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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회화 사이 ‘이정진’…한지에 새긴 ‘Unseen’·‘Thing’

등록 2026.04.14 14:59:52수정 2026.04.14 18: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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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갤러리서 6년 만의 개인전

아이슬란드 신작 ‘Unseen’ 첫 공개

명상에서 출발한 ‘Thing’ 시리즈도 함께 선봬

Jungjin Lee, Unseen #55, 2024 Archival pigment print, 109 x 152 cm, Ed. 3+2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재판매 및 DB 금지

Jungjin Lee, Unseen #55, 2024 Archival pigment print, 109 x 152 cm, Ed. 3+2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저도 헷갈립니다.”

사진인지 회화인지 묻자 이정진은 웃으며 답했다. 한지 위에 인화된 그의 작업은 사진이면서도 회화처럼 보인다.

그는 “사진을 가지고 시를 쓴다고 생각해본다”며 “경계에 있는 상태 자체를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명확한 규정 대신 ‘사이’를 택한 그의 작업은 이미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6년 만에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신작 ‘Unseen’ 시리즈가 한국 최초로 공개됐다. 아이슬란드의 격렬하고 원초적인 자연을 담아낸 이 작업은 더 가디언, FT 매거진 등 해외 언론에서 “내면의 울림을 담아낸 풍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PKM갤러리 이정진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PKM갤러리 이정진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아이슬란드 작업은 기존 사막 시리즈와 대비된다. 그는 이를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칠고 다이나믹한 자연”으로 기억했다.

“사막에서는 고요함 속에서 내면으로 침잠했다면, 아이슬란드에서는 경외와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 같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거친 파도, 역동적인 공기가 지배하는 장소였다. 그는 이 낯선 환경 속에서 자연이 자신을 통과하는 감각을 이미지로 끌어냈다.

이 극단적인 조건은 작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자연의 강한 에너지는 화면의 대비와 밀도를 끌어올렸고, 시선은 내부가 아닌 외부로 향했다.
Jungjin Lee Unseen #62 2024 Archival pigment print 109 x 152 cm Ed. 3+2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재판매 및 DB 금지

Jungjin Lee  Unseen #62
2024  Archival pigment print
109 x 152 cm Ed. 3+2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재판매 및 DB 금지



‘Unseen’ 속 검은 화산암과 흰 눈, 파도와 바위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연과 마주하며 형성된 내면의 풍경을 드러낸다. 수평선은 흐릿하게 번지고, 바다와 육지는 구분되지만 화면은 명확한 재현을 거부한다.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인상이다.

그에게 풍경은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을 매개하는 장치다. 인간의 흔적을 지운 자연은 외부 세계의 묘사가 아니라, 자신을 통과한 감각의 결과로 남는다.
Installation view of Jungjin Lee_Unseen,Thing *재판매 및 DB 금지

Installation view of Jungjin Lee_Unseen,Thing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는 아이슬란드 풍경을 다룬 ‘Unseen’과 사물을 다룬 ‘Thing’ 시리즈로 구성됐다. 서로 다른 두 작업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

도자기, 숟가락, 나뭇잎이 둥실 떠 있는 듯한 ‘Thing’ 시리즈는 명상에서 출발했다. 대상은 기능과 이름, 의미를 벗겨낸 뒤 비로소 드러난다.
그는 이를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라 말했다. 그 과정 끝에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기운, 즉 존재의 흔적이다.

“숟가락을 숟가락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상이 아니라, 나와 만나는 지점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초기 다큐멘터리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20대 후반 울릉도에서 ‘심마니’처럼 살아가던 노인을 1년간 기록했지만, 작업을 정리하며 예상과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그 할아버지 사진이 없는 거예요. 전부 제 셀프 포트레이트 같았어요.”

타인을 기록한다고 믿었던 사진은 결국 자신의 시선과 감정이 투영된 결과였다. 이후 그는 더 이상 사람을 찍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카메라를 드는 게 불편했어요. 영혼을 훔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Installation view of Jungjin Lee_Unseen,Thing *재판매 및 DB 금지

Installation view of Jungjin Lee_Unseen,Thing *재판매 및 DB 금지




이정진의 작업은 물질성과도 깊이 연결된다. 한지에 감광 유제를 직접 발라 인화하는 방식은 이미지가 종이 표면이 아닌 내부로 스며들게 한다. 붓질의 흔적과 종이의 질감은 사진을 회화로 전환시키는 촉매다.

작업의 핵심은 촬영 이후에 있다. 찍기보다 인화가 중요하다. 아이슬란드 촬영은 한 달 만에 끝났지만, 프린트 제작에는 약 10개월이 걸렸다.

1989년부터 이어온 전통 한지 인화는 지금도 그의 작업을 관통한다. 그는 한지가 물속에서도 쉽게 풀어지지 않고, 감광 유제가 종이 깊숙이 스며들어 분리되지 않는 특성에 주목했다. 이러한 방식은 사진 매체의 물질적 가능성을 확장한 시도로, 그의 작업이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배경이 됐다.

“감광 유제를 발랐을 때 분리가 안 되고 깊이 올라와서 내 작업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인화 방식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사유와 명상을 담는 작업 과정이기도 하다.

이미지는 표면이 아니라 종이 깊숙이 배어든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에 가깝다. 정신성이 깃든 노동집약적 과정 속에서 에디션은 3~5개로 제한된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게 하는 힘, 그걸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선 작업을 35년간 이어온 그는 “앞으로는 그 경계가 더 허물어지길 바란다”며 “사진적 요소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이미지.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깊이와 진실에 도달하려는 시도다. 

오는 25일 오후 2시 국립현대미술관 송수정 학예사의 진행으로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이정진 작가. PKM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정진 작가.  PKM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가 이정진은?

1984년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한 뒤 1991년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잡지 ‘샘이 깊은 물’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다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사막’(1990~1995) 시리즈를 기점으로 전통 한지에 감광 유제를 직접 도포해 인화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구축했다.

이후 프레데릭 브레너가 기획한 ‘This Place’ 프로젝트에 토마스 스트루트, 스테판 쇼어 등과 함께 유일한 아시아 작가로 참여하며 국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6년 스위스 빈터투어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으며, 해당 전시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기관에 소장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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