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담 간호사' 제도, 왜 필요한가
김정미 복지부 진료지원업무 제도화 자문단 위원
![[서울=뉴시스]김정미 보건복지부 진료지원업무 제도화 자문단 위원. (사진= 본인 제공) 2025.04.28.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4/28/NISI20250428_0001829559_web.jpg?rnd=20250428134037)
[서울=뉴시스]김정미 보건복지부 진료지원업무 제도화 자문단 위원. (사진= 본인 제공) 2025.04.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간호법 하위 법령 제정이 본격화되면서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전공의 단체를 비롯한 일부 의사 단체는 물론 간호계 내부에서도 ‘전담 간호사’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졸속 추진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간호사가 이용 당하고 환자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간호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제도의 본질을 간과한 해석이라는 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간호사들이 의사의 업무 일부를 비공식적으로 수행해 왔다.
문제는 이들이 명확한 자격 기준이나 체계적인 교육 없이, 법적 보호조차 없이 의료 시스템의 빈틈을 메워왔다는 점이다. 오히려 무규율 상태에서 이뤄진 진료지원 업무야말로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간호법은 이러한 현실을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간호사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여 환자 안전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논란의 중심에 선 전담 간호사 제도는 간호사에게 자율적 진료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아니다. 일정한 임상 경력과 교육 과정을 이수한 간호사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진료를 지원하도록 하는 체계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오히려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분별한 업무 수행이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국제적 인식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 간호협회가 제안한 400시간 교육 과정과 자체 자격시험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시작점이다. 미흡한 점은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며, 초기 단계의 불완전성을 이유로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현실 개선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부 전공의 단체 등에서는 간호사에게 의사의 책무와 책임이 전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호사들이 오랫동안 공식적 권한이나 보호 없이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해 왔고,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개인이 감당해 왔다. 이제 역할과 책임을 명문화하려 하자 ‘책임 전가’라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환자 안전은 불명확한 책임 구조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자격을 갖춘 인력이 정당한 지위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서 출발한다.
간호계 일부에서는 전담 간호사 제도가 간호사의 자긍심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간호사의 자긍심은 단순한 보조자 역할에 머무를 때가 아니라, 자율성과 전문성을 갖춘 책임 있는 의료 인력으로 인정받을 때 형성된다. 간호법은 간호사를 도구화 하려는 것이 아니라 권한 없는 책임만을 떠안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간호계 내부의 다양한 의견은 존중돼야 한다. 일부 단체가 간호협회의 추진 방식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도 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실행 방안에 대한 민주적 논의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근거 있는 비판과 생산적 보완이지, 감정적 제도 폐기 요구는 아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환자 중심의 의료 시스템 개편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각각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협력하는 구조가 절실하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독자적 진료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계 내부에서 오랫동안 회피돼온 진료지원 업무를 제도화해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간호법은 의료 체계의 붕괴를 초래하는 법이 아니다. 오히려 의료 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논의는 이어져야 하지만, 그 방향은 분명하다. 더 이상 책임 없는 권위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모두가 책임지는 의료 체계를 위해, 간호사에게 제도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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