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이야기⑬]국회오물투척사건…아들 구속…사업 철수

“회장님, 서울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로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 신문팔이 소년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거리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호외요, 호외! 재벌 기업 밀수!”
호외(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를 받아 든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호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대체 얼마나 돈을 벌려고 이런 짓을 한 거야?” “있는 사람들이 더 심하다니까!”
온 나라를 분노로 들끓게 한 기사는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수행 비서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본사의 비서실장이었다.
“회장님,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묘하게 돌아가다니요?” “보세 창고에 들어와 있던 이탈리아산 OTSA를 당국의 허가도 받지 않은 채 내다판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OTSA는 비료를 만드는 데 없어선 안 되는 재료인데 이것이 사카린의 원료이기도 해서 우리 삼성이 밀수를 한 것으로 오해받은 것 같습니다. 규탄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정말 심상치가 않습니다. 비료 공장을 짓기 시작한 게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터져서….”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병철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낮은 목소리로 수행 비서에게 지시했다.
“당장 한국행 비행기가 몇 시에 있는지 알아봐요.”
한국행 비행기는 다음날 오전 11시에나 있었다. 일분일초가 급한 그때,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했던 이병철 회장은 밤이 새도록 잠들지 못했다. 부정 축재자로 몰렸을 때도, 삼분폭리사건으로 언론이 들끓었을 때도 의연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국에서 지금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속이 더 탔다.
이병철 회장을 태운 비행기는 오후 1시 1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가 로비에 나타나자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이 회장님! 사카린을 밀수한 것이 사실입니까!” “이번 한국비료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사로 들어가는 승용차 안, 이병철 회장은 삼성이 밀수를 했다는 비난 기사를 읽고 있었다. 기사 중에는 여야가 이 문제를 놓고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야당에서는 관계 부처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부 여당 의원들은 한국비료사건을 전면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기사도 보였다.
“대체 누가 삼성을 죽이려 하는가?”
이병철 회장이 신문을 구기며 신음하듯 내뱉었다.
“삼성의 불행은 국가 전체의 불행이야. 40여 년 전 설립됐던 회사 가운데 지금까지 건재한 회사는 삼성과 삼양뿐이다. 그동안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한 삼성이 이렇게 무너진다면 그건 우리 그룹 하나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직원들 대부분이 퇴근한 토요일 오후, 본사로 온 이병철 회장은 곧장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의자에 깊이 몸을 묻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그의 머릿속에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 스쳐지나갔다.
“회장님, OTSA가 유출됐습니다.”
긴박한 목소리로 보고를 하는 한국비료 부사장 성상영. 이병철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뭐가 어떻게 됐다고요?” “이일섭 상무가 일본에서 들여온 OTSA 1400여 부대를 금북화학에 팔려다 세관에 걸렸다고 합니다.” “금북화학은 사카린 만드는 회사가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이일섭 상무가 왜요?”
사카린은 설탕보다 500배 정도 더 강한 인공 감미료로 설탕 대용품으로 쓰였다. 시중에 사카린이 많이 나돌면 제일제당은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설탕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카린은 방광암을 일으킬 수 있는 해로운 물질이라 먹는 사람에게 좋지 않았다.
이병철 회장이 부사장에게 단호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
“이번 일은 성 부사장이 책임지고 처리하세요. 이일섭 상무를 인사 조치하고, 창희도 한국비료에서 손을 떼게 하고요.”
한국비료의 이사를 맡고 있던 이창희는 이병철 회장의 둘째 아들이었다. 이일섭 상무와 아들의 행동이 회사를 위한 것이었다 해도 이병철 회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정도를 벗어난 행동으로 이익을 낸들 아무 의미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성상영 부사장은 나라에 2400만원의 벌금을 냈다. 세관에서 매긴 원가의 네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던 사건이 3개월만에 다시 불거진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른 아침, 이병철 회장은 중역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냉정한 예측과 분석을 내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중역들은 재무 당국과 검찰을 믿고 기다려보자며 이병철 회장의 눈치만 살폈다. 그들의 말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호외 기사가 난 날 오후, 재무 당국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밀수사건의 주모자는 한국비료에서 상무로 근무하던 이일섭이다. 그는 지난 5월 5일 주소 불명의 이창식과 손을 잡고 사카린 원료인 OTSA 2400부대를 건설 자재와 함께 밀수입했다. 주모자 이일섭은 5월 16일 시가 101만원 상당의 141부대를 시중에 팔았고, 뒤이어 1403부대를 부산시 동래구 소재 금북화학공업주식회사에 정상 수입품인 것처럼 매각하려다 5월 19일 부산세관 감시과 직원에게 적발되었다.”
검찰총장 역시 “법률을 잘못 적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세관의 책임이다. 검찰은 벌과금을 낸 후에 알았기 때문에 관세법 제245조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번 처벌받은 사건은 다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한국비료사건이 다시 불거졌을 때 처음에는 정부도 적극적으로 삼성을 감싸려 했다. 재무 당국이 발표한 공모자 ‘이창식’은 이창희의 가명 이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들로 미루어 중역들은 시간이 흐르면 떠들썩한 분위기는 곧 잠잠해지지 않겠느냐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병철의 생각은 달랐다.
사건이 예상 밖으로 심각해질 수 있다는 걸 직감했다. 회의를 마치며 이병철이 중역들에게 말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시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당시 정부는 민생 안정을 내세우며 밀수를 ‘5대 사회악’ 가운데 하나로 규정해놓고 있었다. 정부는 국민 여론이 나빠지면 민심을 얻기 위해 언제라도 삼성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었다.
국회도 들썩였다. 야당 의원들은 한국비료사건의 범인들을 즉시 잡아들이고 엄중히 처벌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법을 어긴 데에는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의 밀수 행위는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것으로 극형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또한 그것이 권력의 비호하에 이루어진 이상, 보다 원천적인 책임이 있는 박 정권이 물러나야 합니다.”
야당인 신한당의 총재 윤보선은 기자 회견까지 했다. 야당만이 아니었다. 여당과 정부도 삼성을 압박했다.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 사람은 사건이 터지기 한 달 전 한국비료 주식의 30퍼센트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여당의 실세였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국회는 여야 공동으로 사카린 밀수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기획, 재무, 법무 등 4부 장관에 대한 출석 요구서를 사무처에 접수했다. 재무장관은 기자 회견을 열고 정식으로 국민에게 사과했고, 경제기획원장은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대검찰청에서는 한국비료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수사반을 편성했다.
각 신문사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 한국비료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기사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사설까지 동원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삼성을 공격하는 신문도 있었다.

이병철 회장과 삼성은 사면초가에 놓였다.
“삼성의 사카린 밀수를 두둔하는 장관들은 나의 ‘피고들’이다. 사카린을 피고들에게 선사한다.”
대정부 질문에 나온 김두한 의원이 갑자기 준비해온 오물통을 열고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 김정렴 재무장관, 장기영 경제기확원 등 일부 각료들에게 인분을 뿌렸다. 이른바 ‘국회오물투척사건’이었다.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은 김두한 의원의 국회오물투척사건으로 온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다.
“공장 완공을 앞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병철 회장은 한숨을 토해냈다. 한겨울 허허벌판에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사업가로서 그동안 쌓아올린 업적, 무엇보다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겨온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위기였다.
그날 오후, 이병철 회장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중앙일보 3층 간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국비료를 나라에 바치는 동시에 모든 사업 경영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담담하게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던 이병철은 마지막에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외자 5000만 달러와 내자 30여억 원이 투입된 엄청난 규모의 한국비료가 고작 1000만 원 때문에 밀수를 했겠습니까? 이는 상식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러나 한국비료밀수사건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절실한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 주식의 51퍼센트를 나라에 바친다는 내용의 공식 문서에 서명하고 곧바로 울산 현장으로 갔다. 회사가 문을 닫는 줄 알고 잔뜩 풀이 죽어 있던 수천 명의 한국비료 직원들이 이병철 회장을 보고 일제히 환호하며 기뻐했다. 이병철 회장은 말했다.
“이처럼 크고 거대한 공장이 형태를 갖춘 것은 모두 여러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덕분입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간 좋지 않은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고 여러분도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신문들이 떠들어대는 것과 달리 실수였습니다. 저는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는 있지만 절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몇몇 정부 관리들이 물러나고 제 자식까지 구속됐습니다.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공장은 우리 국민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농민들을 위한 것이고, 국가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니만큼 제 개인의 희생은 달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사건이 어찌됐든 이 공장은 여러분이 지켜야 하고 여러분이 지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피와 땀으로 지은 이 공장은 여러분의 영원한 자랑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1967년 1월 6일, 한국비료는 처음으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시동식을 가졌다. 전 세계 비료공장 건설 사상 ‘최대 규모’, ‘최신 기술’, ‘최단 공사 기간’이라는 3대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사업보국(事業報國)! 이병철 회장은 경영을 통해 나라를 일으킨다는 자신의 경영 원칙을 되새겼다.
‘내가 10년 동안 꿈꿔왔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나라가 바로 서야 기업가도 바로 선다. 애초에 나라를 위해 하기로 했던 일이니 모두가 사필귀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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