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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이명세와 12월3일 그리고 체험의 다큐

등록 2026.04.17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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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연출 다큐 '란12.3' 오는 22일 개봉

"그날의 충격과 공포 체험하는 다큐 원해"

"판단과 메시지 담지 않아…그저 느끼길"

인터뷰·내레이션 배제 "그냥 하고 싶었다"

"시네마틱·이모셔널·드라마틱·유머 편집"

"서정적이며 시적인 다큐 되길 원했다"

[집중 인터뷰]이명세와 12월3일 그리고 체험의 다큐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12·3 내란 사태에 관한 영화가 나올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처럼 충격과 공포를 안기는 동시에 황당무계하고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사건이 2024년에 벌어질 줄 아무도 몰랐고, 이건 어쩌면 실시간 영화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사건을 다루는 사람이 이명세(69) 감독이 될 거라는 건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영화 문법을 역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고집, 이른바 영상시(詩)를 향한 집요한 시도. 그는 다큐멘터리와 어울리는 예술가가 아닌 것 같았다.

이런 이 감독이 계엄을 소재로 다큐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래서 우려와 기대가 함께 있었다. 그건 한국영화 내에서 이른바 정치다큐가 정치적 도구가 된 최근 경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한국영화의 소중한 자산이 극단화 한 정치에 휘둘릴지도 모른다는 근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세라면 흔들림 없이 무언가 새로운 다큐를 내놓을 거라는 바람이 공존했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을 보면 이 감독과 그의 첫 번째 다큐에 관한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이명세스럽다. 인터뷰와 내레이션을 완전히 배제한 채 서사를 끌고 가겠다는 결정이 이명세스럽고, 제보 영상과 뉴스 영상과 CCTV영상과 애니메이션을 뒤섞는 형식이 이명세스럽고, 메시지보단 느낌에 집중한 편집이 이명세스럽고, 엄숙함 속에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가 이명세스럽다.

지난 13일 만난 이 감독은 "이 작품에 나의 판단을 담지 않으려고 했다. 그저 그때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느낀 공포와 불안 그리고 황당함을 담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영화 총괄 프로듀서인 김어준씨가 영화의 방향에 대해 자신에게 어떤 요청도 하지 않았다고 하며 "디렉터스 컷을 유지했다"고 했다.
[집중 인터뷰]이명세와 12월3일 그리고 체험의 다큐


-12월3일 현장엔 가지 못 했다고 들었다. 계엄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

"그 날 오후 11시 정도에 소식을 들었다. 밤에 어떤 영화 시사회에 들어가느라 전화기를 꺼놓은 상태였다. 시사회가 끝나도 뒷풀이 가려고 전화기를 켰는데, 문자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지더라. 멍했다. 잘못 들은 거 아닌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당시 상황이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멍했다. 바로 여의도로 가려고 했는데 옷을 얇게 입어서 집에 돌아가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갈 생각이었다. 집에 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안 잡히더라. 그때 이미 12시가 넘은 상황이었고, 국회가 계엄 해제 가결로 향해 가고 있었다. 나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집에서 뉴스를 보면서 계엄이 해제되길 기다렸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 돼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떨면서 잤다."

-경황이 없었겠지만, 이 상황을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순간 해본 적은 없었나.

"그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영화가 무얼 할 수 있는 것인가에 관해 내게 계속 물었다. 나에겐, 우리에겐 트라우마가 있다. 옛 기억에 관한 트라우마 말이다. 살아 남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부끄러움 등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영화로 무얼 할 수 있나, 자괴감이 컸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군인들이 뉴스공장 건물을 올려다 보는 영상을 보게 됐다. 그 무심한 얼굴이 담긴 하이앵글에서 내가 만약 이걸로 영화를 만든다면 저 장면은 하나의 트레일러가 될 거라고 봤다."

-왜 다큐멘터리였나. 당신은 앞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적이 없고, 정치적 사건을 직접 다룬 적도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극영화를 생각하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투자가 잘 안 되는 감독이지 않나.(웃음) 누군가 다큐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니까 투자가 잘 안 되는 사람으로서 덥썩 문 거다."

-정확히 언제 제안 받았고, 언제부터 작업을 시작했나.

"나도 그걸 명확히 하고 싶어서 일기장을 뒤져보기도 했는데, 시점이 조금 애매하다. 지난해 3월 초였던 건 기억이 난다. 그때 제안을 받았고, 영상 자료가 워낙에 많으니까 편집기사가 2명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편집기사 포함해서 함께 작업할 사람을 모은 뒤에 6월께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총괄 프로듀서로 김어준씨가 참여했다. 김어준씨가 이 작품의 방향에 대해 얘기한 건 없었나.

"전혀 없었다. 함께하자고 해서 '오케이 해봅시다'라고 하고 작업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다. 그 외에 요구 사항은 없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게 있다. 김어준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희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어준과 이 작품의 의미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최근 많은 정치 다큐가 정치적 편향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란 12.3'엔 정치적 편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 욕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명세라는 이름을 거론하며 근거 없는 비난을 쏟아낼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난 워낙에 많이 씹혀본 감독이다. '개그맨'(1989)이나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가 나왔을 때만 해도 무슨 이런 영화를 만들었냐고 욕하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웃음) '형사Duelist'(2005)나 'M'(2007) 때는 서사가 없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엄청나게 욕했다. 물론 영화를 향한 내 진정성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걸 좋게 봐주는 이들도 있긴 했으나 난 언제나 0점과 10점 둘 중 하나를 오가는 감독이었다.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나의 판단을 담지 않으려고 했다. 그저 그때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느낀 공포와 불안 그리고 황당함을 담으려고 했을 뿐이다."

-12월3일에 계엄이 있고 나서 지난 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작품은 일련의 사건들 중 딱 12월3일과 그날에서 이어지는 4일 새벽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 일에 관한 법적 판단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역사적 판단은 내려지진 않았다고 본다. 그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난 바로 그 날에 집중하고 싶었다. 내 직감 같은 게 있다. 이 작품은 1시간 20분짜리로 만들어질 거라는 것. 그렇다면 난 그 시간 안에서 당시의 상황을 관객이 다시 체험하길 바랐다. 당시 여의도 앞에 있던 사람들, TV로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 국회 안에서 계엄해제를 위해 군경을 막아내던 사람들 그런 상황 전체를 관객이 느끼길 바랐다. 난 메시지 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영화는 다 그랬다. 그저 느끼길 바라는 거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인터뷰가 없다는 거다. 다큐에서 인터뷰는 아주 흔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장치이기도 하다. 인터뷰라는 건 증언의 효과가 있으니까 말이다. 인터뷰를 왜 담지 않았나. 이유가 있나.

"영화를 만들 때 난 일단 던지고 본다. 가령 'M'을 만들 땐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공포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정했고, 그렇게 밀어붙였다. 이번 영화엔 인터뷰는 물론 내레이션도 없다.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한 거다. 난 삐딱한 사람이다. 남들이 하는 건 하고 싶지 않다. 새롭지 않다면 이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나, 새롭지 않다면 이 영화가 왜 필요한가, 이게 항상 내게 던지는 물음이다. 그리고 도전하는 거다. 글쎄, 만약에 이 작품에 큰 투자가 들어와서 나를 흔들어댔다면 흔들릴 수도 있었을 거다.(웃음)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꿋꿋하게 디렉터스컷을 유지했다."
[집중 인터뷰]이명세와 12월3일 그리고 체험의 다큐


-당신의 영화는 곧 제약에서 탄생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럴 것이다. 제약과 마감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동력일 거다.(웃음)"

-영화가 그렇듯이 다큐의 핵심도 역시 편집이라고 본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 워낙에 많은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편집 기준이 더 중요했을 것 같다.

"딱 4가지가 있었다. C·E·D·H다. 난 이걸 '케데헌'이라고 부른다.(웃음) C는 시네마틱이다. E는 이모셔널이다. D는 드라마틱이고, H는 유머다. 이 4가지를 기조로 서정적이며 시적인 분위기를 가져가려고 했다."

-당신이 극영화에서 시적인 느낌을 추구해왔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게 해주는 충분한 사례들이 있다. 다만 다큐가 시적이라는 건 생경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에선 어떻게 시적인 느낌을 내려고 했나.

"나를 형식주의자이고 스타일리스트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난 그저 이 작품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그 작품에 맞게 연출할 뿐이다. 가령 '첫사랑'(1993)을 만들 땐 첫사랑이란 뭘까, 첫사랑이란 시간처럼 흐르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카메라를 흐르게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시적이란 게 대단한 게 아니다. 그건 순간의 느낌이다. 국회의장의 위치가 노출될까봐 전력질주하며 국회 모든 방의 스위치를 켜던 이의 깨진 손톱, 중년여성이 군인들에게 '얘들아 너희 이러면 안 돼'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의 느낌, 장갑차를 막아선 사람들의 형체. 시적이라는 건 아름다운 화면이 아니다. 순간 느껴지는 감정이다."

-C·E·D·H에서 C·E·D는 이해가 된다. H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엄중한 사안에 관해 얘기하면서 유머를 넣는 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웃기려는 유머가 아니다. 엄숙하고 진지한 상황에서도 코미디는 늘 있기 마련 아닌가. 계엄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서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낸 보좌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막 살 걸 그랬어요 썅'이라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이런 유머는 나온다는 거다. 계엄이 발표된 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대통령 비서의 모습은 어떤가. 군인들을 막기 위해 국회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는 장면 속 그 계단에 '계단을 사용하면 건강해진다'는 문구가 있다. 삶에는 이렇게 유머가 곳곳에 있다. 말하자면 블랙코미디일 것이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영상을 봤을 것이다. 뉴스 등에서 보지 못한 영상도 봤을 거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이거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뭐가 있었나. 또 이걸 어떻게 이 작품에 녹여내려고 했나.

"시민 한 분이 군인의 철모를 손으로 돌려버리는 장면이 있다. 밀치거나 막아서는 게 아니라 철모를 돌린다. 그 행동에서 무언가 순간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 불안과 공포를 어쩔 줄 몰라 철모를 돌린 게 아닐까. 이 장면에 스톱모션을 넣을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웃음) 앞서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바로 그런 행위에서 느껴지는 공포를 이 영화에 담아내려고 했다."

-첫 다큐였다. 또 다큐를 만들 생각이 있나.

"또 하게 된다면 할 거다. 안 할 이유는 없다. 다큐와 극영화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게 됐다. 난 극영화를 만들 때도 일단 취재를 하고, 취재한 내용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이걸 얼마나 극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번 다큐도 마찬가지였다. 영상과 영상을 가장 말이 되게 붙여놓는 것, 그건 다큐와 극영화가 다르지 않다. 이번 다큐는 철저하게 시간 순서대로 배열을 했다. 이건 내가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과 비슷하기도 했다. 난 시나리오의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쓴다.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해서 특정 장면을 먼저 쓰는 경우는 없다. 자음과 모음을 하나 씩 골라가며 글을 쓴다. 이 다큐 역시 영상 하나 하나를 고심 끝에 골라가며 이야기를 완성했다."

-다큐와 별개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다. 당신은 한국영화 어른이기도 하지 않나. 최근 한국영화가 침체기를 겪고 있다고들 한다. 난 한국영화의 위기가 단순히 관객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국영화가 개성을 잃어가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든 연출가로서 해줄 말이 있을 것 같다.

"어른이라고 하지 마라. 난 다큐 신인이다.(웃음) 예술을 삶과 완전히 분리시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생활도 중요하니까. 하지만 영화를 하겠다고,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돈을 많이 벌어서 빌딩을 사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영화를 하려고, 예술을 해보려고 이걸 하는 거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새롭지 않다면 왜 해냐 하는 거냐고. 새롭게, 다르게 보는 게 예술 아닌가. 난 후배들에게도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주식 투자를 하는 게 낫다.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그 외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걸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번 작품도 있고 2024년 '더 킬러스'도 있었다. 당신은 계속해서 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의 장편극영화를 기다리는 팬들이 있다. 차기작 계획은 있나.

"지금 생각하는 작품이 2편 있다. 하나는 뱀파이어 영화이고, 하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편이다. 당장에 차기작이 뭐가 될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일단 '란 12.3'이 개봉도 안 한 상태이고, 어떤 결과를 낼지도 지켜봐야 한다.(웃음) 잘 돼야 한다. 장항준 감독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기록을 넘어서는 게 내 목표다.(웃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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