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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리뷰]리카르도 무티·시카고 심포니 내한공연

등록 2016.01.30 11:27:16수정 2016.12.28 16: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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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9일 내한공연

【서울=뉴시스】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9일 내한공연

【서울=뉴시스】김나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 악단 창립 125주년을 기념하는 아시아 투어 공연의 하나로 한국을 방문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리카르도 무티의 조합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애호가들을 설레게 했다. 지난 내한 공연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무티가 지휘봉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첫날 공연에서는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과 말러 1번을 선보였다. 29일에는 프로코피예프교향곡 1번과 힌데미트의 현과 관을 위한 협주음악,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으로 한국 청중들과 만났다.  

 첫날, 무티가 들려준 베토벤과 말러는 다분히 새롭고 낯설었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 특유의 박력과 웅장함 대신, 절제된 사운드와 섬세한 결이 돋보이는 소리는 새로운 경험이 될 만한 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음향은 이를 고스란히 전달해주는데 역부족이었다.

 호방한 금관의 쭉쭉 뻗어나가는 패기 넘치는 소리로 '시카고 사운드'라 불리며 미국 중부의 느낌을 물씬 전달해주는 악단으로 이름나 있으나, 이탈리안 오페라에 강점을 보이는 마에스트로 무티는 이 악단에 좀 더 섬세함을 깃들게 하는데 애를 써왔다.

 2014년 파리 살 플레옐에서 들었던 시카고 심포니의 드뷔시는 결이 곱고 정제된 음색으로 아주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다. 투어라는 특성상, 낯선 타국의 공연장과 그 음향에 바로 적응해 최상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감안한다고 해도 아쉬움이 남았다.

【서울=뉴시스】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9일 내한공연 (Todd Rosenberg Photography 2016)

【서울=뉴시스】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9일 내한공연 (Todd Rosenberg Photography 2016)

 그동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놀라운 호연을 보여준 국내 교향악단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어렵게 이상적인 소리를 만들어왔을 것이란 짐작이 들었다. 한 악단의 특색있는 소리는 전용홀로 인해 완성된다. 베를린 필하모니나 루체른의 KKL, 개관한지 얼마되지 않은 파리의 필하모니와 메종 드 라디오를 떠올리니 그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서울에는 언제쯤 음향이 아쉽지 않은 홀이 생길까.  

 무티가 독일 레퍼토리에서 특유의 해석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베토벤과 말러의 가장 대중적인 교향곡을 완전히 새롭게 듣는 경험이었다. 음표 하나하나마다 방황과 고민, 우울이 담겨 있는 말러를 놀랍도록 유려한 벨칸토로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확연히 눈에 띄게 다른 악기 배치로 인해 금관의 소리가 호방하다 못해 과하게 들리는 등 음악 전체적 균형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이 또한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였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옛 거장들이 그러했듯이 여전히 특유의 군림하는 카리스마로 악명높은 거장은 아마도 '무티다운' 터치를 더해, 가장 흔히 연주되는 베토벤과 말러의 교향곡들을 좀 색다르게 들려주는 것을 의도했을 것이다.

【서울=뉴시스】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8일 내한공연 (Todd Rosenberg Photography 2016)

【서울=뉴시스】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8일 내한공연 (Todd Rosenberg Photography 2016)

 첫날을 경험으로 삼아 소리의 균형을 찾아낸 듯, 둘째날은 첫 곡 프로코피예프부터 좀 더 균형감있게 들렸다. 매력넘치는 불협화음을 이어가는 힌데미트는 시카고 심포니가 쌓아온 명성과 특유의 사운드를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차이콥스키 4번 교향곡의 2악장은 마치 성악가의 인성처럼 심금을 울렸다. 거장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은 오히려 느리고 단순한 패시지였다. 무티는 무의미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 음표들에 숨을 불어넣어 청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마법을 걸었다.

 3악장의 스케르초의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한 피치카토는 맨 살에 와닿는 캐시미어처럼 놀라운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무티는 차이콥스키가 의도한 감정선을 고스란히 따라가며 드라마틱한 악상을 전개하되, 최고의 수공예품을 선보이는 장인처럼 곳곳에 포진한 화려한 장식음들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작곡가 차이콥스키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공들인 작품이라는 걸 인정했을 만큼 이 곡이 지닌 아름다움은 남다르다. 화려하고도 찬란한 4악장, 무티의 해석은 이탈리아의 쨍한 햇살을 연상케 할 정도로 눈부셨다.

【서울=뉴시스】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8일 내한공연 (Todd Rosenberg Photography 2016)

【서울=뉴시스】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28일 내한공연 (Todd Rosenberg Photography 2016)

 거장과 최정상의 오케스트라가 만났을 때만 가능한 결과물에 그 누가 압도되지 않을수 있을까.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는 와중에 한국인 단원의 목소리를 통해 베르디의 '나부코 서곡'을 앙코로 선사하겠다는 멘트가 이어졌다.

 무티는 장기 중의 장기인 이탈리아 오페라를 어째서 투어 프로그램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놀라운 연주였다. 마치 자신의 영토에 돌아와 발을 디디고 선 정복자처럼 무티 역시 호쾌하게 지휘봉을 휘두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는 듯, 열정적으로  지휘를 이어갔다.

 그의 세포 속에는 이미 음표들이 지도처럼 다 그려진 듯 싶었다. 거장은 자연스럽게 베르디의 멜로디 속으로 청중들을 이끌고 들어가 잠시 그 안에서 살고 나오겠다는 듯이 지휘봉을 움직였다. 밋밋한 콘서트홀이 순식간에 오페라 무대로 탈바꿈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무티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한국에서 전막으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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