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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은 죽어도 꽃은 살았다"…비결은 유전자 '복사기'[사이언스 PICK]

등록 2026.05.17 08:00:00수정 2026.05.17 0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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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연구팀, 470종 식물 분석해 '전체 유전체 복제(WGD)' 기전 규명

추위와 온난화 등 극한 스트레스 상황서 유전자 늘려 생존력 극대화

현 기후 위기 대응 실마리…다윈 진화론 새로 쓸 '능동적 진화' 확인

학계에 따르면 벨기에 겐트대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지구 역사상 가장 극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속씨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핵심 기전으로 '전체 유전체 복제(WGD)'를 지목했다. 사진은 식물 관련 참고용 이미지. (사진=유토이미지) *재판매 및 DB 금지

학계에 따르면 벨기에 겐트대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지구 역사상 가장 극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속씨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핵심 기전으로 '전체 유전체 복제(WGD)'를 지목했다. 사진은 식물 관련 참고용 이미지. (사진=유토이미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6600만 년 전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했다. 공룡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 3분의 2가 사라졌다. 암흑과 추위가 지구를 덮쳤다. 하지만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학계가 이 기적 같은 생존 비결을 찾아냈다. 식물 특유의 '유전자 복제' 능력이 핵심이었다.

위기 때마다 '복사기' 돌린 식물들

학계에 따르면 벨기에 겐트대 등 공동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셀(Cell)'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속씨식물이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전체 유전체 복제(WGD)'였다. 식물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스스로 유전자 설계도를 두 배로 늘려 생존력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식물은 때때로 무작위적인 변이를 통해 자신의 염색체 세트를 하나 더 갖게 되는 '배수체(Polyploid)' 상태가 된다. 평상시 유전체 크기가 커지는 것은 영양분이 더 많이 필요하고 유해한 돌연변이가 발생할 위험을 높이는 일종의 '비용'을 수반하게 된다.

하지만 급격한 가뭄이나 고온 등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늘어난 유전 정보가 새로운 기능을 진화시키는 원천이 되어 식물이 고난을 견딜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행성 충돌보다 무서웠던 '온난화'

연구팀은 470종에 달하는 속씨식물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132개의 고대 유전자 복제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추적했다. 분석 결과 유전자 복제는 아무 때나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지구의 주요 환경 격변기와 정확히 맞물렸다.

소행성 충돌로 인한 대멸종 시기는 물론이고, 지구가 급격히 차가워졌던 냉각기도 포함됐다. 특히 5600만 년 전 지구 기온이 5~9도 급등했던 '최대 온난기' 때도 식물은 유전체를 복제하며 살아남았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흔히 대멸종의 대명사로 꼽는 6600만년 전 소행성 충돌보다, 7300만년 전의 냉각기나 이후의 온난기(PETM)가 식물의 유전자 구조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경쟁 관계에 있던 식물들이 대거 사라진 빈자리를 '유전자 복제'에 성공한 식물들이 빠르게 채웠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수천만 년 전의 급격한 온난화는 지금 우리가 겪는 기후 변화와 매우 닮았다. 식물들이 과거처럼 유전적 잠재력을 끌어올려 구조적인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희경 에든버러대 식물분자생물학과 왕립학회 유니버시티리서치펠로우는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에 이번 논문을 통해 공룡 멸종 시기와 배수체 증가가 겹쳤다는 기존 학설을 넘어, 실제로는 해양 무산소 사건이나 최대온난기 시기에 유전자 복제가 더 활발했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안 펠로우는 "현재의 기후 변화 조건이 과거 배수체가 급증했던 시기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 결과가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며 "다만 배수체가 왜 극한 환경에서 생존에 더 유리한지, 세포 안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가 전통적인 다윈주의의 '점진적 변화'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생명 진화의 능동적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생명이 위기 상황에서 발현할 수 있는 재구성 잠재력을 이미 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거대 데이터 연구는 미래에 다윈의 진화론을 새로 쓰거나 교체해야 할 수도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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