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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하리, 시는 곧 치유…그래서 '시치유학'

등록 2011.09.19 14:37:00수정 2016.12.27 22: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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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재훈 기자 = '詩 치유학, 지친 삶을 다독이는 언어의 연금술사'란 책을 내고 국내 최초의 시 치유사이자 한국문화예술교육원 시치유과 교수를 역임한 시인 김하리씨가 16일 오전 서울 뉴시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jhse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시와 사랑에 빠져보세요. 그러면 인생이 행복해질 겁니다."

 '시(詩) 치유학'을 펴낸 시 치유사 겸 시 낭송가, 연극배우인 시인 김하리씨는 "시를 쓰고, 시를 낭송하는 일은 나 자신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영혼을 열람하는 사랑 고백서와 같다"며 웃었다.

 시를 쓰고 읽고 느끼는 방법을 일러주며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직업인 '시치유사'는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서양은 물론 일본에서도 이미 보편화됐다.

 김씨는 국내 첫 시치유사다. 한국문화예술교육원 시치유과 교수도 거쳤다. '시치유학'의 부제이기도 한 '지친 삶을 다독이는 언어의 연금술사'로 통한다.

 "시는 은유적이면서도 창조적이라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 치유 효과가 빠르다"며 "시를 쓰는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도 고통과 슬픔, 외로움이 정화되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참 놀랍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서재훈 기자 = '詩 치유학, 지친 삶을 다독이는 언어의 연금술사'란 책을 내고 국내 최초의 시 치유사이자 한국문화예술교육원 시치유과 교수를 역임한 시인 김하리씨가 16일 오전 서울 뉴시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jhseo@newsis.com

 시는 세상에서 가장 절제되고 농축된 언어로 이뤄진다. 긴 글들을 걸러내고 불필요한 말을 잘라내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세심한 관찰력과 풍부한 감수성, 상상력 등도 키워낸다. 이를 통해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아, 상대방과 교감하고 소통하게 만든다. 즉, 공감의 능력을 북돋는 것이다.

 시치유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수도침례신학교를 나오고 음악·논술학원장을 지내기도 한 김씨는 다양한 경험만큼 공감대의 폭도 넓다.

 스스로를 '무데뽀'라고 표현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일단 몸과 마음을 던지고 보는 성향 탓에 상처도 많이 입었다. 그러나 덕분에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잘 보듬게 됐다.   

 "15년 전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때가 있었다. 고통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 주위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작고 사소한 말들은 모두 가시로 변해서 내 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길고 긴 어둡고 눅눅한 날들이었다. 참아낼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글로 풀어내는 것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289쪽)

【서울=뉴시스】서재훈 기자 = '詩 치유학, 지친 삶을 다독이는 언어의 연금술사'란 책을 내고 국내 최초의 시 치유사이자 한국문화예술교육원 시치유과 교수를 역임한 시인 김하리씨가 16일 오전 서울 뉴시스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jhseo@newsis.com

 "지난 날 상처가 많은 나 자신이 시를 쓰지 않았다면, 현재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며 "그 만큼 시치유의 중요성과 능력을 느끼게 됐다"는 고백이다.

 '시치유학'은 쉽게 읽히도록 썼다. "쉬우면 그 만큼 이해가 빠르고 더욱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강연을 다닐 때 청중이 노인이냐 어린이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그 나이대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쉽게 전달하려는 상황"들도 책으로 옮겼다.  

 대부분의 시는 직접 썼다. "내 시를, 내 목소리로 낭송하는 것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진솔하게 전달된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시를 심장에 비유했다. "시는 문학이라는 우주의 핵"이라는 생각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소설이나 수필을 쓸 수 있지만 소설이나 수필을 쓰는 이는 시를 못 쓴다"면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시를 읽는 과정이 정신적 치유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서울=뉴시스】김하리 글·김쾌민 그림<1>  파트1. 시 치유란?  ‘시(詩)’는 나의 애인(愛人)  “멘토(Mentor)가 있으세요?”  멘토가 유행어처럼 퍼지고 있다. 멘토란 그를 필요로 할 때 나타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대부 혹은 대모와도 같은 사람이다. 즉 상상력을 고취시키고 욕망을 자극하고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운을 북돋워 주는 사람을 뜻한다.   시가 나의 멘토(애인)가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다. 서울에서 부임해 오신 선생님께서 담임이 되고부터 내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사근사근한 서울 말씨가 퍽 인상적이셨던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남자선생님이셨다. 단상 바로 아래가 내 자리였고, 무척이나 나를 예뻐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틈만 나면 시에 자질이 있는 몇 명의 학생들을 개울가로 논으로 밭으로 데리고 나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시심을 키워주셨다.  시에 눈을 뜨고 처음으로 만난 시인은 공교롭게도 외국시인이었다. 푸쉬킨과 쟝 콕도. 어느 무더운 여름, 아버지를 따라 간 이발소 귀퉁이 벽에 걸린 낡고 퇴색된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는 시화였다. 아마 이발소를 개업할 때 누군가가 선물하였던 모양이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푸쉬킨’ 불혹의 나이를 지나고, 지천명의 나이가 지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초등하교 5학년 때 만났다. 여러 종류의 커피를 음미를 하게 한 후, 어떤 커피가 가장 맛있냐고 물으면 맨 처음 커피가 가장 맛있다고 대답하듯이 내가 맨 처음 만난 시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아마 죽을 때까지, 내 가슴 속에 각인이 돼 있을 것이다. 푸쉬킨과 쟝콕도의 두 편의 시를 여태껏 읊조리고 있으니 말이다.   쟝콕도의 시는 아버지 방에서 발견했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를 그리워하네….’, ‘사랑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 받는다는 것… 사랑, 장콕도’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장콕도의 삶과 바다와 사랑을 노래하는 시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쟝콕도의 시를 만난 이후부터 육지의 작은 소녀는 바다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막연한 사랑이 알록달록하게 다가왔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다가 왔다. 이미 나는 내 또래의 나이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있었다. 두 편의 외국 번역시가 나의 삶속에 어느 새 자릴 잡고, 나의 피인양 함께 살아 온 삶이 됐고 내 마음을 치유해주곤 했다. 힘들 때마다 그리움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마다 늘, 두 편의 시를 암송하곤 했었다. 필리핀 여행 때, 상점에서 파도 소리를 내는 긴 대나무를 사와서 바다가 그리우면 가끔 대나무를 흔들곤 한다.   삶은 늘 변수다. 삶은 환경과 사람으로 인해 늘 흔들린다. 때론 굴욕적이며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굴욕적이거나 참담함은 평온했던 마음을 아프게 들쑤신다. 고통으로 다가온다. 내게서 고통의 시간들을 견디기 위한 준비는 늘 글을 쓰는 일이었다. 일기, 시, 수필, 소설 등 닥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썼다. 글을 쓰는 일은 모든 것들은 잊어버리게 한다. 수정을 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희열은 나만이 아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며 맛이다. 어느새 고통은 끝나는 지점에 와있었다.  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 본다. 참 많이도 고통 속에 몸부림 쳤던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을까를 반추해보면, 시는 나에게 가장 아름답고 포근하고 따뜻한 애인이었다.  “나의 망할 놈의 너/시간을 베어 먹으며/병균을 옮기며/웃음과 울음을 하염없이/요동치게 하는 핫슈(마약의 종류)/너의 무게에 맞서 싸울 수도 없는 너/손가락 사이로 마구 빠져/달아나는 바람이다 나는 너의/살 속에 뒤섞여 취하고 있어/하늘 깊이 빠지기도 한다/때론 거대한 공룡이 되는 너 앞에/나는 작디작은 풀벌레/너와 맞서 쓰러질지라도 나는/네 살 속에 파묻힐지니”(김하리 ‘시’ 전문)  1994년도에 발표한 시다.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들면 망할 놈이라고 표현했을까? 시를 쓰면서 슬픔과 기쁨과 행복을 함께 느꼈기에 웃음과 울음을 하염없이 요동치게 한다고 했을까? 시를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기에 마약의 종류인 핫슈라고 말했을까? 시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얼마나 무거우면 맞설 수도 없는 거대한 무게라고 했을까? 시가 내 가슴에 따뜻하고 포근함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 안에 잡히지 않고 도망가기에 얼마나 안타깝고 얄미우면 손가락 사이로 마구 빠져 달아나는 바람이라고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사랑하기에 내 살처럼 뒤섞여 살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 앞에 서면, 유행가처럼 작디작은 풀벌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공룡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고백했다. ‘너와 맞서 쓰러질지라도/나는/네 살 속에 파묻힐지니’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시는 나의 애인!’이라고.   스타북스 starbooks22@naver.com 02-723-1188

 "모든 치유는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반복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대단한 인내가 요구되지요. 특히, 압축적인 시가 그래요. 그러나 긴 터널을 지나 햇살을 만나면 그 만큼의 환희와 황홀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런 부분들을 더 많은 독자들이 경험하도록 '시치유학'을 계속 펴낼 계획이에요." 400쪽, 1만5000원, 스타북스

 1990년 '우리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씨는 시집 '버스 꽁무니에 매달려 휘파람을 불며'와 '사랑탈출', 에세이집 '세 여자 이야기', 시낭송 음반 '김하리 소리시집' 시리즈와 '금강경' 등을 발표했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원이며 월간 '떡뽁이' 편집위원, '하리온 뮤직' 대표도 겸하고 있다.  

 한편, '시치유학'은 19일부터 뉴시스에 월~금요일 주 5회 연재된다. 화가 김쾌민씨가 일러스트레이션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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