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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아의 이주이영화]헤이트풀8 & 나를잊지말아요

등록 2016.01.07 21:47:20수정 2016.12.28 16: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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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헤이트풀 8'

【서울=뉴시스】영화 '헤이트풀 8'

※개봉 신작들을 모두 관람하고 선정한 것은 아닙니다.

【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 이번 주 개봉작 중 한 편을 꼽으라면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8'이다. 한편 더 꼽으면 정우성과 김하늘아 주연한 '나를 잊지 말아요'다.

 '헤이트풀8'은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으로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반면, 신인감독의 데뷔작인 '나를잊지말아요'는 흠잡을 데 없이 잘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예측불허의 스토리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멜로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미스터리 구조의 '나를잊지말아요'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서 그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날 다음 장면을 기대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또 두 주연의 나이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단순히 선남선녀의 멜로에 머물지 않는다.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고 고통스런 상처가 있다. 누구나 절망의 순간에 손을 내밀고 싶고, 그 손을 잡아줄 수밖에 없는 약한 남자와 강한 여자의 이야기다. 105분, 15세관람가 

【서울=뉴시스】영화 '헤이트풀 8'

【서울=뉴시스】영화 '헤이트풀 8'

 '헤이트풀8'은 영화 제목처럼 혐오스런 악당 8명의 이야기다. 착한 놈이라곤 단 한 명도 없다. 선량한 사람들이 몇몇 나오는데 악당의 손에 무기력하게 죽는다. 타란티노의 영화답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수다스럽다. 무척 수다스럽다. 제한된 공간에서 내공이 뛰어난 선수들이 연기대결을 벌인다는 점에서 한 편의 연극 같기도 하다. 촬영에 앞서 유례없는 '시나리오 리딩 라이브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았단다. 영화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스노 웨스턴 서스펜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하는데, 적절하다. 이 영화의 무대라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설원과 그 설원을 달리던 마차가 눈보라를 피해 멈춰서는 산장 뿐이다. 큰 현상금이 걸린 여자 죄수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를 붙잡아 이송 중이던 교수형 집행인(존 루스)이 눈보라 속에서 도움을 청하는 남자를 태우고, 또 다른 남자를 태워 산장에 도착한다. 근데 그곳에는 4명의 남자가 먼저 와 있다. 총 8명이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상황을 담았다.

 시간적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이 끝난 뒤다. 참전 흑인이 제복을 입고 다니면서 현상금 사냥꾼으로 먹고살고 있으나 그를 대하는 백인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흑백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흑인을 잡으러 다니는 백인 잔당, 무고한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는 무자비한 범죄자들이 판을 치는 폭력의 시대다. 

【서울=뉴시스】영화 '나를잊지말아요'

【서울=뉴시스】영화 '나를잊지말아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타란티노의 수다는 그저 의미 없는 말장난이 아니다. 당대의 분위기와 뿌리깊은 편견, 사회문제와 그 문제를 바라보는 통찰과 비판의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마치 노래 가사나 가수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이나 '히든싱어'처럼 배우들의 말과 표정과 제스처에 집중하게 만든다. 비주얼 중심의 요즘 영화에서 흔히 누리기 힘든 재미다. 

 그렇다고 영상미가 떨어지느냐, 설마 그럴 리는 없다. 영화광 출신 감독답게 '벤허'의 전차 경주신을 촬영한 울트라 파나비전 70을 부활시켜 광활한 설원이 주는 넓이감을 재현했다. 물론 영사기 문제로 이걸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킬 빌'의 요헤이 타네다에게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겨 볼거리를 장착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를 40년 만에 서부극 음악으로 컴백시켰다.

 무엇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강렬하게 기억나는 명장면이 있다. 이 장면 때문에라도 이 영화를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흑인 현상금 사냥꾼 마커스 워렌(새뮤얼 L 잭슨)과 남북전쟁에 연합군 장교로 참전했다가 퇴역한 뒤 아들을 찾아 나선 인종차별주의자 '샌퍼드 스미더스'(브루스 던)가 서로를 견제하며 나누는 대화신이다.

【서울=뉴시스】영화 '나를잊지말아요'

【서울=뉴시스】영화 '나를잊지말아요'

 엄밀하게는 잭슨이 주도권을 잡고 자신만 알고 있던 비화를 폭로하는 장면인데, 정말 그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다. 극 중 인물뿐 아니라 관객들도 그렇다는 점에서 어두운 극장 속 은밀한 일체감이 형성된다.

 "당신 아들을 죽인 날은 몹시 추웠지. 와이오밍의 겨울 날씨 치고도. 유난히 추웠어. 그 추운 날 당신 아들은 내 총구를 만났지. 난 녀석에게 옷을 홀딱 벗으라 했어. … 두 시간이 지나자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네. 그가 원하는 건 담요뿐이었네. 그렇다고 아들을 너무 비난하진 마. 당신은 그런 추위를 안 겪어봐서 몰라. 추위에 떠는 사내는 담요 하나를 위해 못할 짓이 없거든."

 이후 낱낱이 까발려지는 이야기는 무자비하고 비정하다. 특히 아버지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구칠 정도의 분노도 자아낸다. 더불어 백인이 흑인에게 저지른 폭력의 역사를 어떻게 이렇게 상징적으로 압축해 보여줄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난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노예 12년'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따사로운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남부의 농촌마을에 모두들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을 하고 있는데, 단 한 명의 흑인만 목에 매달린 줄이 조여 죽지 않기 위해 까치발을 한 채 숨을 할딱거리며 무려 반나절이나 버텨낸 그 잔인무도한 장면 말이다.

 러닝타임 167분 중 전반부에 살짝 지루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인내의 열매는 달다. 전반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긴장감이 후반부에 정점을 찍으며 폭발한다. 초반에 서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 불꽃이 팍 튀면서 언제 옆구리의 총이 발사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이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오락영화의 미덕을 아는 악동감독답게 피의 파티를 벌인다. 폭력적인데 너무 영화적이어서 폭력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요즘 유행어로 '사이다' 같은 재미가 있다. 또 꼼꼼히 따져보면 여기에도 정의는 있다. 권선징악의 논리가 작용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한 남자는 똑같이 당한다. 과연 누가 살아남을지, 누가 어떻게 죽을지 기대하시라. 167분,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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