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어떤 곳…등록문화재 논란]

【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충주시는 성내동 243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을 복원할 것인지, 철거할 것인지를 판단하고자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기로 했다. 사진은 1931년에 발간된 '충주관찰지'에 실린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 원안 사진은 이무라 지점장. 2016.12.12. (사진=충주관찰지 캡처) [email protected]
12일 충주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공청회에서 복원·철거 찬반 의견이 팽팽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에 대해 등록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지정 여부에 따라 건물을 복원하거나 철거하겠다는 방침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조선식산은행 건물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49호),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등록문화재 19호),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등록문화재 164호), '구 제일은행 여수지점'(등록문화재 170호) 등이 있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강점기 특수은행으로, 일제가 식민지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중요한 축으로 삼은 핵심 기관이다.
1920년부터 1934년까지의 산미증식계획에서 자금 공급을 담당하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산업 부문에 한국의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 대표적인 식민수탈기관이다.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은 1933년 12월14일 본관 63평, 부속건물 34평 규모로 신축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에 대해서는 1931년 일본인 오쿠도이텐가이(奧土居天外)가 펴낸 '충주관찰지(忠州觀察誌)'에서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오쿠도는 조선식산은행이 조선의 재정경제와 산업개발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먼저 언급하면서 메가타(目賀田) 재정고문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이 책에서는 1905년 10월 정부창고를 설치한 것이 충주 금융기관의 시초로 보았다. 이 정부창고는 1907년 설립된 충주농공은행에 넘어가고 한호농공은행과 합병해 한호은행 충주지점이 됐다.

【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충주시가 1933년께 일제강점기 식민지 침탈기관이었던 옛 조선식산은행 건물 활용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사진은 17일 가구점 등으로 사용됐던 옛 조선식산건물 후면. 2016.11.17. [email protected]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충북 북부와 강원 남부 등 6개 군의 업무를 담당했다.
1930년 하반기 예금 평균고(平均高)가 74만4569원, 대부금 평균고가 129만8428원이었고, 지점장 이무라 사다쇼오(井村定省)와 행원 12명이 근무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공청회에서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 철거를 주장한 전홍식 교통대 한국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제강점기 식민수탈론의 관점에서 철거가 마땅하다"고 밝혔다.
전 연구원은 "일제강점기는 근대 시기가 아니라 '식민근대'"라며 식산은행 건물 자체를 근대 문화유산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어 "복원을 반면교사로 삼자는 주장은 일본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칫 일제를 미화할 우려가 있어 민족 감정에 맞지 않는다"며 "읍성 복원사업도 버거운데 식민통치기관 건물을 보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철거를 강력히 주장했다.
반면에 건물 복원에 찬성한 손태진 한국교통대 건축학과 교수는 "일제의 경제수탈 현장으로서 은행의 평면 구성, 좌우대칭의 정면성을 가지는 입면, 돌출 현관의 형식, 수직 창호와 코니스 등 세부수법 등의 형식, 구조적으로 목조와 조적조를 혼합한 벽체와 모듈에 의한 간살 등에서 건축적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충주지역을 배경으로 역사·사회·경제 등의 상징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근대건축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등록문화재로 지정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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