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 鄧의 ‘중국특색 사회주의 경제’ 다진 ‘상하이의 고르바초프’
등록 2026.08.13 12:06:59
明 청렴관리 海瑞의 “내 관도 준비하라” 좌우명 반부패 개혁 추진
푸둥 개발·WTO 가입·국유기업 개혁·아시아 금융위기 극복 등 주도
‘세계의 공장’ 과속 성장속 부의 집중·빈부 격차 확대 등 명암도
![[베이징=AP/뉴시스]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2000년 3월15일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손짓을 하고 있다. 2026.08.13.](https://img1.newsis.com/2026/08/12/NISI20260812_0001494008_web.jpg?rnd=20260812192923)
[베이징=AP/뉴시스]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2000년 3월15일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손짓을 하고 있다. 2026.08.13.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12일 98세를 일기로 별세한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외부에 널리 알려진 것은 그가 상하이에서 근무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였다.
상하이에서 공산당 부서기, 시장, 당서기 등을 거치는 기간 구소련에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총서기와 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로 서방의 찬사를 받던 때였다.
주룽지에게 당시 서방 언론이 붙인 별명 ‘상하이의 고르바초프’는 죽의 장막속에서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중국의 개혁 개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12일 주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 개혁 중 하나를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주룽지 전 총리가 장쩌민 전 주석의 10년 집권 시절 덩샤오핑이 설계한 개혁 개방을 중국에 정착시켰다.
과감한 국유기업 개혁과 이권 집단으로 전락한 군 개혁,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한 세계경제질서 편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中 WTO 가입, 鄧 개혁 개방 일단락
1979년 덩샤오핑 집권 이후 추진해온 ‘좌측 지시등(정치적 사회주의)을 켜고 우측으로 주행(경제적 시장주의)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중국의 WTO 가입으로 세계를 무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이 WTO에 가입할 때인 2005년부터 2013년까지 WTO 사무총장을 역임한 파스칼 라미는 “나는 항상 주룽지 총리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는 중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SCMP는 전했다.
라미 전 총장은 “그가 중국의 WTO 가입을 처리한 방식은 지정학과 지경학에 대한 탁월한 교훈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1999년 4월 중국 총리로서는 15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것은 WTO 가입 협상 때문이었다.
그는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뒤 “검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유라시아 그룹의 중국 지사장 왕단은 “주룽지는 중국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말했다고 SCMP는 전했다.
왕 지사장은 “중국에서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개혁이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의 정책들은 본질적으로 그가 1990년대에 주도했던 개혁을 강화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 주도
특히 1997년 몰아친 아시아 금융위기 중국의 대응을 이끌었다. 중국이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아 아시아 각 국의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룽지는 위안화 평가절하가 “중국의 상황을 개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국의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SCMP는 “그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엄청난 여파를 헤쳐나가는데 기여했으며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확고히 지켜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주룽지가 상하이 시장 시절 대표적인 업적은 푸둥 개발이다. 1990년 초 덩샤오핑에게 두 차례 푸둥 개발 구상을 보고해 그해 4월 푸둥 개발이 결정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1월 상하이 푸둥지구를 방문해 “상하이가 천지개벽했다”고 감탄했다.
明 해서를 모델로 한 반부패 척결과 국유기업 개혁 ‘철혈 재상’
그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청렴 관리 중 한 명인 명나라 해서(1514~1587)가 개혁의 사명을 띠고 중앙 부서로 발탁되어 가면서 했던 비슷한 말을 언급한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3월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그것이 지뢰밭이든 깊은 심연이든, 죽는 날까지 제 모든 삶과 에너지를 조국에 바치며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중국이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해 광범위한 국유기업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가 국유기업을 개혁할 때 기조는 ‘큰 것은 움켜쥐고 작은 것은 놓아준다(抓大放小)’는 것으로 과감한 공룡 국유기업의 정리였다.
주룽지는 국유기업은 물론 당시 중국 경제를 왜곡하는 인민해방군 내부의 대규모 부패에 대해서도 칼을 댔다.
덩샤오핑이 개혁 개방을 하면서 군부대에 ‘자립’을 허용하자 나타난 부패에 손을 댄 것이다.
당시 군대는 대형 밀수 등이 횡행하고 ‘인민해방군 주식회사’라고 불릴 정도로 부패의 온상이었다. 이같은 군의 부패에 맞서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했지만 경제 개혁 추진에 필수적인 것으로 봤다.
신화통신은 12일 부고에서 주 전 총리에 대해 “국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며, 공무원은 공복으로서 행동해야 하고,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하며,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특별한 특권을 추구하지 않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어려운 문제들을 책임감 있게 해결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소개했다.
개혁의 명암 “대량 실업과 빈부격차”
중국이 시장경제, 사실상 자본주의 경제로 변해가면서 빈부격차, 노동격차, 계층간 소득격차 등 부작용이 나타나는 변곡점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2003년 총리에서 은퇴한 두 별다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주룽지 전 총리는 중국이 공산당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던 2022년 3월 등장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기존의 권력 교체 방식을 깨려는 시진핑 주석을 비판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해 10월 당대회에서 총서기 3연임 등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원로들의 의견속에 주 전 총리가 언급됐다.
실제로 시 주석은 장쩌민, 후진타오 주석이 2번의 임기를 마치고 총서기와 국가주석 등 최고지도자 자리를 물러주던 관행과 헌법 등을 고쳐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앴다.
![[서울=뉴시스] 주룽지(朱鎔基) 전 중국 총리가 12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향년 9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중국 관영 매체가 전했다. 주 전 총리는 1990년대 국영기업 개혁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끌며 중국의 고도성장을 주도한 인물로, 거침없는 언변으로도 유명했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8/13/NISI20260813_0002211368_web.jpg?rnd=20260813112612)
[서울=뉴시스] 주룽지(朱鎔基) 전 중국 총리가 12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향년 9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중국 관영 매체가 전했다. 주 전 총리는 1990년대 국영기업 개혁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끌며 중국의 고도성장을 주도한 인물로, 거침없는 언변으로도 유명했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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