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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폐암 원인, 책임 있어"vs 제조사 "흡연은 자유 의지"

등록 2025.05.22 21:11:58수정 2025.05.22 2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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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건보공단이 담배제조사들 상대로 낸 손배소

정기석 "수술 전날 흡연하는 환자들 봐…중독성 심각"

담배회사 측 "자유의지로 끊을 수 있듯 담배 탓 아냐"

재판부, 선고기일 추후 지정키로…적어도 8월 말 이후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지난 3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 흡연구역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2025.05.22. jini@newsis.com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지난 3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 흡연구역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2025.05.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현 기자 = 10년 넘게 이어지는 이른바 '담배 소송' 항소심 최종 변론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흡연의 유해성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촉구했다. 제조사 측은 흡연은 자유 의지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서울고법 민사6-1부(부장판사 박해빈·권순민·이경훈)는 22일 오후 건보공단이 담배 제조사 KT&G·한국필립모리스·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항소심 최종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2심 소송의 12번째 변론인 이날 직접 출석한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병원에서) 수술 받기 전날 할 수 없이 담배를 피는 환자들을 보면서 담배의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절절히 느껴 왔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1년에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국민 6만명이 숨진다는 지난 2019년 질병관리청(질병청) 자료를 언급하며 "중장기적 인구 감소 시기에 미래 세대를 보호해야 한다. 의학적 근거를 고려한 판결을 내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달라"고 주장했다.

건보공단과 연세대 보건대학원이 2004~2013년 폐암·후두암 확진자 13만6965명을 분석한 연구를 언급하며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은 분명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해당 질환에 따른 유전적 위험도(유전위험점수)가 동일하더라도 총 흡연 기간이 30년 이상·20갑년(20년 이상을 하루 한 갑씩 흡연) 이상인 흡연자의 경우 비흡연자보다 소세포폐암 발생 위험이 54.59배 높았다는 내용이다.

정 이사장은 미국 필립모리스가 전액 재정을 대 지원한 금연 관련 재단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한국에서 폐암 사망의 85.6%는 담배 때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건보공단 측은 '흡연으로 인해 폐암 등 비특이성 질환이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 주력했다.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흡연 기간이 30년 이상·20갑년 이상이면서 폐암·후두암으로 진단 받은 환자 3456명에 대해 지급한 급여비 약 533억원에 대해 이 사건 담배 제조자들이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회사 상대 약 533억원 규모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최종 변론 출석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5.22.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담배회사 상대 약 533억원 규모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최종 변론 출석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5.22. [email protected]

건보공단 측은 해당 환자들이 흡연을 시작했을 1960년대에는 우리 사회에서 담배의 구체적인 위험성을 알기도 어려웠다며 '흡연은 자유 의지'라는 주장도 반박했다.

건보공단 측은 "(이들 중) 흡연 외 폐암 위험인자를 보유하지 않은 사람은 1467명에 달하고, 심층분석을 실시한 결과 다른 환경 요인에 노출되지 않은 게 확인된다"며 "당시 사회적 인식도 흡연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손해배상 청구 인용을 재판부에 촉구했다.

반면 담배 제조사 측은 의학적인 관점을 다투는 것은 아니라며 흡연자가 스스로의 의지로 금연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닌 만큼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KT&G 측 변호인은 "의존성 유무를 의학적으로 다투는 것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흡연이 자유의지를 상실 시킬 정도는 아니지 않나"라며 "중단하고 재개하는 것은 흡연자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력 때문이지 약물효과 탓이 아니라는 게 그간 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국필립모리스 측 변호인은 "폐암 환자 42.5%는 4개월 이내, 32.5%는 3개월 내 금연에 성공했다"며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담배 제조사 측은 건보공단이 변론에서 제시한 의견서와 연구 결과를 두고도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KT&G 측 변호인은 "전문가들이 의견을 낸 것은 담배소송을 주제로 건보공단 이사장이 써 달라 해서 써준 거라 볼 수밖에 없다"며 "학회에서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 타당하고 존중하지만, 피우면 폐암에 걸린다는 식의 일방적 내용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피고 회사는 위법성이 없다는 걸 대법원에서 여러 차례 판결 받았지만, 원고(건보공단)는 개별 판결이 나오자 소송을 내 금연운동의 일환으로 활용한다"며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원고 측의 일방적 주장이 반복되거나 불법 제조사로 비춰지는 것을 벗어나 정상적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원고 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촉구했다.

[대전=뉴시스] 지난 2020년 11월 20일 대전 대덕구 신탄진 KT&G 담배 제조 공장에서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5.05.22. photo@newsis.com

[대전=뉴시스] 지난 2020년 11월 20일 대전 대덕구 신탄진 KT&G 담배 제조 공장에서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5.05.22. [email protected]

제조사 변호인은 "원고(건보공단)는 돈을 쓰면 다 손해가 되냐"면서 보험급여 지출은 보험 제도에 따른 지출일 뿐 배상 책임이 될 손해로 간주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건보공단이 청구한 암 환자들의 보험급여액은 담배회사들의 위법행위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라 보험 가입에 따른 보험관계에 따라 지출된 것이라는 1심 취지와 같다.

건보공단 측은 담뱃갑에 경고문구가 삽입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지만 그 마저도 보기 어려운 작은 문구로 돼 있거나, '마일드' 등의 표현을 써 결함 있는 담배를 제조·판매해 오면서 소비자들을 기망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KT&G 측 변호인은 "담배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기호품으로 수용되고 있다"며 "자연스러운 담배(잎)에 대해 (제조사가) 인위적 가공이나 공정을 통해 제품의 위해성을 높였다 볼 만한 여지는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날로 변론을 종결했으나 선고기일을 따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담배 제조사 측의 추가 참고서면 제출 요청을 받아들여 건보공단 측의 반박서면 제출 기한까지 고려해 총 3개월의 기간을 부여했다.

이에 판결은 적어도 8월 말 이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이번 소송을 냈다. 담배회사들이 담배의 중독성을 은폐한 채 이를 수입·제조·판매하면서 폐암 등 환자가 발생해 보험급여가 더 지출됐다는 취지다. 1심은 소송 6년여만인 지난 2020년 11월 건보공단 측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폐암 등은 흡연 외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했다고 하더라도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 손해배상을 구할 권리는 없다는 취지였다. 건보공단은 이에 불복해 항소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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