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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어요' 작곡가 강승식 별세…창작·제작 경계 넘나든 숨은 거목

등록 2026.07.19 20:38:06

[서울=뉴시스] 강승식.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7.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승식.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7.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70년대 대중음악계에서 활약한 싱어송라이터 겸 작곡가 강승식이 별세했다. 향년 72세.

19일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등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새벽 저혈압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눈을 감았다.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학창 시절 예체능 다방면에서 재능을 나타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김황호, 조영증 등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빈 축구선수였고, 세계 챔피언 홍수환의 스파링 파트너로 나설 만큼 촉망받는 아마추어 복싱선수이기도 했다.

음악적 유전자는 가족에게도 흐른다. 번안곡 '샹제리제'로 잘 알려진 가수 선우성이 그의 친누나다.

고인의 음악 인생은 1973년 명소 '쉘부르'를 비롯한 명동 다운타운 무대에서 통기타를 잡으며 본격화됐다. 이듬해인 1974년 데뷔곡 '하루 이틀 사흘'을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내 마음 잊지마'(1979), '황혼'(1982) 등을 가창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서울=뉴시스] 강승식 음반들.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7.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승식 음반들.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7.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음악적 정점은 작곡가로서의 활약에서 도드라졌다. 특히 가수 장은숙의 메가 히트곡 '춤을 추어요'(1978)와 '당신의 첫사랑'(1978)을 빚어내며 당대 가요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떠올랐다.

지명길 작사가가 노랫말을 붙이고 고인이 멜로디를 입힌 이 곡들은 장은숙 특유의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를 극대화하며 그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박성서 평론가는 고인에 대해 "무대 위 화려함에 안주하지 않고, 창작자와 제작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 가요의 지평을 넓힌 인물"로 기억했다.

실제로 고인은 1980년대 중반 '모노 기획(리버 프로덕션)'을 설립해 박상규의 '역마'(1985), 강영숙의 '빈 가슴으로'(1986) 등 완성도 높은 음반을 제작하며 심미안을 발휘했다.
[서울=뉴시스] 강승식.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7.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승식. (사진 = 박성서 평론가 제공) 2026.07.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삶의 굴곡 속에서도 음악을 향한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LA 한인방송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교민들의 애환을 달랬으나, 위암 시한부 판정을 받고 "고국 땅에 묻히고 싶다"며 2003년 귀국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식사가 어려워지자 청정 지역인 전주와 완주(삼례)로 거처를 옮겨 20여 년간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지역 음악 발전을 향한 헌신은 멈추지 않았다. 대한가수협회 전북지회장을 오래 역임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사단법인 전북가수협회를 창설해 타계 직전까지 이끌었다. 영호남문화교류협회를 조직해 영호남 음악인들의 가교 역할에도 앞장섰다. 주변 음악인들은 고인을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고 후배들을 챙기던 따뜻한 거목으로 회고했다고 박 평론가는 특기했다.

유족으로는 노래 강사 출신 가수인 부인 양미경 씨와 3남1녀가 있다. 빈소는 전북 전주 금성장례식장 VIP 40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1일 오전 9시다. 063-276-4444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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