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관, 오늘 영면…네박자에 인생사 녹인 주인공
9시30분 서울대병원서 영결식
![[서울=뉴시스] 송대관.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2/07/NISI20250207_0001765156_web.jpg?rnd=20250207115903)
[서울=뉴시스] 송대관.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형 팝 발라드가 등장한 1980년대 후반 우리 대중음악에 모던함이 더해지고 랩 댄스 가수들이 힙합 문화를 가져오는 등 1990년대 우리 대중음악계에 황금기가 찾아오면서 트로트는 메인 장르에서 더 멀어지게 됐다.
하지만 송대관을 비롯 현철, 설운도, 송대관, 태진아 등 '4대 트로트 천왕'을 선봉으로 한 스타들이 그 명맥을 이어왔다.
'해뜰날'로 기억되는 송대관이 영면에 들어간다.
9일 대한가수협회 등 가요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영결식이 엄수된다.
고인과 절친했던 태진아가 추도사를 맡는다. 대한가수협회장인 가수 이자연이 조사를 담당한다. 가수 강진이 애도사를 전한다.
오전 11시 발인식이 엄수되고 송대관은 서울추모공원에서 영원히 잠들게 된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송대관의 어린 시절은 무척 살림살이가 팍팍했다. 가수 성공을 목표로 상경할 당시에도 표 살 돈이 없어 무임승차를 할 정도였다. 1992년 발표한 '차표 한 장'이 크게 히트한 이후 서울역에 차비를 몇 배로 돌려준 사연은 유명하다.
특히 송대관을 스타덤에 올린 '해뜰날'(1975)은 빈자(貧者)들의 희망가로 통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이 노래는 위로이자, 앞날을 꿈꾸게 하는 빛나는 등불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경제 개발시대에 주제가처럼 불리며 '시대의 응원가'가 됐다.
![[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 송대관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입관은 오는 8일 오후 1시 30분, 발인은 9일 오전 11시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2025.02.07.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2/07/NISI20250207_0020686624_web.jpg?rnd=20250207165409)
[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 송대관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입관은 오는 8일 오후 1시 30분, 발인은 9일 오전 11시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2025.02.07. [email protected]
이후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1980년대엔 미국에서 살았다. 전두환 정권 시대인 지라, 혹자는 고인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이 아니랴고 추정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어려움을 겪던 송대관은 샌드위치 가게,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며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그러다 향수병이 도져 귀국해 '차 표 한장' '유행가' 등의 히트곡을 내며 트로트 4대 천왕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010년대엔 또 그의 삶에서 해가 졌다. 2013년 아내의 부동산 등의 투자 실패로 사기 혐의에 휩싸인 것이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500억원대 재산이 은행 등에 넘어갔고 280억원 대의 빚을 지기도 했다. 이후 고령의 나이에도 행사장 등을 누비며 변제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기도 한 송대관은 가수들의 권익과 위상 정립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가수 남진에 이어 2008년 대한가수협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송대관은 컨디션 난조로 최근 병원을 찾았다가 치료 도중 심장마비로 지난 7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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