 년 간 영화에서 흥행 참패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JSA'가 전국에서 약 580만명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 흥행의 희열을 처음 느끼게 됐다.
"개봉 당시에 극장에 가서 'JSA'를 한 40번 정도 봤어요. 흥행의 맛을 처음 알게 돼서 그걸 즐기고 싶었던 거죠. 모자 쓰고 맨 뒷자리에 가서 관객이 웃고 우는 모습을 본 겁니다. 그걸 즐겼어요. 그 해 말에 시상식에서 제가 저를 '흥행 배우'라고 불렀어요. 물론 'JSA'가 잘됐으니까 신이 나서 농담처럼 한 말이기도 한데, 당시 영화계 풍토에 반항하는 느낌도 있었어요. 망한 제 영화를 자꾸 숫자로만 부르는 게 싫었던 거죠.(웃음)"

◇"저도 말아먹었어요"
현재 위상만 보면 데뷔한 이후 언제나 최고 배우 중 하나였을 것 같은 이영애 역시 나름의 위기 속에서 'JSA'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어 젖혔다고 했다. 이영애는 평소 이미지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솔직한 발언으로 웃음을 줬다.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니까…저도 1997년에 '인샬라'를 말아 먹었어요.(웃음) 저 역시 좋은 조건은 아니었던 거죠. 20대 말에 이 영화를 만났고, 이 영화를 통해 화창한 30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박 감독님과 '친절한 금자씨'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제게도 이 작품이 기적과 같아요."

◇"저도 어디가면 큰형님인데 여기선 막내네요"
이날 행사엔 주요 배우 중 한 명인 신하균이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막내가 김태우가 됐다. 1971년생인 김태우는 "나도 이제 현장 가면 큰형님인데, 여기선 막내"라고 말하며 웃었다. 신하균은 이 영화로 데뷔했고, 김태우는 '접속'(1997) 이후 두 번째 작품이었다. 그 역시 'JSA'를 "천운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 떄 집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어요. 그때 저는 정말 열심히 연기하고 있더라고요.(웃음) 'JSA'는 아마도 저를 설명해주는 영화일 거예요. 제가 어떤 배우인지 어떤 작품에 나왔는지 얘기할 때 한동안 'JSA'만 말하면 되는 시절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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