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없어도 작품은 완성된다…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솔 르윗 개인전
등록 2026.08.21 10:07:35수정 2026.08.21 10:38:24

월 드로잉 #784, 1995, 컬러 잉크 워시, 르윗 컬렉션 소장, 뉴욕 폴라 쿠퍼 갤러리 제공_사진-김경태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이디어가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
개념미술의 선구자 솔 르윗(1928~2007)이 남긴 유명한 명제다. 작가가 직접 손으로 작품을 완성하지 않아도 아이디어와 지시문이 있다면 작품은 계속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9년.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벽에서 그의 작품이 다시 만들어졌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오는 9월1일부터 솔 르윗 개인전 ‘Sol LeWitt: Open Structure’를 개최한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기획전으로, 월 드로잉과 구조물, 회화, 사진, 판화, 아카이브 등 45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솔 르윗의 대표 작업인 ‘월 드로잉(wall drawing)’이다.
월 드로잉은 완성된 작품을 운반해 벽에 거는 방식이 아니다. 솔 르윗이 남긴 지시문(instruction)을 토대로 전시가 열리는 공간에서 작품을 새롭게 제작한다. 전시가 끝나면 벽에서 사라지지만 같은 지시문을 따라 다른 장소에서 다시 구현할 수 있다.
악보는 하나지만 연주에 따라 음악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작품의 원본을 물질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둔 셈이다.

APMA MAKERS의 솔 르윗 전시 작업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월 드로잉 13점을 공개한다. 솔 르윗 재단 관계자들과 국내 대학·대학원 미술 실기 전공자 23명으로 구성된 ‘APMA MAKERS’가 제작에 참여했다. 이들은 작가가 남긴 지시문을 해석하고 벽 위에 선과 색을 반복해 쌓으며 작품을 완성했다.
1960년대 이후 개념미술을 이끈 솔 르윗은 작가 개인의 감정이나 손맛보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규칙, 시스템에 주목했다.
선과 격자, 정육면체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 요소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하고 변형했다. 같은 아이디어라도 장소와 실행자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그의 작업에서 중요하다.
1967년 발표한 ‘개념미술에 관한 단락들(Paragraphs on Conceptual Art)’에서 그는 “아이디어가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고 선언했다. 작품을 예술가가 직접 제작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개념을 뒤집은 것이다.
전시는 초기 구조물부터 후기 색채 작업까지 이어진다. ‘월 드로잉 #1164’, ‘미완결의 정육면체 6/20’, ‘연속 프로젝트 #1(ABCD)’, ‘월 드로잉 #784’, ‘월 드로잉 #882B’, ‘얼룩점 #3’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MOT)에서 시작된 순회전을 기반으로 한다. 솔 르윗 재단과 협력해 서울에서는 전시 규모와 구성을 확장했다.
전시는 2027년 2월28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1만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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